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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짜오! 베트남] 특별입국ㆍ비상경영으로 버틴 韓기업, 3분기에 결국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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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코로나 시대 韓기업 분투기

편집자주

국내 일간지 최초로 2017년 베트남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가 2020년 2월 부임한 2기 특파원을 통해 두 번째 인사(짜오)를 건넵니다. 베트남 사회 전반을 폭넓게 소개한 3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급변하는 베트남의 오늘을 격주 목요일마다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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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내 코로나19 사태가 안정화된 지난달 18일 베트남 북부 빈푹성에 위치한 한국 전자부품 생산업체 캠시스 공장에서 현지인들이 늘어난 생산 일정을 맞추기 위해 분주히 부품을 검사하고 있다. 빈푹성=정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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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가동을 절반 가량 멈출 수밖에 없었다. 신규시설 가동을 위해 베트남에 들어와야 할 엔지니어들의 하늘길은 막혔고, 노조는 '일방적 해고는 안 된다'고 애원한다. 생산물량은 줄고, 늘어나는 건 재고와 한숨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공포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6월. 베트남 북부 꽝민 공업단지에서 10년째 부품 생산 공장을 운영 중인 A사 법인장의 표정은 수심만 가득했다. 코로나19는 지난해 말 시작한 생산시설 첨단화로 막 수익률이 상승하던 A사를 순식간에 주저앉혔다. 생산감소로 인한 운영자금 부족 사태가 언제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베트남에 가을이 내려 앉은 지난달 중순 A법인장을 다시 만났다. 짧다면 짧은 5개월 사이 그의 얼굴은 몰라보게 밝아졌다. 그는 "수주 물량이 지난해 하반기 대비 더 늘어 연매출은 평년 수준으로 맞출 수 있을 것 같다"고 연신 웃음을 지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의 급격한 전환. 반년 사이 베트남에선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특별기 뜨고 코로나도 안정… 韓 FDIㆍ수주 역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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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한국 중소기업인들이 베트남 번돈공항에 입국하기 위해 수속을 밟고 있는 가운데 현지 보건당국 관계자가 취재진의 건물 내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꽝닌성=정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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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반전은 필수 기업 인력들의 베트남 특별입국이 활성화되면서 움텄다. 지난 3월 삼성이 전세기를 통해 베트남 특별입국 길을 처음 뚫은 이후 5~8월 현지 생산을 지탱하는 중견 및 중소기업 인력들의 입국도 순차적으로 진행됐다. 주베트남 한국대사관을 중심으로 대한상공회의소(KCCI) 베트남 사무소, 한인 상공인연합회(KOCHAMㆍ코참), 베트남 중소기업연합회(KBIZ)가 주도한 베트남 특별입국 인원은 11월말 기준 1만8,000여명에 달한다. 이는 한국이 코로나 시대에 해외로 송출한 기업인의 60%에 달하는 수치로, 이들은 시설 유지ㆍ확충 및 사업 재개를 위해 더 이상 입국이 미뤄지면 안 되는 말 그대로 ‘대체 불가 인력’이었다.

사람이 들어와 만들어 놓은 길에 돈도 따라 들어왔다. 8월 이후 베트남 내 지역감염 사례가 발견되지 않으면서 미뤘던 투자 역시 때 맞춰 진행된 것이다. 실제로 2일 베트남 투자청(SCIC)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ㆍKOTRA)에 따르면, 한국기업의 현지 활성화 정도를 나타내는 외국인직접투자(FDI) 액수는 올 3분기에만 1~2분기 총투자액(14억2,900만달러) 보다 많은 17억4,000달러가 늘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린 1~2분기에 부동의 베트남 FDI 1위를 내준 뒤 5위까지 떨어진 순위도 같은 기간 2위로 회복했다.

