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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신헌철 특파원의 워싱턴 워치] 미리 보는 바이든 정권 ‘트럼프 청산’ 나선다… 코로나 극복·갈등 해소 주력, 동맹복원 새판 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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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마침내 트럼프 시대의 종언을 택했다.

120년 만의 최고 투표율이 상징한 유권자의 힘으로 역사의 물줄기를 다시 돌려놨다. 미국이 지닌 자정과 복원 능력을 세계에 보여줬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불러온 각자도생 신드롬에 빠졌던 세계는 혼돈에서 질서로의 복귀를 기대하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세기 이후 미국의 이익을 ‘공개적’으로 최우선시한 최초의 대통령이었다. 백인 저소득 계층을 기반으로 삼아 정치인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팬덤’을 형성했다. 하지만 반대 진영에선 좌충우돌하며 제멋대로 국정을 운영해온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했다. 두 진영 간 충돌에서 조 바이든 당선인은 비교적 여유 있는 승리를 거뒀다. 유권자 투표 수에선 무려 596만 표 차이가 났다. 확보한 선거인단 수는 306명 대 232명으로 역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전대미문의 코로나19 팬데믹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을 막아선 결정적 원인이 됐다. 질병 확산 방지보다 경제를 우선시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은 ‘악수’가 됐다. 또 올해 미국을 뒤덮었던 인종차별 반대 시위는 유색인종들의 정치 참여 열기를 끌어올린 기폭제가 됐다.

매일경제

미국 워싱턴DC 연방 대법원 앞에서 불법체류 청소년 추방유예 제도(DACA·다카) 존속 판결을 축하하는 불법체류자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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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정권이 내년 1월 20일 정상적으로 출범한다면 미국 역사상 정권 인수인계 과정에서 가장 극심한 진통을 겪은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단임 대통령의 불명예를 안게 된 트럼프 대통령은 권좌에서 물러나는 것을 극렬히 거부했다. 대선 전부터 우편투표 부정 가능성을 거론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미시간주, 위스콘신주, 펜실베이니아주 등 러스트벨트 3곳과 남부 조지아주, 서부 애리조나주 등에서 공화당 측 선거 참관인이 제대로 개표 과정에 입회하지 못했고, 우편투표 과정에서 부정이 개입됐다고 주장했다. 조지아주와 위스콘신주에 대해선 재검표 요청까지 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12월 14일 선거인단 538명이 모여 차기 대통령을 공식 선출해야 선거가 끝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19세기부터 선거 직후 개표가 대부분 끝나고 주별로 승자가 결정되면 AP통신이 차기 대통령 당선인을 발표하는 것이 관례였다. 선거인단 중에 일부 변심해서 다른 사람에게 표를 찍기도 하지만 간접선거 제도를 택한 미국에서 이는 통과의례 성격일 뿐이다.

선거인단은 각주 선거결과에 귀속된다는 것은 연방대법원의 판례에도 나와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무더기 소송을 펼치며 주별로 선거 결과를 확정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방해 전술을 폈다. 결과가 시한 내에 정해지지 않으면 해당 주의 선거인단은 ‘자유 투표’를 할 수 있거나 명단 선정에 대해 각주에서 논란이 빚어지면 아예 투표에서 해당 주가 배제될 수도 있다는 제도의 허점을 노린 것이다.

당선인이 정해지면 기존 정권은 두 달 동안 새 정권에게 인수인계를 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예산 지원은 물론 정보 공유를 전면 거부했고 정권을 내주게 된 공화당은 의도적인 침묵으로 선거 패배의 한풀이를 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몽니에 당황했다. 하지만 백악관 비서진과 내각 인선을 순차적으로 진행하고 연일 브리핑을 통해 당선인 행보를 이어갔다. 미국 정치사에서 극단적 당파정치의 시기로 기록될 트럼프 시대는 끝까지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찌됐든 트럼프 대통령이 ‘친위 쿠데타’만 벌이지 않는다면 1월 20일 바이든 정권은 산고 끝에 탄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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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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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직후 국제기구 재가입하고 동맹복원 나설 듯

바이든 당선인이 내세운 키워드는 통합과 치유, 민주주의와 미국 리더십의 회복이지만 쉽지 않은 과제이기도 하다. 안으로는 국론 분열의 상흔을 씻고 밖으로는 ‘아메리카 퍼스트’가 훼손한 미국의 위상을 재건해야 하는 무거운 과제를 안게 됐다.

