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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국정농담] 北에 코로나 백신 공짜로 주면 감사히 받긴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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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환의 국정농담(國政濃談)

정세균 "백신 협상 마무리"...내달 초 계약 공개

이 와중 이인영 "부족할 때 나눔이 진짜 나눔"

"치료제 이미 검토"...김일성 홍수 원조도 거론

기업에 "K번영" 강조하자...美 "제재 이행" 견제

새 국무장관은 '빈 라덴 사살' 지켜본 블링컨

北 "없어도 산다"지만, 여론 설득이 최대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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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해외 백신 확보가 눈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이를 북한과 무료로 나누는 방안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당장 코로나19 확진자가 급격하게 확산하는 상황에서 ‘우리도 백신·치료제가 없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느냐’는 비판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인도적 지원’이라는 명분이 북한의 체면을 자칫 손상시킬 수 있는 데다 중국·러시아 등 우호 국가들까지 백신 개발에 뛰어든 상황에서 북한 당국이 한국이 내민 보건협력의 손을 과연 잡을지 미지수라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북한은 지금까지도 공식적으로는 코로나19 확진자가 1명도 없고 외부 지원도 필요 없다는 입장을 유지 중이다. 반면 이인영 통일부 장관과 여권 정치인들, 정부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어려울 때 도와야 남북관계 개선에 효과가 더 크다’는 주장도 만만찮게 제기된다. 외교·경제적으로 백신 확보가 여의치 않은 북한 입장을 감안하면 충분히 통할 만한 카드라는 것이다. 일단 내달 백신 계약 물량이 확정되면 우리 정부는 이후 본격적으로 북한 지원 분을 따로 둘 지 여부를 논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적 의견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정부의 대국민 설득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하는가가 최대 관건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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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백신 협상 마무리 단계”... 정은경 “12월 초 계약 공개”

지난 23일 정세균 총리는 코로나19가 3차 대유행으로 번지는 가운데 우리 정부가 내달께 상당 물량의 해외 백신을 확보할 수 있음을 국민들에게 천명했다.

정 총리는 이날 긴급하게 주재한 코로나19 백신 관련 관계장관회의에서 “최근 글로벌 백신 개발 기업들의 코로나19 백신 임상시험 결과가 속속 발표되면서 우리 정부의 백신 확보 준비 상황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현재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개별 기업들과의 협상에 최선을 다하고 계약이 체결되는 대로 국민들께 투명하게 알리라”고 지시했다. 정부는 앞서 지난 9월 국무회의에서 다국적 협의체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를 통해 1,000만 명 분, 개별 기업 협상을 통해 2,000만 명 분의 백신을 확보하는 방안을 확정한 바 있다.

정 총리는 나아가 “필요한 만큼의 백신을 제때에 확보한다는 정부의 목표는 명확하다”며 “해외 백신 개발 동향을 면밀히 파악하고 백신 개발 성공 여부의 불확실성까지 고려해 추가 확보 방안을 검토하고 향후 확보된 백신의 접종계획까지 치밀하게 준비하라”고 주문했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도 같은 날 “어떤 백신 제약사와는 계약서를 검토하는 단계에 와 있고, 어떤 제약사와는 구매 조건을 계속 논의하고 있는 단계”라며 “백신 3,000만 명분은 계약을 통해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이고 확보할 백신의 종류와 물량에 대해서는 12월 초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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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 “백신·치료제, 부족할 때 나눔이 진짜 나눔” 발언 논란

문제는 정부의 이 같은 백신 확보 노력이 이인영 장관의 발언과 맞물려 때아닌 대북 지원 논란으로 번졌다는 점이다.

이 장관은 지난 18일 KBS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우리가 치료제와 백신을 서로 협력할 수 있다면 북으로서는 코로나 방역 체계로 인해 경제적인 희생을 감수했던 부분들로부터 좀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우리가 많아서 나누는 것보다 좀 부족하더라도 부족할 때 함께 나누는 것이 더 진짜로 나누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떤 장소, 어떤 시간도 좋으니 북이 응하기만 한다면 최상의 대화를 할 준비를 하고 있다”며 “미사일이나 핵 등 긴장을 통해 접근하는 방식보다는 식탁 위에 냉면을 차려놓고 유연하게 대화와 협상으로 나오는 것이 더 좋은 효과를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장관의 이 발언은 온·오프라인에서 즉각 진위 공방으로 이어졌다. 곳곳에서 이 장관의 발언을 ‘북한에 우리도 확보 못 한 백신을 주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하자 현 정부 지지자들은 ‘백신을 주겠다고 발언한 적은 없다’고 맞섰다.

