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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1명은 냉장고, 1명은 쓰레기속...여수 두살배기 쌍둥이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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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주민들 “2살 아이 얼굴 한 번도 보질 못해”

쓰레기 가득 차 어른도 걷기 힘든 집에서 살아와

2살 아이, 아동보호기관 옮겼지만 걷는 것 거부 심해

“2살 아이도 얼굴 한 번 보질 못했어요. 살아남은 아이도 쓰레기 더미에서 지내온 거죠.”

1일 전남 여수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주민들이 중앙일보 취재진에게 조심스레 털어놓은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 이면의 또 다른 아동학대 정황이다. 지난달 27일 이곳 가정집에서 생후 2개월 된 영아 시신이 냉장고에 2년 동안 보관돼 온 사실이 드러나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생존 쌍둥이 정체 숨겨 온 엄마



중앙일보

영아 시신이 방치된 것으로 추정되는 전남 여수시의 한 가정집 냉장고. 프리랜서 장정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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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A씨(43)의 엽기적 행각은 지난달 6일 한 이웃 주민이 “아랫집에 쓰레기가 방치돼 있고 아이들이 그 속에서 살고 있다”고 신고하면서 드러났다. 아동학대 정황이 드러나자 전남 여수경찰서와 여수시는 지난달 20일 7살 아이와 2살 아이를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 보내 어머니와 분리조치 했다. A씨 집에서 치운 쓰레기만 5t에 달했다고 한다.

경찰은 냉장고 속에서 발견된 영아가 2년 동안 방치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웃 주민들은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7살, 2살 아이들에 대한 걱정도 크다고 했다. A씨는 숨진 아이뿐만 아니라 그와 쌍둥이로 태어나 멀쩡하게 살아 있는 2살 아이의 존재도 주변에 숨겨왔다고 한다.

첫째 아이에게 종종 밥을 먹여왔다는 한 주민은 “7살 아이가 지난해부터 동생이 있다는 말을 이따금 해왔는데 올해 5~6월쯤 A씨에게 동생의 존재를 물었더니 본인 아이가 아니고 아픈 사촌 동생을 대신 돌봐주고 있다면서 숨겼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A씨가 외출할 때도 7살 아이만 동행했고 2살 아이와 함께 다니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첫째 아이 “집에 아픈 동생 있는데…”



A씨가 2살 아이의 존재를 숨겨도 주민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 했다. 첫째 아이가 또래 아이들과 어울릴 때 “나도 동생이 있다. 앉지도 걷지도 못하는 아픈 아이가 있다”는 말을 해왔기 때문이다. 아동보호기관에 맡겨진 2살 아이는 걸음마는 뗐지만 걷는 것을 심하게 거부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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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전남 여수시 공무원이 확인한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이 발생한 가정집 내부. 사진 여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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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여수시와 아동보호기관 직원들이 방문했을 때마다 집 내부를 공개하는 것을 매우 꺼렸고 복도로 나와서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A씨는 지난달 20일 아동보호기관 직원이 경찰관을 대동하고 방문하자 현관문을 열어줬다. 지난달 25일 관할 동사무소 직원이 A씨의 집을 청소했을 때 찍은 사진에서는 제대로 걸어 다니지 못 할 정도로 쓰레기가 집 안에 가득 쌓여 있는 모습이었다.



엄마 대신 아이들 돌봐 온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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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전남 여수시 공무원이 확인한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이 발생한 가정집 내부. 사진 여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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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할 동사무소 직원은 “A씨의 집을 방문했을 때 아이들이 먹을만한 음식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A씨가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주민들이 대신 챙겨주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한 주민은 “2살 아이를 목격한 유일한 이웃이 있는데 너무 심하게 울고 있어서 A씨 집으로 가 아이를 데려와서 씻겨줬다. 기저귀를 벗기자 오물이 심하게 말라붙어 있을 정도로 방치됐었다”고 전했다.

A씨는 2살 아이의 출생신고나 영아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A씨가 2018년 5월 현 주소지로 전입신고를 했지만, 일정한 소득이 있었기 때문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분류되지 않아 동사무소가 숨지거나 쓰레기 더미 속에서 아이들이 방치된 상황을 파악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냉장고 속 영아 시신의 발견도 쌍둥이 존재를 의심한 이웃 주민의 계속된 신고가 아니었으면 계속 묻혀 있을뻔했다.



부검 결과 “외부 손상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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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찾은 전남 여수시의 한 가정집에 우편물 방문 수령을 알리는 안내장이 가득 쌓여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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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경찰서는 A씨를 아동학대 혐의로 구속하고 2개월 영아의 정확한 사망 원인을 조사 중이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영아의 사인 확인을 의뢰했는데 1차 부검 결과 폭행 등 외부 손상 흔적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 관계자는 “최종 부검 결과는 2개월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A씨를 상대로 왜 냉장고에 영아 시신을 방치했는지 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여수=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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