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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이란 핵과학자 암살, 바이든 대이란 해빙 노력에 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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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 무장괴한 매복공격에 사망

이란, 이스라엘 지목해 보복 다짐

바이든 후보 때 ‘핵합의 복원’ 공약

외교가 “테러, 관계복원 훼방 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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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사법부 수장인 아야톨라 에브라힘 라이시(가운데)가 28일 피살당한 이란의 핵 과학자 모센 파크리자데의 시신 앞에서 조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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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핵 개발을 이끌어 온 최고위급 과학자 모센 파크리자데가 27일(현지시간) 총격으로 사망했다. 이란은 이스라엘이 저지른 테러 행위로 규정하며 보복을 다짐했다.

이란 관영 파르스 통신, 영국 BBC 방송 등에 따르면 파크리자데는 이날 테헤란 동쪽 소도시 아브사르드에서 매복 공격을 받고 숨졌다. 그는 당시 차량을 타고 이동 중이었는데, 차량 인근의 한 트럭에서 폭발물이 터졌다. 폭발 직후 무장 괴한 서너 명이 차량을 향해 총을 쐈다. 파크리자데는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 지도자는 28일 트위터를 통해 “우리의 위대한 과학자 파크리자데는 우리를 탄압해온 적에 의해 살해됐다”며 “우리가 할 일은 이런 짓을 저지른 자들에게 보복하고, 순교자 파크리자데의 모든 분야에 걸친 과학적 활동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도 전날 성명에서 “‘세계적인 오만함’의 사악한 손이 시오니스트를 용병으로 이용했다”고 비난했다. 사실상 이스라엘을 배후로 지목한 것이다.

네타냐후, 숨진 과학자 핵개발 책임자 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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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파크리자데가 사망했던 테헤란 인근 소도시인 아브사르드의 도로 현장에는 파편이 흐트러져 있다. 공격을 받았던 차량은 총격으로 앞유리가 뚫렸다. 총격에 앞서 도로 인근에 있던 트럭에서 폭발물도 터졌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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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이스라엘 정보 기관 모사드는 파크리자데를 수년 간 표적으로 삼아왔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018년 기자회견에서 이란의 비밀 핵무기 개발 계획에 대한 자료를 입수했다며 책임자로 파크리자데를 지목했다. “그 이름을 기억하라”면서다.

파크리자데는 핵 과학자이자 이란 국방부의 연구 혁신 기구 수장이었다. 서방 정보기관들은 그가 민간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가장해 핵탄두를 개발하는 프로그램을 비밀리에 진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1999~2003년 이란이 진행한 핵무기 개발 계획인 ‘아마드 프로젝트’를 주도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한 서방 외교관은 2014년 로이터통신에 “만약 이란이 농축 우라늄을 핵 무기화한다면, 파크리자데가 이란 핵폭탄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이란의 핵시설과 핵 과학자들을 타깃으로 삼아온 이스라엘이라 해도 파크리자데 같은 거물을 실제 암살하는 건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특히 이번 사건은 미국의 차기 정부가 이란 핵 합의를 복원할 가능성이 큰 가운데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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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018년 기자회견에서 이란의 핵 과학자 파크리자데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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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이란이 고농축 우라늄 생산 등 핵 개발을 상당부분 중단하는 대신 미국은 대이란 제재를 완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포괄적 공동 행동계획(JCPOA)에 합의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이를 탈퇴했고, 이란도 이에 맞서 우라늄 농축을 재개했다.

조 바이든 당선인은 후보 시절부터 핵 합의에 복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지난 22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과거의 핵합의로 돌아갈 수 없다”고 반대했고,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25일 “미국과 이란은 양국 관계를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전 상황으로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명하던 터였다.

이스라엘이 배후에 있는 게 맞다면, 이런 ‘거사’를 미 행정부 교체기에 감행한 건 이란의 핵 프로그램 억제 외에 미국과 이란의 관계 복원을 사전에 훼방놓으려는 의도가 있다는 게 외교가의 관측이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는 “차기 바이든 정부와 이란의 화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전략 같다”고 분석했다.

이란 보복 땐 트럼프 맞보복 빌미줄 수도

사실 이는 바이든 행정부를 방해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해관계에도 맞다. 이스라엘이 미국의 암묵적 동의도 없이 파크리자데를 제거하진 않았을 것이란 이야기도 그래서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미 정부 관리와 정보 당국 관계자가 파크리자데 암살 배후에 이스라엘이 있다고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미국과 이스라엘 모두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바이든 인수위도 아무 입장을 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바이든 인수위는 내년 1월 20일 정부 출범 전 사태를 수습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다고 NYT는 전했다. 또 미국이 이란 핵합의에 복귀할 수 있을지는 이란의 대응에 달렸다고 진단했다. 이란이 극단적 행동에 나서면 이란과 관계를 회복하려는 바이든 당선인에게도 큰 악재가 되기 때문이다. 임기 막바지인 트럼프 대통령에 대이란 보복의 빌미를 줄 수도 있다.

이에 이란이 수위 조절을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희수 교수는 “이란이 핵합의 복원에 걸림돌이 될 상황에 말려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그냥 넘어가진 않겠지만, 그 수위가 미국 여론을 악화시킬 정도는 아닐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이번 사건에 대해 유엔 관계자는 AFP통신에 “역내 갈등 고조로 이어질 수 있는 모든 행동을 피하고 자제할 것을 촉구한다”면서 “우리는 암살 또는 초법적 살해를 규탄한다”고 말했다.

■ 이란 핵 과학자 암살테러 사건

〈발생〉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이끌어온 과학자 모센 파크리자데가 27일(현지시간) 사망했다. 매복 중이던 괴한들이 그가 타고 있던 차량 인근에서 폭발물을 터트린 뒤 총격을 가했고, 파크리자데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망했다.

〈전개〉 이란 정부는 이를 ‘이스라엘에 의한 테러’로 규정하고 보복을 다짐했다. 이스라엘은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기한 이란 핵합의를 복원하기로 한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직전에 이런 사건이 발생한 것을 두고 이스라엘이 미국과 이란의 관계 복원을 방해하려는 의도에서 감행한 일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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