이 공방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 장관이 KBS 인터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북한에 백신을 지원해야 한다”는 뜻을 강조하면서 인터뷰 내용을 언론이 곡해했다는 정부 지지자들의 주장은 쏙 들어갔다. 이 장관은 20일 국립암센터 평화의료센터에서 열린 남북보건의료협력 협의체에서도 “머지않은 시기에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돼 보급되면 한반도에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새로운 여건이 조성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통일부 당국자는 26일 이 장관의 발언을 두고 “보건협력에 대한 우리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밝힌 것으로 이해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백신과 치료제가) 남아돌아서 준다는 게 아니라 우리가 비록 부족한 상황이라도 북한과 보건협력을 한다는 진정성을 전달하려고 한 것”이라며 “우리가 부족한데도 북한에 주겠다는 취지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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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김일성 대남 홍수 원조도 거론... “北 치료제 지원은 이미 검토”

우리가 백신과 치료제를 확보할 경우 북한도 도와야 한다는 이 장관의 소신 발언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이 장관은 2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도 “확보된 백신도 없는데 확진자가 하나도 없다고 하는 북한에 나눠줘야 한다는 말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국민의힘 김석기 의원의 지적에 “백신과 치료제 협력은 ‘북한 정권’이 아니라 ‘북한 주민’을 위한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그는 “북한의 코로나19 상황을 안정적으로 만드는 것은 대한민국 코로나 상황의 안정성을 만드는 것과도 직결된 문제”라며 “백신과 치료제가 중요한 협력의 과정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이 우리 정부의 백신 확보 계획에 북한 지원분이 포함됐는지를 물은 데 대해서는 “아직 없지만 치료제와 관련해서는 내가 조금 검토한 부분은 있다”고 설명했다.

이 장관은 같은 날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한국아동·인구·환경의원연맹(CPE), 유엔세계식량계획(WFP) 공동 주최의 ‘제로 헝거 혁신 정책회의’에서도 “1984년 서울이 큰 홍수 피해를 입은 가운데 북한이 우리 이재민에게 구호물품을 지원했던 사례를 기억한다”며 “수재물자를 전하기 위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북이 만났고, 멈춰진 직통 전화가 가동되었으며 많은 남북 대화가 열리기도 했었다”고 설파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은 물론 같은 민족이자 동포이며 수해·코로나·제재라는 3중고 속에 경제와 민생의 어려움에 처해 있을 북한 주민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필요하다면 내년 봄이라도 식량, 비료 등을 통해 적시에 남북이 협력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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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남북번영” 기대까지 닿은 대북 지원 구상

이 장관의 남북관계 구상은 코로나19 백신·치료제 협력이 끝이 아니었다. 그는 보건협력을 발판으로 북한 관광, 개성공단 재개 등 남북경협의 큰 물줄기도 열어 보겠다는 포부를 공개적으로 알렸다.

이 장관은 23일 삼성전자(005930)·현대차(005380)·SK(034730)·LG(003550) 등 국내 주요 기업, 각종 기업인 단체 등 남북경협과 관련된 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코로나19 백신·치료제가 개발되고 비핵화 협상이 진전되는 과정에서 대북제재 유연성이 만들어질 기회가 생기면 남북경협이 예상보다 좀 더 빠르게 시작될 가능성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라며 “정부는 북한 지역 개별관광이나 철도 도로 연결, 개성공단 사업 재개 등과 관련한 그 동안의 과제를 착실하게 준비하는 한편 작지만 호혜적인 경협사업들을 발굴하고 추진해갈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또 “기업이 남북번영시대 K번영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는 주역들이 되어 주실 것이라 믿는다”고 당부하면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유연한 대북 정책을 펼칠 가능성을 기대했다.