3분기 신규 투자액의 약 75%는 기존 생산 시설을 확충하는 이른바 '그린필드'에 쓰였으며, 나머지 투자금은 현지 기업 인수(M&A)나 지분 확보 등 '브라운필드'에 사용됐다. 기존 생산 역량을 강화하는 것에 집중하면서 사업 다각화 또한 진행했다는 뜻이다. 특히 신규 그린필드 투자액의 54.2%에 달하는 12억9,000만달러가 한국기업의 70% 이상이 진출해 있는 제조가공업 분야에 쓰이면서 상반기 동안 막혀 있던 생산 활로도 제대로 뚫린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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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돈과 사람이 들어오기 전까지 집단 비상경영체제를 잘 유지한 현지 기업인들의 위기관리 능력은 마지막 퍼즐이다. 먼저 움직인 곳은 그나마 자금 여력이 있던 대기업과 1차 협력업체였다. 이들은 상반기 동안 한국 하청기업들의 경영난 해소를 위해 단가를 동결하고 대금 지급 일정도 당겼다. 물량 역시 가급적 한국기업에 선배정했으며, 직역별로 상생기금을 마련해 자금난에 빠진 동포 기업인을 돕기도 했다. 개별 기업들은 축적된 현지인들과의 교류 경험을 살려 신규 인력을 뽑지 않는 대신 '격주 토요 유급 휴무제' 등을 통해 인력 감축에 유연히 대처하며 최소한의 시간을 벌었다.

삼박자가 맞으면서 한국기업의 매출 역시 증가하는 모습이다. 특히 베트남 전자부품 관련 산업을 장악하고 있는 한국기업들의 반등이 가장 눈에 띈다. 휴대폰을 포함한 전자부품은 베트남의 단일 수출품 1위이자 전체 수출액의 33% 가량을 차지한다. 삼성전자 협력사 모임인 '협성회' 회장 조장현 이렌택 법인장은 "부품업계 자체 전수조사 결과, 지난 4~5월 한국기업들의 매출이 급감했으나 하반기부터 일제히 개선되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인도 등 코로나19 위기국의 물량 공백으로 베트남에 수주가 몰리면서 오히려 하반기 매출은 지난해보다 더 늘어나는 추세"라고 밝혔다.

베트남의 韓기업 모시기… 중국계 자본 도전은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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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뚜언안 산업무역부 장관이 지난달 26일 한국기업인들과의 간담회에서 적극적인 투자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하노이=정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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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적 FDI 700억달러를 자랑하는 한국이 현지에서 회생하자 베트남 각급 정부는 너도나도 한국 기업 모시기에 나섰다. 베트남 경제계 수장인 쩐뚜언안 산업무역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하노이에서 열린 한국기업인들과의 간담회에서 "이번 달에 부처 산하로 한국기업지원전담센터와 산업기술개발센터를 개소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한국의 전자부품ㆍ자동차 소재산업 추가 진출을 위해 소규모 지원 그룹까지 만들어 적극 지원할 것을 분명히 했다.

지방정부의 구애는 더 적극적이다. 200여개의 한국 기업이 진출한 북부 빈푹성은 지난달 18일 자국 FDI 정책을 총괄하는 기획투자부(MPI)의 쩐주이동 차관까지 동원해 투자설명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황티투이란 빈푹성 서기장은 "전자산업 클러스터를 만들고 있는 빈푹은 한국 기업에게 행정절차 간소화 및 인센티브 제공 등 최고의 경영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한 뒤 대한상의와 투자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북부 박닌·박장성 등 5개 지방정부와 중부 다낭시 등도 이달 앞다퉈 한국기업인을 초대해 투자설명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베트남 내 한국기업의 선전은 내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미중 무역갈등이 촉발한 글로벌 기업들의 공급망 다변화 정책으로,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한국기업의 공산품에 대한 수요는 향후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글로벌 기업들의 베트남 진출 경쟁이 격화되고 있지만, 20년 전부터 북ㆍ남부 산업 요충지를 선점한 한국기업들은 '파이'를 뺏기는 게 아닌 커지는 효과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 현지 연계 생산망이 아직 구축되지 않은 글로벌 기업 입장에선 한국의 시스템을 활용하기 위해 협업을 요청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취지다.

다만 올해 무섭게 남하하고 있는 중국계 자본이 미국 우회 수출 경로가 아닌 현지 생산으로 기조를 바꾼다면 상황은 달라질 공산이 크다. 값싼 중국산과 현지에서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 기점유한 공급망도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코트라 하노이 무역관은 "최근 44개 베트남 진출 한국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현 상황만 유지하겠다'고 답한 비율이 43.2%에 달했다"며 "변화하는 글로벌밸류체인(GVC) 시장에서 선도국이 되려면 좀 더 적극적인 시장 개척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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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옥현 대한상의 베트남 사무소장(앞줄 왼쪽)과 황티투이란 빈푹성 서기장이 지난달 18일 한국과 빈푹성의 투자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있다. 빈푹성=정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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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ㆍ빈푹성= 정재호 특파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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