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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 저돌성만으론 성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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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진=매경DB


[열국지로 보는 사람경영-45] 독일의 아우토반에서 시속 200㎞로 달려본 경험이 있나요? 고속으로 자동차를 운전하다 보면 시야가 급속히 좁아집니다. 요즘 여권이 '개혁'을 명분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일들을 보면 '과속'으로 인해 시야가 좁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좌우를 돌아보며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가기보다 시간에 쫓기듯 너무 서두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야가 좁아지고 뜻하지 않은 사고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검찰개혁만 해도 그렇습니다. 권력의 균형을 맞추겠다는 당초 취지는 퇴색하고 오리무중이 되고 말았습니다. 개별 싸움에 매달리다가 정작 전쟁에서는 지는 잘못을 범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검찰개혁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방향성에 대한 의견도 극명하게 나뉘어 있습니다. 이럴 때는 직진이 아닌 입체적 작전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전투에서 한 발 물러서더라도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이지요. 기원전 632년 진(晉)나라와 초(楚)나라가 중원의 패권 놓고 일전을 벌인 성복대전의 전개 과정과 결말이 이를 말해줍니다.

이 전쟁의 주역은 진문공을 보좌해 작전을 세운 선진과 초나라 행정과 병권을 쥐고 있었던 성득신이었습니다. 두 나라의 군사력은 엇비슷했습니다. 진나라는 제, 진(秦)과 연합했고 초나라는 정, 채, 진(陳), 허 등 주변국을 동원했습니다. 제법 큰 싸움판이 벌어진 것입니다. 진나라의 실력을 간파했던 초나라 왕은 대결을 피하려고 했습니다. 성득신에게 가급적 싸움을 하지 말고 상황을 지켜보라는 명령을 내린 이유입니다. 하지만 대장군 성득신은 주전파였습니다. 자부심이 대단했고 실제로 많은 공을 세우기도 했죠. 그는 앞뒤를 가리지 않고 일을 밀어붙이는 직진형 인간이었습니다. 결국 이 성격이 자신을 파멸로 몰아넣은 단초가 됩니다.

성득신과 달리 선진은 큰 그림을 그려놓고 철저한 계산에 따라 움직이는 입체형 인간이었습니다. 물러날 시기와 진격할 타이밍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하나하나의 전투보다는 최후에 승리하는 전략을 채택했습니다. 성득신과 선진의 이런 상반된 성격은 성복대전의 양상에 그대로 투영됐습니다. 양쪽 모두 주력 부대를 중군에 두고 양쪽에는 연합군을 배치했습니다. 초반에는 초나라의 기세가 무서웠습니다. 성득신은 총력전을 펼치며 진나라 진영을 압박했습니다. 진나라 연합군은 초나라의 거센 공격에 후퇴를 거듭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모두 선진의 계산된 작전이었습니다. 그가 미리 짜놓은 시나리오대로 진행됐던 것입니다.

초나라가 저돌적인 공격으로 기선제압을 노리고 있었던 것과 반대로 진나라는 후퇴로 전투를 시작했습니다. 진문공은 유랑객으로 천하를 떠돌던 시절 초나라가 적극 지원해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만약 두 나라가 전쟁을 벌이면 무조건 90리를 후퇴하겠다는 약속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성복'이라는 곳이 바로 진나라가 90리를 물러나서 진영을 세운 곳입니다. 신의를 지킨 것이지요. 그러나 진나라의 더 큰 노림수가 있었습니다. 초나라 군대가 무서워 후퇴하는 듯한 장면을 연출하며 적군을 방심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죠. 그런데도 성득신은 첫 전투부터 진나라 군대를 강하게 밀어붙였습니다. 진문공과 선진의 작전에 말려든 것이지요.

중반전부터 전쟁의 양상이 바뀌었습니다. 선진이 곳곳에 배치한 복병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후퇴하던 진나라 주력군도 반격에 나섰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벌어지자 초나라 연합군은 당황했고 우왕좌왕했습니다. 혼전 중에 성득신도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습니다. 목숨을 아끼지 않은 장수들의 도움을 받아 겹겹의 포위를 뚫고 겨우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초나라 병사들은 이미 태반이 죽거나 사로 잡혔습니다. 성득신은 초나라 왕에게 전쟁에서 패배하면 군령을 엄중하게 받겠다고 했습니다. 자부심이 유달리 강했던 그는 왕의 처분이 전달되기도 전에 자결하고 맙니다. 그동안 패배를 몰랐던 그에게 성복대전의 참담한 결과는 엄청난 충격이었을 겁니다.

어떤 국면에서는 저돌성이 덕목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복잡한 문제 앞에서는 독이 되기 십상입니다. 해법이 단순하면서도 긴급한 경우엔 속도가 중요하고 다양한 답안을 놓고 최선이나 차선을 고르는 일은 인내심이 더 필요합니다. 혁명이 아닌 개혁은 후자에 속합니다. 저돌성보다는 전체적인 청사진을 그려놓고 하나씩 숙제를 풀어나가는 게 순리이자 정도입니다. 가속 페달에서 살짝 발을 떼고 속도를 줄여야 때가 있습니다. 그래야 넓은 시야를 확보하며 개혁의 큰 방향을 다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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