바이든 당선자가 역사상 최악의 파당 정치를 극복하고 협력의 정치를 부활시킬지, 경기침체 없이 코로나19 팬데믹을 종식시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민주당이 좌파 정책으로의 급격한 변침을 시도할 경우 또 다른 ‘현기증’을 불러올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바이든 정권인수위원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코로나19 대응 ▲경기 회복 ▲인종 평등 ▲기후변화 등을 4대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물론 이 가운데 가장 시급한 것은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일이다.

미국은 실내 활동이 많아지는 겨울철에 접어들고 선거까지 거치면서 감염자가 폭증했다. 인수위는 코로나19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진단능력 확대, 마스크 착용 의무화 등 집권 이후 정책 과제를 제시했지만 결국 백신 보급이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제약업체 화이자와 모더나의 백신 임상 3상 결과가 양호하게 나왔지만 3억 명이 넘는 미국인 가운데 60~70%가 백신 접종을 받아야 전체적인 면역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회복은 코로나19 대응과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다. 결국 코로나19를 잡아야 미국 경기도 본궤도로 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지난봄과 같은 셧다운(경제활동 중단)을 할 경우 경기악화가 불가피해진다.

일단 바이든 당선인은 “전국 단위의 일괄적 셧다운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대신에 공화당이 장악 중인 상원을 향해 3조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안을 서둘러 처리하자고 압박했다. 일단은 헬리콥터에서 현금을 살포하는 방식으로 급한 불을 끄자는 얘기다.

이에 비해 인종차별 문제는 대부분 의회 협력이 불가피한 중장기 이슈다. 경찰의 목조르기 진압을 금지하거나 총기사용 지침을 바꾸는 것은 경찰개혁법을 통해 법제화한다는 계획이기 때문에 시간이 소요되고 경찰력 약화에 대한 논란도 따를 전망이다.

기후변화 대응은 바이든 정권의 ‘트레이드 마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가 바이든 정권과 보조를 맞출 경우 에너지 산업 구조변화의 속도도 가팔라질 수 있다. 인수위 측은 이날 전기, 통신, 수도 등 인프라스트럭처를 친환경적으로 재건하고 전기차 산업 진흥을 위해 대대적 투자를 하겠다고 거듭 밝혔다. 이를 통해 자동차 산업에서 1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전국적으로 400만 개의 빌딩을 에너지 효율적으로 리모델링함으로써 역시 최소 100만 개의 일자리 창출을 기대했다. 이 같은 복안이 실현되려면 연방정부의 예산 지원이 불가피하지만 공화당이 공조할지는 미지수다.

행정명령을 통한 ‘트럼프 유산 지우기’도 예상된다. 오는 1월 5일 조지아주에서 상원의원 2석을 놓고 치러지는 결선투표에서 이변이 발생하지 않는 한 공화당이 상원을 장악할 전망이기 때문에 바이든 당선인도 행정명령을 통한 우회로를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행정명령은 의회 동의 없이 대통령 권한으로 행정력을 발휘할 수 있는 최대 범위다. 의회 다수당 지위를 야당에 내줬을 때 미국 대통령들이 즐겨 사용해온 우회 통로지만 삼권분립 정신에 반한다는 주장도 있다.

매일경제

미국 제약사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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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관계 설정이 최대 변수··· 선택적 협력 시도 전망

우선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으로 번복시킨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 등 환경 기준을 되돌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4년 전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날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에 들어가는 예산 부담을 줄이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멕시코 국경에 장벽 건설, 환경영향평가 심의기간 축소 등 취임 후 일주일간 무려 12개의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8년 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취임 첫날 전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만든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지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바이든 당선인이 내년 1월 20일 정오(현지시간) 워싱턴DC의 의사당 앞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미국의 46대 대통령에 오른 뒤 오후 스케줄은 이미 공개돼 있다.

