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19 (화)

“제2의 대림동 여경?”...젠더 갈등 부추기는 온라인 커뮤니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여경 비난 영상 게재

사실 확인결과 남자 경찰로 밝혀져...대응과정도 문제 없어

작년 대림동·관악구 여경 등 근거없는 젠더 갈등 유발 사례 심각

전문가 "심리적 영향 커...제도적 제재 기반 마련해야"

지난 23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제2의 대림동 여경'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게재됐다.

경찰 두 명이 거칠게 저항하는 중년 남성 A씨를 제지하는 모습이 담긴 이 영상에서 A씨는 경찰의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 모습을 본 일부 누리꾼은 여경들의 대응이 소극적이라면서 비판했다.

하지만 A씨를 제지하던 경찰 중 한 명은 남성이었으며 경찰측에서도 화면 속 여경의 대응에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 영상은 남성 비율이 높은 이른바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됐다. 이처럼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근거 없는 글을 통한 젠더 갈등이 계속돼 자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데일리

(사진=이미지투데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여경 둘이서 노인 한 명 제압 못했다?” 확인해보니

이 영상을 포함한 게시글은 약 16만 회 이상의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게시글에는 여경의 대응을 지적하는 댓글이 다수 올라왔다. “여경 두 명이 노인 한 명을 제압하지 못한다”, “(여경은) 있으나 마나” 하다는 등의 여경에 대한 비판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부산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영상에 등장하는 경찰 두 명은 남자 경장과 여자 경사가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A씨를 제지하던 장면. 시위자를 잡으면서 제지한 사람도 여경이 아닌 남자 경장이었다.

부산경찰청 관계자는 "(해당 장면은) 1인 시위자를 인도 안으로 이끄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며 "잠깐 실랑이가 있었지만 위협적인 부분 없이 영상 속 대응으로 잘 마무리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관계자는 “영상 속 대응은 문제없다”며 “남자 시위자에 남자 경찰이 제지한 것이고, 여자 경찰은 상황 파악 후 관할서에 보고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선 경찰서 관계자 역시 해당 영상을 보고 “대응에 문제없어 보인다”고 답했다.

이데일리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대림동·관악구 여경도 '가짜'... 근거 없는 젠더 갈등 유도 지속

젠더 갈등을 유도하는 근거 없는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것은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5월 이른바 ‘대림동 여경 사건’(실제로는 서울 구로구에서 발생)도 인터넷에서 큰 논란이 됐다.

서울 구로구의 한 식당에서 난동을 부리던 강 씨와 허 씨가 경찰관에게 폭력을 휘두른 사건이다. 당시 온라인에서는 여성 경찰관이 주취자를 제압하지 못해 시민 남성이 수갑을 채웠다며 ‘여경 무용론’ 주장이 퍼졌다.

논란 이후 사실을 확인해보니 수갑을 채운 이는 일반 시민이 아닌 남성 교통경찰 B씨였다. B씨는 “먼저 출동했던 경찰이 취객을 제압한 상태였다"며 "마지막에 수갑을 채우는 이미 두 경찰이 취객을 제압한 상태에서 수갑 채우는 것만 도왔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발생한 ‘관악구 여경사건’도 가짜인 것으로 결국 드러났다.

게시자는 관악구 초등학교 앞에서 경찰들이 흉기를 든 범인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여경은 팔짱을 끼고 구경만 했다며 사진을 올렸다. 하지만 사진 속 인물은 여경이 아니라 60대 남성 주민이었다.

지난 8월 일간베스트(일베) 등에는 ‘남자 목욕탕 CC(폐쇄회로)TV 영상 공유한 여대 단톡방’이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여대생들의 단체 대화방이라며 올라온 캡처본에는 남성 탈의실 CCTV 사진이 있었다. 이 장면은 ‘여대 단톡방’, ‘여자 N번방’ 등으로 불리며 논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 사건을 수사하던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해당 사진이 2003년 12월 11일 KBS 뉴스에 나온 화면의 캡처본이라고 밝혔다.

올 1월에는 남초 커뮤니티인 B 사이트에서 젠더 갈등을 부추기기 위해 게시물을 조작한 회원이 운영자에게 덜미를 잡히기도 했다. 자신이 직접 쓴 여성 혐오 글을 다른 사이트에서 떠도는 이야기인 양 조작하거나 다중 계정을 사용해 추천 수를 조작한 것이다.

B 사이트 회원들은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을 열어 “여성비하 글에 추천수를 몰아주자”는 모의를 하다가 운영진에 발각되기도 했다.

이데일리

지난 해 온라인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대림동 여경' 사건. (사진=구로경찰서 제공 영상 캡처)



온라인 커뮤니티 속 자극적인 글에 매몰되지 말아야

남녀갈등을 조장하는 게시글이 많이 올라오면서 온라인 커뮤니티 내에서도 자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남초 커뮤니티 이용자는 “특정 회원들이 커뮤니티 안에서 젠더 갈등을 유발하는 글을 자주 올린다”며 “오히려 성별을 나눠 혐오를 조장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데일리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01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실시한 '사회갈등과 사회통합 실태조사' 연구를 분석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53.4%)이 사회의 젠더 갈등이 심하다고 응답했다.

한국사회정책학회는 특히 20대 남성이 다른 연령·성별 집단보다 젠더 갈등을 심각하게 인식한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군입대, 취업의 어려움 등의 영향이라고 추측했다.

전문가들은 커뮤니티 속 젠더 갈등 유도 글이 성행하는 현상에 대해 일부 커뮤니티 이용자들의 ‘심리적 요소’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심두보 성신여자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커뮤니티 주 이용층인 젊은 층들의 불안감이 원인”이라며 “여성은 사회 진출과 가부장제 구조에서 불합리한 부분을 느끼고, 남성 역시 사회 진출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인해 서로 갈등하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화평론가인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도 “(게시자들은) 의도적으로 갈등을 조장해 상대를 비난하며 심리적 위안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심 교수는 “허위 사실을 담은 게시물을 제재할 수 있는 제도적인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면서도 “아울러 이용자 스스로 근거 없는 게시물을 걸러내는 이성적 판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안나 윌리엄스 영국 켄트대학 부교수는 저서 '페미니즘은 전쟁이 아니다'를 통해 성별 편 가르기가 심해지면 ‘가해자 남성과 피해자 여성’ 구도의 제로섬 게임이 된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스냅타임 김정우 기자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