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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트럼프 ‘리트윗’ 바이든 ‘침묵’… 이란 핵 과학자 암살 후폭풍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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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하니, 암살 배후로 美·이스라엘 지목

테헤란 인근 적에게 뚫린 충격도 커

솔레이마니 폭사 때와 분위기 유사

이란 강경파, 바이든 ‘핵합의 복원’ 구상에 어깃장 놓을 수도

美, ‘보복의 악순환’ 땐 이란 핵시설 직접 타격 가능성

세계일보

27일(현지시간) 이란 핵무기 개발계획 선구자인 모센 파크리자데(59)가 테헤란 인근에서 암살됐다. 그는 이란군과 연계된 물리학연구센터의 전직 센터장으로서 핵개발 계획을 구상하고 이란의 첫 농축 우라늄 공장을 짓기 위한 부품을 구하는 데에도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이 공개한 자크리자데의 자료사진.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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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핵 개발을 주도했던 과학자가 테러 공격으로 사망하면서 중동 정세가 격랑에 휩싸였다. 이란이 미국과 이스라엘을 암살 배후로 지목하면서 ‘순교자’에 대한 ‘엄중한 복수’를 다짐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보복의 악순환이 이어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임기 말 군사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한다. 이란 핵합의를 복원하려는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구상에도 크게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평가다.

◆암살자들에 뻥 뚫린 이란, 보복 다짐

이란 국영TV에 따르면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발표한 성명에서 “다시 한 번 세계의 오만한 세력(global arrogance)과 그 용병인 시오니스트 정권의 사악한 손에 이 나라 아들의 피가 묻었다”면서 전날 수도 테헤란 인근 소도시 아브사르드에서 암살된 핵 과학자 모센 파크리자데를 ‘순교자’라고 칭했다. ‘세계의 오만한 세력’은 미국을, ‘시오니스트 정권’은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뉴욕타임스(NYT)는 1명의 미국 관료와 2명의 정보 관료를 인용해 암살 배후에 이스라엘이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이번 작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미국·이스라엘이 긴밀한 동맹 관계이고 이란에 관한 정보를 공유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전에 작전 내용을 귀띔받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백악관과 미 중앙정보국(CIA), 이스라엘 당국은 아직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 언론인 요시 멜만의 글을 리트윗했다. 사망한 핵 과학자 파크리자데가 “이란 비밀 군사 프로그램의 수장이며, 수년간 모사드(이스라엘 정보기관)의 추적을 받았던 인물로, 그의 죽음은 이란에게 강력하고 실질적인 타격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이란 입장에서 이번 사건은 충격이다. 수도에서 약 40㎞ 떨어진 곳이 적대 행위자에 의해 뻥 뚫린 셈이기 때문이다. 삼엄한 경호가 따라붙는 파크리자데조차 국내에서 암살당했다는 사실은 파크리자데 휘하의 핵 과학자들에게 엄청난 위협이 될 수 있다. 무함마드 알리 아브타히 전 이란 부통령은 “이란의 안보 전략은 모사드의 스파이와 정보 제공자를 색출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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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수사·보안 당국자들이 27일(현지시간) 테헤란 외곽에서 일어난 핵 과학자 모센 파크리자데 암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테헤란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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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이 발생한 뒤 테헤란 정부청사 건물 밖에서는 복수를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났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란군 수뇌부는 잇달아 보복을 천명했다.

이는 올해 초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이 미국의 제거 작전으로 폭사했을 때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당시 이란은 이라크 내 미군기지를 공습하는 것으로 보복 행동에 나선 바 있다.

◆‘보복의 악순환’ 우려…중동 긴장 고조

이번 암살 사건이 가져올 후폭풍을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올해 들어서만 이란 안보의 핵심 인사가 2명이나 암살되면서 바이든 당선인의 향후 계획이 복잡해질 수 있다고 NYT는 보도했다.

NYT는 이번 사건을 ‘우물에 독을 탄 꼴’이라고 비유했다. 이란은 미국의 차기 행정부와 새로운 협상을 해보려는 열망을 갖고 있었는데, 파크리자데 암살을 계기로 ‘외부 압력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는 이란 강경파의 목소리가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양측 간 긴장이 고조될 경우 서로가 핵합의 복원을 위한 조건을 강화하려 할 수도 있다. 합의에 이르는 길이 더욱 험난해진다는 얘기다.

이를 노리고서 이번 암살 작전이 실행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란 핵 개발을 방해하려는 목적뿐 아니라 이란 핵합의 복원 모멘텀에 제동을 걸려는 목적이 담겼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바이든 인수위 역시 아직 암살 사건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미 국방부 중동 담당 부차관보를 지낸 마이클 멀로이는 파크리자데가 핵 과학자이면서 이란 혁명수비대의 고위 장교이기도 한 점을 언급하며 이란이 무력으로 반응하려는 욕구가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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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018년 4월30일(현지시간) 텔아비브에서 이란의 비밀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에 관해 연설하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 뒤 프리젠테이션 화면에 27일 암살된 이란 핵 과학자 모센 파크리자데의 얼굴 사진이 등장한다. AFPTV 동영상 캡처,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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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일간 가디언 역시 암살 배후가 확인되지 않더라도, 파크리자데 죽음은 공공연하게 드러났던 이란-이스라엘 갈등을 격화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스라엘군 정보국장 출신인 아모스 야들린은 “트럼프에게 시간(임기)이 남은 상황에서, 이런 움직임(암살)은 이란을 폭력적인 대응으로 이끌 수 있다”며 “이는 미군이 이란 핵시설을 공격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복의 악순환’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2일 참모들에게 나탄즈 등 이란 핵 시설을 타격하는 방안에 관해 물었다는 NYT 보도가 나온 지 보름여 만에 이번 암살이 발생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달 초 마크 에스퍼 전 장관 등 국방부 고위직들을 대거 해임한 이후 이란 등 적대국에 대한 군사작전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미 외교안보팀 안팎에서 나왔다고 한다. 당시 마이크 펜스 부통령,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이 더 큰 분쟁으로 격화할 것이라며 반대해 핵 시설 타격 카드는 일단 접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시설이나 이라크의 친이란 민병대를 공격하는 방안을 여전히 살피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미 관료들은 말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이 아직 현직에 있는 틈을 타 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존 브레넌 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이란이 보복 충동을 거둬들이고 “미국의 책임 있는 리더십이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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