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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암살범 추적자 권중희씨의 일갈 "여긴 역사의 현장이야!"

글자크기

[어느 해방둥이의 삶과 꿈] 제4부 작가 및 시민 기자생활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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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기자로 현장 취재 중 ⓒ 박철 시민기자



기자의 꿈

나는 오래전부터 기자가 되는 꿈을 꾸었다. 고교 시절 경향신문, 조선일보에 이어서 동아일보 신문배달원이었다. 그때는 신문이 하루에 두 차례 나오는 조·석간제였다. TV나 요즘과 같은 SNS가 없던 시절이라 대부분 독자들은 신문을 통해 뉴스를 알았기에 신문을 몹시 기다렸다.

특히 1963년 5대 대통령선거 유세전이 치열할 석간 때는 상대 경쟁신문보다 더 빨리 배달하고자 경쟁이 치열했다. 동아일보 세종로보급소 측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배달하고자 본사의 신문수송차를 기다리지 않고, 곧장 본사 발송부로 배달원들을 보내 등짐으로 신문을 나르게 했다.

그래서 배달원들은 신문 발간이 늦는 날(주로 대도시 유세가 있었던 주말)은 본사로 갔다. 거기 1층 창문으로 윤전기에서 막 쏟아지는 뜨끈뜨끈한 신문 뭉치를 등에 지고 나른 후, 내 몫을 챙겨 배달구역으로 달음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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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교시절 동아일보 배달원으로 본사 발송부 창을 가리켜는 기자 ⓒ 심은식 시민기자



그때 나는 신문뭉치를 등짐으로 져다 나르면서 '지금은 신문배달을 하지만 나중에는 신문사 기자가 되거나 주필이 되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었다.

중동고교 재학 중에는 학생기자로, 특히 고2 때는 학보 뉴스의 절반은 내가 기사를 써서 메우기도 했다. 그때 나는 홍준수 선생님에게서 기사 쓰는 법과 편집을 배웠다. 홍 선생님의 빼어난 편집 솜씨로 그 무렵 우리 학교 교지와 신문은 해마다 중앙일보 주최 전국 중고교 교지·신문 콘테스트에서 최우수상을 휩쓸곤 했다.

그 시절 그런 야망을 가졌기에 나는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군에서 제대한 뒤, 나의 첫발은 애초의 꿈이었던 교단으로 향했다.

그 뒤 한 번은 교단생활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기자가 되고픈 꿈을 이루고자 기자 공채시험에 응시했다. 하지만 나는 특히 영어 실력이 원체 바닥이라 공채시험에 낙방한 뒤로는 아예 기자의 꿈은 접고 이후로는 교직을 천직으로 알며 지냈다.

그런 가운데 정말 뜻밖에 기자가 되었다. 쉰 세대에, 이미 일선에서는 물러날 나이에, 곧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된 것이다. 나는 시민기자로 등록한 이후 "늦게 배운 도둑 날 새는 줄 모르듯" "늦바람이 용마름 벗기듯"이란 속담처럼 미친 듯이 기사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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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버지니아 주 노퍽의 맥아더기념관 자료실 앞에서 재미 사학자 고 이도영(오른쪽) 박사와 함께(2004. 2. 25.) ⓒ 이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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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저씨 기사 그만 봤으면" vs. "댓글 신경쓰지 마세요"

오마이뉴스는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여행뿐 아니라 일상적인 '사는 이야기'도 기사화할 수 있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그리운 그 사람' '파리에서 런던까지' '일본 겉핥기' '구름에 달 가듯이' 등 연재기사로 일주일에 한두 꼭지씩 송고했다. 독자들의 댓글은 찬사만 아니라 비난도 많이 달렸다.

"어머! 난 이 아저씨 기사 그만 봤으면 좋겠다"는 익명의 아픈 댓글이 있는가 하면, "선생님! 댓글에 괘념치 마세요. 곧 선생님의 글을 좋아하는 광팬도 생길 겁니다. 아자! 아자!" 등 성원의 댓글도 있었다.

그 비난의 악플을 곰곰이 뜯어보면 모두가 나에게 약이었다. 내 글이 어딘가 불성실하거나 잘못이 있기 때문에 뭇매를 가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때부터는 더욱 기사에 정성을 쏟았다. 보통의 경우 기사를 송고하기 전에 평균 대여섯 번은 퇴고한 다음 보냈다. 그래도 기사가 화면에 뜬 뒤에 보면 오탈자, 비문이 눈에 보였다.

그러면 즉시 시민기자 게시판을 통해 수정 요청을 했다. 아마도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에게 나는 엄청 짜증나는 시민기자로 각인됐을 것이다. 그런 각고의 노력 탓인지 비난의 댓글은 날이 갈수록 현저히 줄어들었다.

