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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민간 집 사들여 전세난 해소?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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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양주시의 택지지구에 있는 다가구 주택을 보유한 황모(44)씨. 그는 지난 11‧19대책에서 정부가 언급한 매입임대주택에 대한 기대가 컸다.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이 확 늘고 임대사업자 혜택도 축소되면서 다가구 주택 보유가 부담스러워져서다. 이번 기회에 정부가 공공전세로 활용할 수 있도록 다가구를 팔 생각이었는데 2일 발표한 후속 방안을 보고 마음을 접었다.

정부가 책정한 가구당 평균 지원 단가가 서울 6억원(최대 8억원), 경기‧인천 4억원, 지방은 3억5000만원이어서다. 국토교통부는 “(이 정도 지원 단가면) 도심 내 수요가 많은 방 3개 이상의 중형 주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황씨가 현재 보유한 다가구는 총 5실이다. 모두 방 3개짜리다. 정부의 계산대로라면 황씨는 다가구를 통째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팔았을 때 최대 20억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 가격에 정부에 넘기면 사실상 남는 게 없다. 황씨는 2년 전 이 다가구를 지으면서 땅값 12억원에 건축비로 8억원을 썼다. 등기비(1억원) 등 부대비용까지 따지면 원가만 20억원이 넘는다.

현재 실당 전셋값은 평균 3억원으로, 보증금만 15억원이다. 황씨 입장에선 매도할 이유가 없다. 황씨는 “시세와 원가보다 싸게 매입해서 전세를 놓겠다는 건데 정부가 갭투자 하겠다는 얘기와 뭐가 다르냐”고 말했다.

중앙일보

경기도 수지택지2지구 단독주택촌의 원룸형 다가구 주택. 소형 원룸이지만 현행법상 5층 이상의 도시형생활주택은 공동주택(아파트)으로 분류된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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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전세 대책으로 내놓은 ‘서민‧중산층 주거안정 지원방안’(11‧19대책)이 시작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전세 대책의 핵심인 공공전세와 신축 매입약정 물량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정부가 내놓은 전세 대책의 바탕에는 ‘민간의 협조’가 깔렸다. 민간업체(집주인)가 공공전세 주택으로 쓸 수 있도록 집을 지어서 정부에 팔아야 한다.

공공전세 주택은 공공주택사업자인 LH가 다세대‧다가구나 오피스텔 등 신축주택을 매입해서 중산층 가구에 한시적(2022년까지)으로 공급하는 주택이다. 2일 국토부에 따르면 정부가 앞으로 2년간 공급할 공공전세 주택은 1만8000가구다. 내년 9000가구, 2022년 9000가구다.

문제는 정부의 계획대로 제대로 굴러갈지다. 현재도 LH가 신축주택을 매입해 임대주택으로 공급한다. 하지만 원활하지 않다. 집을 사려는 정부와 팔려는 민간업체가 원하는 가격 절충이 쉽지 않아서다. 당장 황씨만 해도 매도할 생각이 있었지만, 가격을 보고 생각을 접었다.

민간업체를 움직일 당근도 마땅찮다. 건설자금대출을 1%대로 제공하겠다고 하지만 건설원가에서 남는 것이 없으면 민간업체가 집을 짓겠다고 나설 이유가 없다. 공공전세를 제공한 민간업체에는 공공택지 내 아파트 용지 입찰에서 우선 공급‧가점을 주겠다고 하지만 작은 다세대‧다가구를 짓는, 이른바 ‘집 장사’하는 소형 건설업체에는 의미가 없는 얘기다.

그런데도 정부는 장밋빛 전망만 내놓는다. 매입 비용 마련에도 느긋한 모양새다. 비용의 45%는 대출(주택도시기금)로, 5%는 LH가 부담하고 나머지 50%는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받아서 메우면 된다는 태도다. 예컨대 6억짜리 주택을 2억7000만원은 대출로, 3000만원은 LH가, 나머지 3억원은 보증금을 받아서 산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갭투자다.

빚 걱정도 LH의 몫이다. 변창흠 LH 사장은 지난달 3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출석해 “(전세대책으로 인한 부채가) 8조2000억~10조원 정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LH가 국가 임무를 하는 데 평가에서 안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는 만큼 기금 융자나 보증금 등은 부채비율 산정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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