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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사설] 부동산 우울증이 가정파괴까지, 사회병리 낳는 ‘미친 집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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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전세 살던 세입자 부부가 아파트 매입 문제로 다투다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는 참극이 벌어졌다. 이들은 가격이 급등한 단지 내 아파트를 추격 매수하는 문제로 자주 다퉜다고 한다. 부동산발(發) 박탈감과 우울감이 극단적인 사회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정책 실패가 빚어낸 비극이다.

미친 집값, 폭발하는 전세 대란 탓에 불화를 겪는 가구가 어디 이 부부뿐이겠나. 3년 내내 계속된 정책 헛발질 탓에 서울 아파트값이 58%나 올랐다. 정부가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서울과 수도권, 지방 대도시의 ‘똘똘한 한 채’ 값은 더 올랐고, 어느 지역 아파트를 샀느냐에 따라 자산 격차가 급격하게 벌어지는 ‘부동산 계급 사회'가 됐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과 인터넷 부동산 카페 등에는 ‘부동산 블루(우울증)’에 시달리는 시민들의 절망과 한숨이 넘쳐나고 있다. “성실하게 살면서도 집 하나 장만하지 못한 사람은 바보 취급 당한다” “코로나보다 부동산 때문에 더 스트레스 받는다” “정부 믿고 집 안 샀더니 ‘벼락거지’ 됐다”는 등의 글이 쏟아지고 있다.

‘부동산 블루’는 이미 심각한 사회병리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청년 세대는 부동산 막차를 놓치면 안 된다는 절망적인 심정으로 빚을 끌어다 ‘패닉 바잉’에 나서고 있다. 이마저 선택하기 힘든 청년들은 “주식으로 돈 불려 집 사겠다”면서 증시로 달려가 ‘영끌 빚투’에 올인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 청년 직장인들은 회사 업무보다 부동산·주식 공부에 더 열을 올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게 정상적인 나라인가.

임대차법을 밀어붙여 전세 대란을 더 키운 정부가 부랴부랴 임대주택 공급 확대를 골자로 한 전세 대책을 내놨지만, 들려오는 것은 우울감을 더 키우는 뉴스뿐이다. 11월 중 서울의 전셋값은 2.39% 치솟아 18년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전셋집을 구하러 다니는 세입자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 상승폭은 통계치의 몇 배에 달한다. 학군 전세 수요가 많은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전용면적 84㎡ 전셋값이 10억원 선까지 올랐다. 1년 사이 두 배 이상 오른 것이다. 전셋값 상승이 집값을 재차 밀어올리는 악순환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11월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이 1.7% 올라 10월의 2배 수준으로 상승폭이 커졌다. 수도권뿐 아니라 광역시, 지방도 비슷한 양상이다.

민심은 폭발 직전이다. 청와대 게시판엔 “무주택 서민들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고 느끼면 그다음은 횃불뿐이다” “무주택자를 거지로 만든 대통령은 하야하라”는 요구까지 등장하고 있다.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던 대통령은 입을 다물고 있고 정부는 “기다려 달라”는 말만 하고 있다. 미친 집값 앞에서 절망하는 무주택 서민들을 향해 여당은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며 기름을 끼얹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부동산발 가정 파괴가 더 빈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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