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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책’ 한다니, 공무원은 기침·열나도 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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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부 “회식후 코로나 감염땐 조치” 공문… “아파도 검사 안받아” 심리 확산

서울 시내 한 공공기관 직원 A(30대)씨는 23일 퇴근 후 집에서 으슬으슬한 느낌이 들어 체온을 쟀더니 37.5였다. 목이 간질거리고 기침도 간혹 나왔다. 전날 길거리 흡연 구역에서 다른 흡연자들과 함께 마스크를 내린 상태로 5분여간 담배를 피우며 머물렀던 기억이 떠올라 찜찜했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 A씨는 병원에 가는 대신 해열제 한 알을 삼키고 회사로 정상 출근했다. 부서장에게 몸 상태에 대한 보고도 따로 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코로나에 걸린 직원은 문책한다'는 회사 방침이었다. A씨 증상은 25일 일단 사라졌다. 하지만 그가 앓은 게 감기였는지 코로나였는지, 그로부터 감염된 사람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A씨는 “환자를 죄인 취급하는데, 미쳤다고 아픈 걸 주위에 알리겠느냐”고 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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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에 걸린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에 대한 ‘문책’ 방침을 밝히면서, 코로나 의심증상이 나타나도 ‘일단 숨기고 보겠다'는 분위기가 관가에서 확산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실제 감염자가 있을 경우 ‘숨은 전파자’가 되어 코로나 확산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인사혁신처는 22일 각 공공기관과 지방 공기업에 ‘공공부문 방역관리 특별 지침’이라는 공문을 내렸다. ‘실내 마스크 착용’ ‘불요불급한 모임 취소 또는 연기’ 등 방역 지침과 함께 “특별지침의 이행력 확보를 위해 ①해당 지침을 위반하여 ②감염 사례·전파 시 해당 인원은 문책할 계획”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배경은 ‘공무원이 솔선수범한다'는 논리다. 서울 시내 한 구청 소속 팀장 B씨는 “공무원은 국민 세금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니 어쩔 수 없다”며 “구민들에게 방역 수칙을 지켜달라고 매일 말하는 우리가 더 신경 써서 지키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문제는 부작용이다. 아파도 검사받지 않겠다는 심리가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지방 공기업에 다니는 C(30)씨도 26일 체온이 올라가 퇴근 후 저녁 내내 침대에 누워만 있었지만, 다음 날 정상 출근했다. C씨는 “팀장에게 혼날까 두려워서”라고 했다. C씨의 팀장은 23일 팀원들을 소집해 “아직 확진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은 우리 기관에서 처음 감염자가 나오는 팀은 기관장에게 불려갈 수도 있다”며 “연말까지 모든 외부 약속을 취소해주길 부탁한다”고 했다고 한다. C씨는 “이런 분위기에서는 회사에 보고하는 자체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불만도 쌓인다. 수도권 한 지방자치단체에서 13년 동안 근무한 D(44)씨는 “정부 입장에서 방역에 힘쓰고 있다는 ‘액션'을 보이고 싶으니, 제일 만만한 공무원을 통해 강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이라며 “공무원에게도 빠져선 안되는 모임이 있는 건데, 여러 명 모이는 자리가 아닌 두어 명 간 개인적 만남도 못 갖게 했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숨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경기도 내 지자체 생활방역팀에서 근무하는 한 공무원은 “정부에 서운하다”고 했다.

가장 큰 부작용은 이들이 ’숨은 전파자'가 되어 초기 방역 대응 공백을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에선 개인이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동선을 숨긴 감염자로 인해 초기 방역 대응에 공백을 빚은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다. 최근 인천 인천해양경찰서 경찰관이나, 4월 서울 강남 유흥업소 직원, 5월 이태원 성(性) 소수자 클럽 방문자 등이었다.

전문가들은 ‘확진자 개인을 탓하지 않는 방역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처벌받는다면 당연히 숨을 테니 방역 효과가 떨어질 수도 있다”며 “강압적인 조치 대신, 확진자가 죄인처럼 여겨지는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는 노력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고 했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확진자를 징계한다고 코로나 확진세가 잡히지 않는다”며 “정부는 거리두기 단계를 철저히 지키고 개인과 회사는 방역 수칙을 지키며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했다.

[이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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