나는 늦깎이 기자로서, 작가로서 좀 더 의미 있는 글을 쓰고자 '의를 좇는 사람'이라는 연재를 시작했다. 그 첫 번째로 한 모임에서 인사를 나눈 바 있는 박종철 군의 아버지 박정기 씨에게 부탁드리자 흔쾌히 응해주었다.

그분을 인터뷰한 뒤 취재한 기사를 보름 남짓 동안 쓰면서 여러 번 퇴고를 거듭했다. 1회분으로는 도저히 소화할 수 없어, 이를 2회분으로 나눈 뒤 [의를 좇는 사람 1] "종철아, 내 니 몫까지 하마…(2003. 6. 6.)"라는 제목으로 2003년 6·10항쟁 기념일 닷새 전에 송고했다. 그 기사에 독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댓글도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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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으로 가고자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KBS 기자의 취재에 응하다(2004. 1. 31.). ⓒ KBS



한밤중 전화

박도 기자의 [의를 좇는 사람] 2회 기사(직접 보기)는 1회 출고 열흘 뒤인 2003년 6월 15일 나갔다. 그 기사가 나간 그날 한밤중에 전화를 받았다.
"저는 스웨덴에 사는 동포입니다."
"네에! 어쩐 일로?"
"저는 선생님 열성 팬입니다."

"거기서도 제 기사를 볼 수 있습니까?"
"그럼요. 선생님 기사가 인터넷에 오르면 지구촌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아, 네."

그는 내가 쓴 기사를 첫 꼭지부터 제목과 그 내용까지도 줄줄 외고 있었다.

"박 선생님, 연재기사 '의를 좇는 사람' 후속편은 언제 나올 예정입니까?"
"마땅한 인물을 찾는 중입니다."
"제가 한 분 추천해볼까요?"

"참고하겠습니다."
"백범 암살범 안두희를 끈질기게 뒤쫓던 권중희 선생을 아시는지요?"
"잘 알고 있습니다.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의인이었지요."

"그분이 정의봉을 휘두를 때 아주 통쾌했지요. 이즈음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선생님 고향과 가까운 경북 안동 출신일 겁니다."
"알겠습니다. 서울 김 서방도 찾는다고 하는데…."


그 며칠 후 안동 임청각 주인인 이항증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권중희 선생님을 아시느냐고 묻자, 잘 안다고 했다. 내가 그분을 [의를 좇는 사람]에 모시고 싶다는 말씀을 드리자 당신이 주선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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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싱텅 D. C. 덜레스 공항에 영접 나온 교민들과(2004. 1. 31.)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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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암살범 추적자 권중희 선생을 만나다

2003년 10월 25일 토요일 정오, 우리 학교(이대부고)에서 가까운 독립공원에서 셋이 만났다. 그날 처음 만난 권중희 선생은 가죽점퍼 차림으로, 나이답지 않은 거친 말투에 행동거지가 다부지고 인상도 아주 매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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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권중희 선생 ⓒ 박도



"박 선생! 나를 만나면 손해 봅니다."

차림과 언행에서 어딘가 곤궁함과 거칠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미리 기획한 취재계획을 권 선생에게 설명하자 사진 촬영과 취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독립공원을 배경으로 두어 컷 사진을 찍은 다음 택시를 잡은 다음 옛 경교장인 서대문 네거리 강북삼성병원으로 갔다.

그 무렵 경교장 건물 1층은 강북삼성병원 응급실이었다. 우리가 2층 백범 선생의 집무실로 올라가고자 수위에게 부탁하니까 그는 올라갈 수 없다고 가로막았다. 그러자 권 선생이 수위에게 호통을 쳤다.

"아무리 사유 재산이 중요하다지만, 대재벌이 역사의 현장을 병원응급실로 만들고는 일반인의 출입을 못 하게 하다니…. 이봐! 나 당신한테 말하고 싶지 않으니 병원장 데리고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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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범 암살범 안두희 추적자 권중희 선생(옛 경교장 앞에서) ⓒ 박도



권 선생의 목소리가 워낙 크고 인상이 험악한 탓인지 수위는 원무과로 들어가더니 한 직원을 데리고 나왔다. 내가 그에게 취재 협조를 부탁하자 그는 사전에 협조공문이 없다는 말로 난색을 표했다.

"뭐 사전 협조공문?! 공문, 좋아하네. 그 잘난 공문 하나로 백범 암살범도 현역에 복귀시키고…. 여기는 병원 이전에 역사의 현장이야! 내가 이 일로 이건희를 꼭 찾아가야겠어!"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박도 기자(parkdo55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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