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64462728 0022020112764462728 04 0401001 6.2.2-RELEASE 2 중앙일보 63982701 false true false false 1606476864000

왕이 "남북이 한반도 주인"…2박3일 바이든 견제하고 떠났다

글자크기

문재인·이해찬·박병석 등 2박3일 여권 실세만 만나

"운명은 남북 손에" 대북 강경 블링컨·설리번 견제

일대일로 동참, 5G·첨단산업 협력 요구 숙제 남겨

중앙일보

2박3일 방한 동안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해 여권 실세를 두루 만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 겸 국무위원이 2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 겸 국무위원이 이틀 동안 문재인 대통령과 이해찬 전 총리, 박병석 국회의장 등 여권 실세를 두루 만나고 27일 출국했다. 선물보다는 많은 숙제를 남기고 간 방한 일정이었다.

대북정책과 관련 "한국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추진 노력을 지지한다"고 듣기 좋은 소리는 했지만 한국 정부로선 당장 동맹 미국의 차기 행정부와 조율이 발등의 불이다.

새로운 바이든 행정부는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을 제외하곤 북한을 처음 다뤘던 트럼프 행정부 북핵 외교 라인과 차원이 다르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는 오바마 정부 시절 북핵개발 자금줄을 차단하는 금융·석탄·철광석 등 부문별 제재를 직접 설계했고,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란핵합의 협상 대표도 지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처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외교가 주도하는 상황은 기대하기 힘들어졌다.

중앙일보

박병석 국회의장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환담을 갖기 전 손 악수를 하고 있다.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왕 부장은 27일 이런 바이든 행정부를 견제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 그는 박병석 국회의장과 면담에서 박 의장이 "한반도 문제의 최종 결정권자는 남과 북"이라고 하자 "박 국회의장의 의견에 동의한다"며 "남북 쌍방이 진정한 한반도의 주인이며, 한반도 운명은 남북한의 손에 쥐어야 한다"고 맞장구치면서다. 미국의 대북 강경 입장에 휘둘리지 말라고 한 셈이다.

더 나아가 왕이 부장은 미·중이 첨예하게 대결하는 민감한 분야에서 무더기로 한국의 협력을 요구했다. 중국 주도로 체결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조기 발효, 한·중 및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조속 추진 등 역내 경제통합도 서둘렀다. 경제통합을 가속화해 미·중 대결 국면에서 중국 편에 설 수밖에 없도록 만들겠다는 포석이다.

중앙일보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오후 청와대에서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에게 악수를 청하고 있다. 코로나19 방역에 따른 의전계획에 없던 악수라 왕이 외교부장이 잠시 머뭇거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날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미국의 인도·태평양 구상에 맞서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구상과 한국의 국가발전전략의 연계를 추진하자"고 공식 제안한 게 대표적이다. 앞서 강경화 장관과 회담에서도 "일대일로 구상과 한국 발전전략과 접목을 가속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중국 외교부가 별도 공개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의 10개 합의사항에는 한·중 외교·안보 '2+2' 대화 가동, 일대일로와 연계 일환으로 제3국 시장과 신흥·첨단산업 분야의 협력이 포함됐다. 한국 외교부 발표에는 없던 내용이다.

미국이 중국에 대해 반도체 등 첨단기술 수출을 통제하는 가운데 한국과의 첨단산업 협력을 돌파구로 삼겠다는 의미다. 중국 외교부는 10개 항 합의엔 포함하지 않았지만, 강경화 장관이 미국의 '클린 네트워크' 구상에 대항해 "중국 측이 제안한 '글로벌 데이터 보안 구상' 참여를 적극 검토하기로했다"라고도 공개했다.

미국은 세계 각국에 중국 화웨의 5G 네트워크 장비는 물론 모바일 앱, 해저 케이블 및 클라우드 컴퓨터를 사용할 경우 개인정보·데이터 보안과 인권 침해의 우려가 있다며 중국산 장비를 배제하는 '클린 네트워크' 동참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맞서 중국이 자체 기준을 만들겠다고 나선 게 글로벌 데이터 보안 구상이다.

한·중 2+2 외교안보 대화도 한·미 '2+2(외교·국방장관) 대화'가 트럼프 행정부 4년 동안 안 열린 상황에서 미국으로선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다.

앞서 바이든 대선캠프 자문위원이 다수 포진한 미 싱크탱크 신미국안보센터(CNAS)는 지난 16일 '21세기 한미동맹의 청사진'이란 제목의 정책 보고서를 통해 "중국·사이버 등 새로운 안보 도전에도 한미동맹이 맞설 수 있도록 2+2 장관급 대화와 실무협상을 활용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보고서는 또 "5G네트워크, 인공지능(AI) 연구, 사이버보안 등 새로운 영역에서 협력을 증진해야 한다"고도 제언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에 "데이터 보안 구상은 중국의 제안을 연구해보겠다는 것일 뿐"이라며 "한·중 2+2 대화는 국장급 대화로 과거에 열린 적 있고 계속 열자고 논의해오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3년 중국의 이어도를 포함한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일방 선포, 2016년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로 중단됐던 대화를 재개하는 뜻이란 의미다.

중앙일보

26일 세종로 외교부를 방문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강경화 외교부장관과 회담전 팔꿈치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은 "왕이 순방은 한·일 두 나라와 (경제적) 가치 사슬을 형성할 수 있다면 미·중 전략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중국의 '쌍순환 전략'의 핵심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식 이분법이 아니라 국제규범을 중시하기 때문에 한 쪽을 선택하기 보다 신중하게 국제적 룰을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왕이 부장과 접촉한 여권 관계자는 "최근 상하이협력기구·브릭스(BRICS)·아태평양경제협력기구(APEC)·G20 정상회의에 이어 한·일 순방까지 광폭 행보를 한 것"이라며 "미국의 정권 교체기에 미국과 안보 갈등은 피하는 대신 경제협력 외교로 선제적으로 주도권 확보에 나선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효식 기자 jjpol@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