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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진중권 “지성계가 무너졌다고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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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논객’으로서 해야 할 일 강조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57)는 자신을 아직도 ‘논객’이라고 표현한다. 최근 그가 쓴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에서도 특정 세력과 진영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는 평소의 지론을 견지하며 논객으로서의 사명감에 대해 언급했다.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던 인터넷 보급 초창기, 저마다 논객을 자처하던 이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시사평론가나 시사 유튜버 등의 이름을 달고 변신한 것과는 대비된다. 글을 주된 무기로 활용해 때로 신랄한 비판의 칼날에 자신이 역습을 당하면서도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까는 태도는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2020년 한 해 동안 그의 비판은 현 정부와 민주당에 집중됐다. 12월 1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모두까기’로 유명한 그가 왜 ‘선택과 집중’에 나섰는지에 대해 들어봤다.

경향신문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12월 1일 자택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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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시대에 ‘논객’이란 표현은 좀 올드한 느낌도 난다.

“논객이 사라진 건 유튜브로 대표되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 때문이다. 글이 이성적으로 3인칭 위치에서 쓰는 거라면 말은 1·2인칭 관계에서 사교성을 바탕으로 한 대화 아닌가. 사실 유튜브는 보는 사람이 좋아하는 말만 해주면 된다. 그런데 그건 내 취향도 아니고, 더 나아가서 이런 현상 때문에 가상과 현실이, 사실과 허구가, 진지한 사실과 엔터테인먼트가 중첩되는 일종의 착란증이 일어나고 있다는 문제의식도 있다. 나에게는 말보다는 글로 쓰는 전통적인 접근법이 더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출판시장이 갈수록 위축되고 있으니 그만큼 ‘말발’도 덜 먹히고 수입도 줄지 않나.

“이번 신간이 지금까지 1만2000부 정도 나간 것으로 안다. 물론 요즘 추세에 비추면 적지 않은 수치지만 과거 내놓기만 하면 1만부는 기본으로 깔고 시작하던 때와는 달라졌다. 그래도 들어오는 수익 전체로 보면 오히려 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책은 몰락했어도 글을 바탕으로 하는 강연료가 더 높아졌다. 한 번에 100만원에서 300만원까지도 받으니까.”

-강연 때문인지 전문 방송인처럼 나서서 돈 잘 번다는 얘기도 있더라.

“내가 어디 소속사가 있다는 얘기는, 3년쯤 전에 내 이름 빌려 홍보하겠다는 업체가 있길래 강연 두세 번 물어다준 것뿐이다. 내가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소속사가 왜 있겠나(웃음). 다만 강연이 쉬운 점이 있긴 한데, 나는 책을 쓸 때도 구어체로 쓰고 다양한 시각자료를 같이 넣으니까 강연에서도 그대로 자료를 보여주면서 말하면 돼서 둘 사이의 간극이 크지 않아 편하긴 하다. 조국 사태 이후 교수직 그만둔 것은 나름의 ‘청야전술’이다. 들판을 비워버리는 것처럼 나를 공격할 요소를 아예 없애버린 셈이다.”

-강연으로든, 방송으로든 돈을 벌어들인다는 비판 역시 주로 언급하는 진보의 위선이란 주제와 얽힌다.

“조국 전 장관이 그 대표적인 사례 아닌가. 강남 사는 사람들보다 더 심하게 투자할 것 다 하고 살면서 의식으로는 자신이 사회주의자라느니, 자신의 정치는 앙가주망(지식인의 사회참여)이라느니. 그 위선은 결국 정권이 바뀌면 몇만개에 달하는 공직 일자리가 좌우되는 거대한 이권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학자적 양심 운운하던 지식인들부터 친문세력 팬덤의 핵심까지 일단 자신의 손에 들어온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똘똘 뭉쳐 있지 않나.”

-그런데 기득권을 지키려는 행태야 진보든, 보수든 공통적인 것 아닌가.

“부패는 다들 했어도 이번 정부에선 양상이 다르다. 과거에는 권력층도 반성하고, 사과하고 감옥에 갔다. 노태우 때는 박철언 보냈고, 김영삼 때는 아들 김현철, 김대중 때는 세 아들 다 들어갔다. 하다못해 이명박 때도 형 이상득이 들어갔다. 그런데 지금은 잘못해도 들어가지 못하는 새로운 상황이다. 지금 정권을 잡은 586 운동권은 자유민주주의를 부르주아 사상이라고 경원시하고 민중민주주의만 진짜 민주주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다원성을 인정하지 않으니 대화와 논쟁을 거쳐 타협하고 공동의 합의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대신 적군과 아군만 구별해서 ‘나는 선이야’라고 강제하는 것이 승리라고 생각하는 거다.”

-불과 지난해까지만 해도 현 정부에 대해 어느 정도는 우호적이기도 했다. 이런 비판을 통해 개선될 여지가 있다고 보나.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 외부에서의 큰 충격, 그러니까 선거 패배 같은 요인이 아니면. 그동안 해왔던 얘기도 민주당이 망하게 하려는 게 아니라 되돌아오게 하려고 한 비판이었다. 보수세력도 지금처럼 형편없는 상태로 프레임에 말려들어가 견제를 못 하는 대신 ‘최선의 비판은 대안’이라는 자세로 혁신하면 서로 더 잘 되는 경쟁이 벌어지고 그게 바로 진보다. 그런데 민주당부터 당의 혁신이 불가능하게 다 장악되어 있고 이런 권위주의가 팬덤정치와 착종돼 있으니 자정되기란 어렵다고 본다.”

-위기에 대한 경고일 수도 있지만 자칫하면 스스로 비판하고 있는 음모론적 논지로 연결될 위험도 있다.

“위험을 과장할 필요는 없다. 시스템이 막아주고 있으니까. 극단적인 사태까진 안 가겠지만 한편으로는 연성독재의 형태로 법과 절차를 무력화하는 시도와 위협에는 충분히 대비해야 한다. 집권세력이 자신들만 법의 적용을 받지 않고 법 위에 서서 자의적인 지배를 해 나가는 소프트 파시즘의 기미가 엿보인다. 이 정권이 유지하고 있는 틀에 같이 들어가서 싸우면 말려버리고 만다. 틀 바깥에서 전체 프레임의 모습과 모순되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 나 같은 논객의 일이다.”

-한때 절친이었던 조국 교수를 비롯해 유시민 이사장 등 친문 인사들과의 사이는 완전히 단절된 건가.

“사실 조국 사태 벌어지던 초기에 이미 끝났다. 처음엔 나도 조국이 청문회 들어갈 때 격려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청문회 날 가짜라는 게 얼굴에 딱 보이더라. 그런 사람을 옹호하는 유시민 이사장에 대해서도 ‘미쳤다’고 했고. 이젠 그쪽과는 완전히 사이가 끝난 거지.”

-진영논리가 더 강해져 싸우기가 어렵다고 했는데 같은 입장에 설 인물들이 있긴 한가. 있다면 같이 다른 방식으로 정치영역에 발을 들일 생각도 있는지.

“지성계가 무너졌다고 느끼고 있다. 예전에는 같은 가치관을 지향했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좀비처럼 돼 있더라. 그래도 이전 책을 같이 쓴 권경애 변호사, 김경율 회계사, 서민 교수 같은 분들도 있고, 최근 들어 최장집 교수나 홍세화 선생 같은 분들도 이 정부를 비판하고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이야기가 슬슬 먹히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보다 적극적인 참여를 할 계획은 아직 없고, 당적이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만약 입당한다고 해도 정의당보다 더 좌파적인 당으로 가겠지.”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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