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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현에겐 '흑역사'일지 몰라도...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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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0년대] 신해철의 천재성을 느낄 수 있는 <정글스토리> OST

지난 2008년 가을, 추석 시즌을 겨냥한 박광춘 감독의 영화 <울학교 이티>가 개봉했다. 10년 차 체육교사가 영어교사로 변신한다는 학원물로 <패밀리가 떴다>의 '게임마왕' 김수로가 주인공을 맡으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울학교 이티>는 전국 관객 65만의 초라한 성적을 남긴 채 쓸쓸히 간판을 내렸다(그 해 추석 극장가의 승자는 국내에서만 450만 관객을 모은 아만다 사이프리드와 메릴 스트립 주연의 <맘마미아!>였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울학교 이티>는 인기 스타들을 대거 배출한 영화로 재조명되고 있다. 실제로 <울학교 이티>에는 <꽃보다 남자>와 <상속자들>에 출연했던 이민호를 비롯해 <과속스캔들>, <힘쎈 여자 도봉순>의 박보영, <공주의 남자>, <굿닥터>의 문채원 등이 고교생 역할로 출연했다. 비록 비중은 작았지만 '장보리' 오연서가 김수로의 첫사랑 역, 하정우는 훈남의사 역으로 짧게 얼굴을 비추기도 했다.

이렇듯 세상에 공개될 당시엔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영화나 음악, 드라마 등이 시간이 흐른 후 대중들에게 재조명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난 1996년 5월에 개봉해 전국 관객 6천여 명의 저조한 성적을 기록한 영화 <정글스토리> 역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작품이다. 바로 고 신해철이 참여한 역대급 OST 때문이다.

'국민로커' 윤도현의 흑역사가 된 영화 <정글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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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해철은 관객 6000명이 들어온 영화에도 엄청난 OST 명반을 만들어 냈다. ⓒ (주)카카오M



<장군의 아들> 2편과 3편에서 각각 연출부와 각본에 참여하며 거장 임권택 감독 밑에서 영화를 배우던 김홍준 감독은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서울 관객 100만을 돌파했던 <서편제>에서 조연출을 맡았다(당시엔 대부분의 영화들이 단관 개봉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서편제>의 서울관객 100만은 저녁 뉴스에 소개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대기록이었다).

김홍준 감독은 1994년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였던 최재성과 연기파배우 최명길, <야인시대>의 정진영 역으로 유명한 차광수 등이 출연한 <장밋빛 인생>을 연출하며 상업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미 충무로에서 '임권택의 제자'로 이름이 나 있던 김홍준 감독은 <장밋빛 인생>을 통해 1995년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신인 감독상을 휩쓸며 충무로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데뷔작을 성공적으로 마친 김홍준 감독은 차기작으로 무명 가수의 삶을 다룬 음악 영화를 기획했다. 그리고 주인공으로 1994년 1집 앨범을 발표했던 신인가수 윤도현을 캐스팅했다. 당시 유명하지 않았던 윤도현을 상업 영화의 주인공으로 캐스팅한다는 것은 엄청난 모험이었다.

김홍준 감독은 윤도현 외에도 박태희, 김진원(심지어 주인공 윤도현보다 연기가 더 자연스러웠다) 등 지금의 YB 멤버들을 직접 출연시키며 영화의 리얼리티를 극대화했다. 하지만 <투캅스>와 <게임의 법칙>, <은행나무 침대> 등을 통해 한국 영화의 재미를 깨닫기 시작했던 관객들이 이름도 잘 모르는 무명의 신인 가수가 주연을 맡은 다큐 형식의 음악 영화에 관심을 가질 리는 없었다. 결국 <정글스토리>는 흥행 참패를 맛봤다. 이후 김홍준 감독은 <정글스토리>를 마지막으로 사실상 상업영화 감독에서 물러났다.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보는 쪽은 역시 투자자다. 당시 <정글스토리>는 총 7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됐지만 워낙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아 영화로 벌어들인 수익은 사실상 전무했다. 하지만 <정글스토리>의 투자사였던 삼성 영상사업단은 이 영화를 통해 오히려 수익이 발생했다. 바로 영화 개봉과 동시에 발매돼 40만 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정글스토리>의 자존심을 살린 신해철의 OST 덕분이었다.

영화의 손실을 OST 판매 수익으로 메웠다

사실 신해철이 영화 음악을 맡은 것은 <정글스토리>가 처음은 아니었다. 신해철은 지난 1993년에도 N.EX.T의 이름으로 유하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의 음악감독을 맡아 OST 앨범을 발표한 바 있다.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역시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엄정화의 데뷔곡 <눈동자>를 비롯해 N.EX.T 3집의 <코메리칸 블루스> 원곡 등이 실려 있는 OST 명반으로 꼽힌다.

<정글스토리>의 OST는 N.EX.T가 아닌 신해철 개인의 이름으로 발매된 앨범이었다. 팬들 입장에서는 1995년 3집 발매 후 1년의 휴식기를 선언하며 팬들을 안타깝게 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정글스토리> OST는 팬들에게 허전한 마음에 단비와도 같았던 마왕님의 선물 같은 솔로 프로젝트였다.

