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과세 형평성은 어디에...정부 세법개정안, 선거 앞둔 정치권에 줄줄이 '퇴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2020년 세법개정안, 30일 밤 국회 기재위 의결
개인 유사법인 초과 유보소득·액상형 전자담배 등
과세 형평, 조세 합리화 추구한 정부안 대다수 무산
한국일보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고용진 조세소위원장 주재로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오대근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과세 형평성 제고'와 '조세제도 합리화' 차원에서 정부가 내놓은 세법개정안이 국회 논의 과정에서 크게 후퇴했다. 액상형 전자담배 세율 인상, 개인 유사법인에 대한 유보소득 과세 등 세원을 넓히거나 세율을 높여야 하는 개정안이 상당수 좌초된 것이다. 세금을 더 내야 하는 이해관계자의 반발이 거세다 보니,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과세 형평성보다는 당장의 표 계산에 더 집중한 결과로 풀이된다.

소득세 회피 꼼수 막으려 했지만... 업계 반발에 무산


1일 국회·정부에 따르면, 전날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가장 대표적인 법안은 개인 유사법인 사내 유보금 과세 내용을 담은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이다. 정부는 지난 7월 발표한 세법개정안에서 개인 유사법인의 '초과 유보소득'을 주주에게 배당한 것으로 간주해 배당소득세를 과세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이 같은 제도를 도입하려는 건 소득세 회피 목적으로 법인을 악용하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현행법상 똑같이 부동산 임대료로 5억원을 벌어들인다고 가정할 때 개인 사업자는 소득세율을 적용받아 1억7,560만원의 세부담을 지지만, 1인이 지분을 100% 보유한 법인은 법인세로 8,000만원만 내면 되기 때문이다. 1인 주주법인이 2010년 5만개에서 지난해 28만개로 급증하기도 했다.

이 같은 취지에도 중소기업 등을 중심으로 '정상적인 기업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그러자 정부는 "생산적인 법인이 성장해 나가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며 추가 대책을 내놨다. 특히 △최대주주 및 그 특수관계자가 80% 이상 지분 보유 △배당 가능한 소득의 50% 및 자기자본의 10%를 초과하는 유보소득 보유 등 과세 대상 기업 요건을 까다롭게 했다.

그럼에도 국회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는 업계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날 기재위에서 "정부로서 개인 유사법인의 유보소득에 대한 배당 간주제도를 도입하려 했으나 제외된 점에 대해 아쉽다"며 정치권에 서운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국일보

세법개정안 주요 수정 내용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액상형 전자담배 세율 현행 유지... 가상화폐 과세는 2022년부터


과세 형평성을 맞추려는 시도도 일부 무산됐다. 정부는 애초 세법 개정을 통해 액상형 전자담배의 개별소비세율을 현행 1㎖당 370원에서 740원으로 높일 계획이었다. 궐련이나 궐련형 전자담배와 비교했을 때, 액상형 전자담배의 세 부담이 절반 이하로 낮아 과세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신규 과세 대상 담배에 대한 급격한 세 부담 증가가 우려된다"는 이유에서 '현행 세율 유지' 결론이 났다. 국회가 액상형 전자담배 업계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가상화폐 과세는 시기가 미뤄졌다. 정부는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원칙 아래 내년 10월 1일부터 가상자산 소득에 대한 과세를 시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국회는 "가상자산 과세 인프라 준비 기간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로 시행 시기를 내후년 1월 1일로 늦췄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는 (세법개정안 발표 이후) 1년 넘는 시간이 있어 내년 10월이면 과세 준비 기간이 충분하다고 봤다"면서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시간을 더 달라고 요구해 일부 받아들여진 것"이라고 말했다.

형평성 높이려다 '단독 명의 역차별' 논란도


여론에 못 이겨 정부가 받아야 할 돈을 못 받게 될 수도 있다. 재난으로 영업상 현저한 손실이 발생할 경우 면세점 특허수수료를 감경할 수 있게 한 관세법이 대표적이다. 애초 정부 내에선 면세점 특허수수료를 깎아줄 근거가 마땅치 않다는 의견이 우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면세업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큰 피해를 본 것은 맞지만, 전년도 매출액을 기준으로 수수료를 산정해 올해 매출이 적으면 내년도 수수료가 크게 줄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회는 업계 어려움을 근거로 수수료 감경 가능성을 열어뒀다.

형평성을 높이려는 시도가 반대로 '역차별' 논란을 낳기도 한다. 국회는 "단독 명의자에게만 고령자·장기 보유 공제를 적용하는 기존 세법은 공동 명의자 차별"이라는 지적을 받아들여 공동 명의 1가구 1주택자에게도 기본공제 9억원과 종합부동산세 고령자·장기 보유 세액 공제를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공동 명의 1주택 가구는 그 동안 12억원까지 종부세 기본 공제를 받아왔다는 점에서 일각에선 '단독 명의자 역차별'을 주장하는 상황이다.

정치권에서는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개인이나 기업에 세 부담을 키우는 정부안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법안 처리에 난색을 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올해 세법개정안에 새로운 내용이 워낙 많고 방대해서 논쟁이 많았던 측면이 있기는 했다"며 "다만 과세 형평성과 조세 합리화 차원에서 진행한 정부 방안이 선거를 앞둔 정치권 논리에 시행되지 못하는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세종=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