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화이자 코로나 백신 1호 승인, 영국이 미국보다 빨랐던 이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영국이 절차를 생략한 것일까, 하루 1500명씩 사망하는 미국이 늦장을 부린 것일까. 2일 영국의 승인 기관인 의약품건강관리제품규제청(MHRA)이 화이자와 독일생명공학기업 바이오엔테크(BioNTech)가 공동 개발한 코로나바이러스(Covid-19) 백신을, 미국의 식품의약국(FDA)와 유럽연합의 유럽의학청(EMA)에 앞서 승인했다. FDA는 오는 10일에야 이 화이자 백신의 긴급 사용 여부를 놓고 전문가들이 온라인 공청회를 열 예정이고 그 뒤 며칠 지나서 최종 결정을 내린다. 유럽의학청은 12월29일에야 화이자 백신의 승인을 발표하고, 모더나(Moderna)사의 백신 승인은 내년 1월12일로 잡아놓은 상태다. 어떻게 같은 화이자 백신을 놓고, 영국은 빨리 승인할 수 있었을까.

조선일보

영국에 첫 80만 정의 코로나 백신을 제조해 운송할 제약사 화이자의 벨기에 Puurs 공장에서 2일 직원들이 창문으로 손을 흔들고 있다./A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영의 백신 전문가들은 영국은 백신을 개발하는 제약사로부터 수시로 임상시험 자료를 받아 검토하는 절차를 취하고, 미국은 모든 원자료(raw data)를 넘겨받은 뒤 이를 처음부터 꼼꼼하게 검토해 ‘속도의 차이’를 낳았다고 말한다. 또 영국이 올해 12월31일 EU에서 탈퇴하면서, 그 동안 유럽 대륙 전체의 신약(新藥) 승인을 맡아왔던 MHRA로서는 의약품의 평가 능력에서 여유가 생겨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영국 “의약품 승인 당국이 초기부터 수시로 제약사 자료 받아”

영국 MHRA의 승인 절차는 제약사로부터 수시로 임상 자료와 해당 백신을 넘겨 받는 롤링(rolling) 검토제다. MHRA 청장인 준 레인 박사는 뉴욕타임스(NYT)에 “등산을 한다고 하면, 우리는 지난 6월부터 오르기 시작했다”며 “11월 10일 첫 임상 결과가 나왔을 때 우리는 베이스캠프에 도착했고, 최종 결과가 나왔을 때에 우리도 마지막 한 발만 뛰면 되는 위치에 있었다”고 말했다. 화이자 측은 “MHRA는 아주 초기부터 자료를 넘겨 받으면서 수시로 물어, 어떤 때에는 자료를 보낸 지 10분만에 질문을 해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화이자가 영국 MHRA에 마지막 자료를 보낸 것이 11월28~29일 주말이었고, 3일 뒤 최종 승인 발표가 났다고 전했다. 레인 MHRA 청장은 2일 “국제적으로 확립된 백신 검토 절차를 따랐으며, 어떠한 절차도 생략·무시된 게 없음을 모두 확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 FDA의 검토 방식은 다르다. NYT는 “영국이나 EU 승인기관은 기본적으로 제약사가 제공한 임상 결과 자료에 의존하지만, FDA는 제약사로부터 임상시험의 원(原)자료를 받아서 그 결과가 도출되는지를 재분석한다”고 전했다. FDA에 백신 관련 조언을 하는 펜실베이니아대 폴 오핏 교수는 “FDA가 이렇게 까다로운 검증 절차를 밟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백신접종 희생자 수를 최소화하고 안전한 백신을 제공할 수 있었다”며 FDA의 승인 절차 방식을 옹호했다. FDA의 직원은 1만7000명이다.

◇유럽연합 신약의 최종 평가 담당했었던 영국

영국은 지난 16년간 EMA의 주(主)동력이었다. EU의 개별 회원국이 자국에서 각기 임상시험을 하면, 이에 대한 최종 평가는 1320명의 전문 인력을 갖춘 영국의 MHRA가 맡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영국이 EU에서 탈퇴하게 되자, 직원 900명인 유럽연합의 EMA는 370개 신약에 대한 평가 작업을 아이슬란드·노르웨이 등 다른 회원국들로 급히 돌렸다”고 전했다. 영국은 또 긴급 상황 때에는 각국이 독자적으로 의약품을 승인할 수 있는 예외 조항을 들어, EU 탈퇴가 공식화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EMA의 틀을 벗어나 초기부터 독자적인 승인 절차를 택했다. 결국 MHRA로서는 EU로부터 오는 의약품·백신 평가의 부하(負荷)가 확 줄어들어, “이 경우엔 오히려 덩치가 작은 것이 유리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EMA 본부가 암스테르담으로 이전하면서, 상당수의 우수한 전문 인력은 런던 잔류를 택했다. 반대로 유럽의학청(EMA)은 화이자 백신에 대해 27개 회원국 전체의 의견을 또 구해야 한다. 이 과정을 아무리 줄여도, EU의 경우 화이자 백신의 접종은 내년 초까지 미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화이자와 바이오엔테크 사는 3일 저녁 우선 80만 정의 백신을 벨기에의 제조공장에서 드라이아이스로 포장해 영국으로 저온 운송한다.

[이철민 선임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