<정글스토리>가 음악 영화이고 주인공도 가수인 윤도현이기 때문에 윤도현의 앨범 참여가 있을 법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윤도현은 이 앨범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 대신 신해철은 앨범 속지의 thanks to를 통해 '앞으로 크게 될 윤도현'이라는 덕담을 남겼는데 훗날 윤도현이 '국민 로커'로 성장했기 때문에 당시 신해철의 예언(?)은 현실이 된 셈이다.

앨범의 시작을 알리는 연주곡 '정글스토리 메인 테마'가 지나면 산울림의 명곡 '내 마음'을 리메이크한 '내 마음은 황무지'가 나온다. 맏형 김창완과는 전혀 다른 음색을 가진 둘째 김창훈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시작되는 이 곡은 간주에서 곡의 느낌이 돌변하면서 신해철의 카리스마 넘치는 저음이 등장한다. 원곡 특유의 처연하고 쓸쓸한 느낌을 잘 살리면서도 신해철만의 개성을 잃지 않는 편곡이 돋보이는 곡이다.

강렬한 리메이크곡이 지나면 'Here I Stand For You'와 함께 신해철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 '절망에 관하여'가 이어진다. 엄청난 저음부터 찢어지는 고음까지 신해철이 가능한 음역대가 모두 등장하는 난이도가 높은 곡이다. 눈물 흘리며 몸부림치며 사는 날까지 살다가 늙고 병 들어 쓰러질 날이 올 때까지 그냥 가보겠다는 철학적인 가사가 압권이다.

'백수가'는 제목만 보면 다소 코믹한 노래가 아닐까 오해하기 쉽지만 사실 이 앨범에서 가장 냉소적이고 심각한 내용의 곡이다. "지금 이 시간과 지금 이 공간과 지금 이 세상은 견딜 수 없어, 이 놈의 세상에 내 있어야 할 내가 속해야 할 이유를 줘"라는 29세 신해철의 절규는 24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해 더욱 씁쓸한 느낌을 준다.

그렇다고 <정글 스토리> OST가 마냥 심각하고 비장한 노래들로만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니다. 역대 신해철이 만든 수 많은 노래들 중에서도 가장 신나고 발랄한 곡으로 꼽히는 '아주 가끔은'은 라디오를 중심으로 가장 많이 흘러 나왔던 이 앨범의 실질적인 타이틀곡이었다. '아주 가끔은'은 여성 래퍼 2명의 하이톤 랩에 이어지는 신해철의 보컬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매력적인 곡이다.

이 앨범에서 유일하게 영화 대사를 들을 수 있는 연주곡 'Jungle Strut'이 지나면 이 앨범이 낳은 최고의 명곡이자 문제의 노래 '70년대에 바침'이 등장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고를 전하는 뉴스로 시작되는 '70년대에 바침'은 "하늘이 그리도 어두웠었기에 더욱 낭만이 절실했던 70년대"의 무거웠던 시절을 주제로 하고 있다.

한 발의 총성으로 그가 사라져 간 이후 사람들은 꿈을 꾸기 시작했지만 곧 이어 12.12 군사 쿠테타 주동자의 대통령 당선 소감이 노래 말미에 등장하며 어둠의 시대가 끝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한국 영화 음악 역사에 오래도록 기억될 명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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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해철의 미발표곡 <아버지와 나 PART3>는 작년 10월 한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공개됐다. ⓒ MBC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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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이 이끄는 밴드 N.EX.T는 1995년 9월 3집을 발표한 후 1997년 < Here I Stand For You >와 <아리랑>이 들어 있는 싱글 앨범을 발표하기 전까지 잠정적인 휴식기를 가졌다. 리더 신해철을 포함한 멤버들은 그 사이에도 부지런하게 개인 활동을 이어갔는데 <정글스토리> OST 역시 신해철이 1996년에 했던 개인활동의 일환이었다. 신해철은 같은 해 동갑내기 뮤지션 윤상과 의기투합해 '노땐스'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노땐스' 앨범은 대중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질주>, < In The Name of Justice >, <월광> 등 시대를 앞서가는 세련된 음악들이 대거 실려 있다. "끝난 뒤엔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걸"이라는 가사로 유명한 노래 <달리기> 역시 노땐스가 원곡의 주인공이다(<달리기>는 워낙 많은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되면서 현재는 '노땐스 버전'보다 S.E.S나 옥상달빛 버전이 더 유명하다).

극장에서 관객들에게 철저하게 외면을 당한 영화 <정글스토리>는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어렵지 않게 풀버전을 감상할 수 있다(물론 신해철이나 YB의 오랜 팬이나 인내심이 남 다른 사람이어야만 <정글스토리> 풀버전 감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영화의 완성도나 흥행과는 별개로 <정글스토리>의 OST는 한국 영화음악 역사에 오래도록 남을 명반으로 기억되고 있다.

양형석 기자(utopia6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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