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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세 전파망원경 ‘퇴역’에 반기 든 사람들…“지구는 누가 지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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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F, 아레시보 폐쇄 결정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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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일어난 철제 케이블 추락사고로 지름 305m짜리 접시 안테나에 큰 구멍이 뚫린 푸에르토리코에 있는 아레시보 전파망원경.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은 망원경의 전체적인 내구성이 약해졌다며 수리 대신 전면 해체 결정을 내렸다. 미국 센트럴플로리다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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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공병대를 투입해 안정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 청원 사이트 ‘위 더 피플’에 독특한 주장 하나가 올라왔다. 정치나 사회 분야에 대한 문제 제기가 많은 사이트다 보니 해외 분쟁 지역에 대한 지원 요구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사실은 카리브해의 섬나라 푸에르토리코에 설치된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을 수리해 해체를 막아달라는 청원이다.

■ 잇단 사고로 망원경 폐쇄

올해 두 차례 거쳐 파손 사고
“내구성 약화 추가 붕괴 우려”

해당 청원은 지난 19일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이 아레시보 전파망원경 해체를 공식 발표한 것에서 비롯됐다. NSF가 밝힌 해체 이유는 잇단 파손 사고다. 지난 8월과 이달 초에 지름 305m짜리 대형 접시 안테나 위에 설치된 철제 케이블이 끊어져 추락하면서 안테나가 대파됐다. 사고 조사를 해보니 1963년 만든 아레시보 망원경의 내구성 자체가 총체적으로 약해져 있었다. 수리를 하려다간 추가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 내려지면서 아예 문을 닫기로 한 것이다.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은 아인슈타인 상대성 이론에 따른 중력파 확인 등 굵직한 업적을 쌓아왔다. 지름 305m 안테나를 갖춘 전파망원경이 흔치 않기 때문에 광학망원경으로 알기 어려운 우주 현상을 확인하는 중요한 장비였다. 아레시보 망원경은 기계문명을 갖춘 외계생명체가 만들지 모를 인공 전파도 찾고 있었다. 아레시보 망원경은 지적 외계인과의 통신과 교류를 줄거리로 하는 1997년 미국 영화 <콘택트>에도 등장했다. 원작 소설을 쓴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우주에 우리뿐이라면 엄청난 공간의 낭비”라고 했던 말이 아레시보 망원경이 갖고 있는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부활시켜라” 요구 거세

소행성 분석·감시 주축 활용
상대성 이론 확인 등 큰 업적

백악관 청원이 등장한 건 아레시보 망원경이 오래된 과학 장비를 넘어 인류 문명과 인식 확대의 시작점이었기 때문이다. 백악관 청원을 주도한 윌버트 루페르토 에르난데스 푸에르토리코대생은 미국 과학매체 스페이스닷컴을 통해 “아레시보 망원경은 우주인이 되려던 어린 시절 꿈을 행성 과학자로 바꾼 이유”라며 “파손 사고는 망원경을 개선할 기회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갑작스러운 해체의 이유가 기기 노후화에만 있지는 않을 거라는 추측도 나온다. 망원경을 관리해야 하는 NSF가 예산 압박을 받는 현실이 작용했을 거라는 시각이다.

지난 27일 기준 백악관 청원에 동의한 사람은 2만8000여명이다. 다음달 21일까지 10만명을 넘으면 백악관은 답변을 내놔야 한다. 과학 연구를 중요시하겠다는 조 바이든 미국 차기 행정부가 내년 1월 출범 이후 어떤 태도를 보일지도 관심이다.

■ 소행성 방어능력 훼손 우려

과학계 “근지구 연구에 틈”
미국 백악관 청원 사이트엔
“공병대 투입해서 안정화를”

아레시보 망원경의 해체는 ‘노병의 전역’이라는 아쉬움을 넘는 중대한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 소행성 충돌에서 지구를 지키는 일에 공백이 생길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아레시보 망원경은 지구에서 가까운 소행성을 뜻하는 ‘근지구천체’ 감시망의 중요한 축으로 활용되고 있다. 아레시보 망원경에는 전파 수신뿐 아니라 송신하는 기능이 있는데 이를 잠수함을 찾는 수중음파탐지기처럼 활용해 소행성의 궤도와 크기, 모양 등을 알 수 있다. 중국에는 아레시보보다 큰 전파망원경이 있지만 이런 송신 기능이 없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아레시보 망원경 해체 결정 직후 아레시보 망원경과 함께 소행성 연구 임무를 수행하던 골드스톤 망원경을 지목하며 “고출력 송신기의 개선을 거쳐 정상 가동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골드스톤과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은 근지구천체를 새로 발견하는 게 아니라 알려진 근지구천체를 심층 분석하는 임무를 수행해왔다”고 강조했다. 아레시보 망원경이 없어도 소행성 방어 임무에 큰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천문학계는 걱정스럽다는 입장이다. 소행성 방어를 위한 양대 축 가운데 하나가 갑자기 사라졌고, 아레시보 망원경은 골드스톤 망원경보다 안테나 지름이 4배나 크기 때문이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미국 천문학계를 인용해 아레시보 폐쇄가 소행성 연구에서 큰 손실이라고 평가했다. 국내 천문학계의 한 전문가는 “전파망원경으로 소행성의 자전 주기와 축, 표면의 거칠기 등을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며 “아레시보 망원경의 부재로 근지구천체 연구에서 당분간 틈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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