오벌오피스 ‘결단의 책상’에 앉아 파리기후협약 재가입 문서에 서명하는 일과 불법체류 청소년 추방 유예제도(DACA·다카)를 영구화하는 법안에 서명해 의회로 보내는 것이다.

국제관계 이슈는 워낙 국내 문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에 다소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하지만 바이든 당선인은 이미 동맹의 재건, 국제기구 등 다자협력체제의 부활을 약속했다.

한미관계에도 다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승리를 확정한 뒤 나흘 만에 이뤄진 문재인 대통령과의 첫 전화통화에서 한국을 가리켜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와 번영에 있어 린치핀(linchpin, 핵심축)”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한국에 대한 방위공약을 확고히 유지하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했다.

한국을 ‘린치핀’에 처음 비유한 것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었다. 바이든 당선인은 같은 날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와 통화에선 일본을 ‘코너스톤(cornerstone, 초석)’이라고 불렀다. 바이든 정권은 과거 버락 오바마 정권 때처럼 한일관계 회복을 통한 한미일 3각 협력 강화를 꾀할 가능성이 크다. 한미관계 정상화와 동시에 경색돼 있는 한일관계에도 해빙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민주당은 한미 방위비 분담금협정(SMA)의 조기 타결을 한목소리로 주장하고 있다. 바이든 정권이 출범하고 수개월 내에 적정선에서 타결될 것이란 기대감이 높다.

바이든 당선인이 내세운 다자주의 부활도 미중 갈등 속에서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이었던 한국에게 외교의 숨통을 좀 더 틔워줄 수 있다.

다만 바이든 정권 역시 중국을 강하게 견제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 변수다. 오바마 정권에서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지낸 마이클 프로먼은 최근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좌담회에 나와 바이든 정권이 일부 국가가 기대하는 것처럼 완화된 통상정책을 추진하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른 나라 좌파정부들도 그렇듯이 노동이나 인권, 환경 등에서 문턱을 높일 것이란 얘기다. 또 지적재산권이나 디지털 무역 등 미래 산업과 관련된 이슈에서는 미국이 쉽게 양보를 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대중(對中) 정책은 경제 문제뿐 아니라 안보와 인권 문제 등을 포괄해서 접근할 것으로 예측된다. 만약 바이든 정권이 대중 유화책을 펴는 것으로 인식된다면 당장 2년 뒤 중간선거에서 참패를 불러오는 정치적 실책이 될 수도 있다.

사실 트럼프 정부에서 타결해놓은 이른바 미중 1단계 합의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농산물 등 일부 품목의 수출량을 늘려놓은 수준일 뿐 보조금, 지재권, 국영기업, 시장접근 등 핵심 이슈는 뒤로 미뤄놓았다. 바이든 정권은 중국과 얽힌 실타래를 다시 풀어야 하는 힘든 숙제를 떠안은 셈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무역 문제에 관세부과라는 수단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이미 부과돼 있는 대중 관세를 중국의 변화 없이 되돌리기도 힘들 것으로 보인다.

물론 미국 재계에서는 관세 인하를 통해 수입품 가격을 낮추면 국내 소비 진작에도 도움이 될 것이란 논리를 펴고 있다. 원자재 수입가격을 낮춰 결과적으로 미국산 제품의 수출 증가도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은 결과적으로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 창출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소비자 후생과 기업들의 공급망에 악영향만 끼쳤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바이든 정권이 과연 중국에 대해 어떤 정책기조를 가져갈지가 세계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트럼프 정권은 중국을 과거 소련과 같은 적으로 규정하고 미국 패권 유지에 일방적 해악을 끼친다고 믿었다. 하지만 바이든 정권은 중국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법과 규범을 지키도록 민주주의 국가들과 연대해 압박하되 신(新)냉전으로 치닫는 것은 원치 않는 분위기다.

특히 바이든 당선인 측은 그동안 중국과 북한 문제를 놓고 협력할 수 있다고 공언해왔다. 또 기후변화 이슈나 사이버안보, 코로나19 대응 등에서도 양국이 협력의 단초를 찾을 가능성이 있다.

[신헌철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3호 (2020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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