같은 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국회 토론회’에서는 연평도 포격 10주기를 맞아 희생된 장병과 민간인의 죽음을 잠시 추모한 뒤 기존 연락사무소 재개를 넘어 서울-평양 대표부, 신의주·나진·선봉 연락소까지 추가로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7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는 현 제재 환경이 이어질 경우 북한이 중국하고만 일방적으로 협력할 수 있음을 우려하는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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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국무부는 “제재 이행” 경고... 새 장관은 ‘빈 라덴 사살’ 지켜본 블링컨

한편 워싱턴 정가의 분위기는 이 장관이 기대하는 것과는 다소 다른 흐름을 보여 대조를 이뤘다. 우선 미국 국무부 대변인부터 23일(현지시간) 자유아시아방송(RFA)을 통해 “모든 유엔 회원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결의를 이행할 의무가 있다”며 이 장관의 구상을 직접적으로 경계했다.

바이든 당선인 인수위원회는 한술 더 떠 같은 날 차기 국무장관에 강경한 대북 원칙주의자로 분류되는 토니 블링컨 전 국무부 부장관을 지명하며 한미 간 대북전략 엇박자 우려를 낳았다. 그는 지난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북핵 위기가 고조되자 대북제재 강화에 앞장선 인물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추구하는 종전선언과 관련해서도 지난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당시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핵을 포기하기도 전에 평화조약을 논의하려는 북한의 바람을 들어주려는 것 같다”며 “미국의 오랜 외교안보 정책과 배치된다”고 비판했다. 북한을 ‘세계 최악의 수용소 국가(gulag state)’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지난달 한 대담에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최악의 폭군’이라고 비난했다.

오바마 1기 행정부 때 오사마 빈 라덴 사살 당시 전시상황실(워룸)에서 바이든 당시 부통령을 밀착 보좌하기도 했다. 지난 2011년 빈 라덴 사살 작전 때 워룸 사진에서도 사살 장면을 직접 지켜보는 모습이 포착됐다. 블링컨 전 부장관은 북핵 저지와 중국 견제를 위해 ‘한미일 3국 동맹’을 강조할 것이란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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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은 “없어도 산다”... 여론 설득이 최대 관건

지원 대상으로 거론되는 북한 역시 현재까지는 시큰둥한 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북한 노동신문은 이 장관의 KBS 인터뷰 다음날인 19일 ‘비상방역사업은 당과 국가의 제일 중대사’라는 논설을 내고 방역과 외부 봉쇄를 강조하는 글을 발표했다. 신문은 “지금 우리 모두는 없어도 살 수 있는 물자 때문에 국경 밖을 넘보다가 자식들을 죽이겠는가 아니면 버텨 견디면서 자식들을 살리겠는가 하는 운명적인 선택 앞에 서 있다”며 “조국 수호 정신으로 살며 투쟁하지 못한다면 조국과 인민의 운명이 무서운 병마에 농락당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신문 발행 시점을 고려하면 이 장관 발언을 염두에 둔 기사는 아닐 가능성이 높지만 외부 지원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만큼은 명확히 한 것이다. 김정은은 앞서 지난 8월 대규모 수해 때도 “큰물(홍수) 피해와 관련한 그 어떤 외부적 지원도 허용하지 말라”고 공개 지시한 바 있다. 17일 세계보건기구(WHO)가 공개한 ‘코로나19 주간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기준으로 북한의 의심 증상자 수는 6,173명이지만, 확진자는 한 명도 없는 상태다.

다만 북한의 심각한 경제 사정을 고려할 때 남북 보건 협력에 끝까지 미온적으로 나올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시각도 많다. 실제로 김정은은 지난 10월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사랑하는 남녘 동포들에게도 따뜻한 마음을 보내며 보건 위기가 극복되고 굳건하게 손 맞잡길 기원한다”며 협력 가능성의 여지를 남긴 바 있다. 27일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김정은은 지난 10월 말 환율 급락을 이유로 평양의 거물 환전상을 처형하고, 지난 8월에도 물자반입금지령을 어긴 핵심 간부를 처형했다. 최근엔 국내 제약회사의 백신 정보에 대해 해킹을 시도하기도 했다.

결국 관건은 여론이다. 우리 정부는 대북 보건 원조의 동력을 얻기 위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공무원 해상 피격 사건, 코로나19 국내 상황 악화 등으로 나빠진 반대 여론을 설득하는 데 당분간 치중할 것으로 보인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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