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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이란 핵과학자 암살’, 미·이란 핵합의 복원 막으려는 노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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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하니가 암살 배후 지목한 이스라엘, 시인도 부인도 안 해

바이든의 관계 복원 의지에 정권 교체기 ‘모험’ 감행 가능성

미 정부·바이든 침묵…이란, 차기 정부와 분리해 대응 언급

[경향신문]



경향신문

아야톨라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사법부 수장이 28일(현지시간) 테헤란에서 유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란 국방부 소속 핵과학자 모흐센 파흐리자데의 시신 앞에서 조의를 표하고 있다. 테헤란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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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핵과학자가 살해됐다. 이란 정부는 이스라엘을 배후로 지목했다.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복원하려는 미국 조 바이든 차기 정부의 구상은 예상 밖 암초를 만나게 됐다.

이란 국영 IRNA통신 등은 27일(현지시간) 국방부 소속 핵과학자 모흐센 파흐리자데(59)가 테헤란 외곽 아브사르드에서 매복 공격에 숨졌다고 보도했다. 파흐리자데가 탄 차량 옆에서 폭발물이 터졌고, 폭발 직후 괴한들이 차량에 총격을 가했다. 파흐리자데는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28일 암살 배후로 이스라엘을 지목했다.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파흐리자데를 ‘순교자’라 부르며 “가해자들을 징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호세인 살라미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은 ‘엄중한 복수’를 언급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으나 현지언론 하레츠는 이스라엘 정부가 2018년 이란 핵개발 보고서에서 파흐리자데를 핵심 인물로 지목했다고 전했다. 그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방송에서 파흐리자데를 못 박아 “이 이름을 기억하라”고 했다.

이스라엘은 오래전부터 이란 핵과학자들에 대한 표적살해를 저지른 것으로 의심받고 있었다. 2010~2012년 이란의 핵과학자 최소 4명의 피살에 이스라엘이 관여한 것으로 이란은 보고 있다. 이스라엘은 2007년 9월에는 시리아 핵 시설을 폭격했고 이 공격으로 시리아인들과 함께 북한 기술자들도 사망했다. 2014년에도 이스라엘 소행으로 보이는 공격으로 시리아에서 핵과학자들이 숨졌다. 올 초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를 사살할 때에도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관여한 정황이 있다.

파흐리자데는 1999~2003년 이란 핵개발계획 책임자였고 농축우라늄 공장 설립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란 언론들은 그가 “최근 코로나19 진단키트를 개발하고 있었다”며 핵 프로그램에서의 역할을 평가절하했다. BBC는 이번 암살이 이란의 핵 개발을 막겠다는 목적보다는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봤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은 미국 정권교체 직전에 일어났다. 트럼프 정부의 지원하에 이스라엘과 아랍권이 손잡는 ‘아브라함 협정’으로 이란을 고립시킬 것이냐, 바이든 정부가 출범해 2015년 이란 핵합의를 복원하고 중동의 긴장을 누그러뜨릴 것이냐 기로에 선 시점이었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22일 사우디를 찾아가 왕정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났으나 관계 정상화에는 합의하지 못했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미국 바이든 출범 뒤를 지켜보기 위해 소극적 자세로 돌아선 것으로 풀이됐다. 사우디의 ‘간 보기’에 밀린 이스라엘이 이란 핵과학자 살해라는 모험을 벌인 것일 수 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미국 정부도, 바이든 당선자 측도 함구하고 있다. 이란 핵합의를 되살리는 것은 바이든 당선자의 중동 정책의 핵심이다. 역내 긴장이 높아지면 문제를 풀기가 까다로워지겠지만, 현재로선 이란이 군사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 겉으로는 미국을 비난하지만 이란도 바이든의 새 정부와 트럼프 정부를 분리하고 있다.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측근인 호세인 데흐간은 “시오니스트(이스라엘)의 정치적 동맹의 최후의 나날들”을 거론하며 자신들의 적이 트럼프 정부임을 명시했다.

알자지라방송은 전문가 분석을 인용해 “이란과 미국 차기 행정부의 외교를 어렵게 만드는 게 이스라엘의 목표임을 이란도 잘 알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내년 대선을 앞두고 이란 보수파들이 이번 사건을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 핵합의 주역이었던 온건파 로하니 대통령은 트럼프 정부의 일방적인 약속 파기와 제재로 궁지에 몰려 있다.

구정은 선임기자 ttalgi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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