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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유니프레스] 지워진 공간 ‘미아리 텍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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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성매매 논쟁, 성매매 여성에겐 발언권 없어”

쿠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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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유니프레스] 민소정 연세춘추 기자 = ‘성매매’에는 수많은 물음표가 붙는다. “성매매는 척결의 대상인가?” “성매매 여성은 피해자인가?” 사람마다 대답은 제각각이다.

기자는 성매매 여성이 사회 구조적 폭력의 피해자라고 생각했다. 많은 여성이 가난, 빚 등 강제적 이유로 성매매에 유입된다. 그리고 한번 발을 들인 순간, 빠져나오기 매우 어렵다. 성매매 여성이 돈을 받기 때문에 피해자가 아니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다. 돈은 이들이 원치 않는 성관계와 폭력에 대항할 수 없게 만들 뿐이다. 나는 고통받는 성매매 여성을 ‘위해’, 언젠가 우리 사회에서 성매매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런 문제의식으로 ‘미아리 텍사스’ 취재가 시작됐다. 서울시 성북구 하월곡동에 있는 성매매 집결지 미아리 텍사스에는 약 100~300명의 성매매 여성이 있다고 한다. 성매매가 불법인 한국에 버젓이 존재하는 성매매 집결지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온몸으로 외치고 있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이곳을 두 눈으로 보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해결 방법이 손에 잡힐 것만 같았다.

무작정 향한 미아리 텍사스에서, 나는 사람들을 잡고 물어봤다. 이곳이 어떤 공간인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러나 그곳에서 보고 들었던 것은 생각과 달랐다. 호객행위를 하는 ‘’삐끼이모’들은 사진을 찍는 기자와 실랑이를 벌이는 대신 “사진 찍지 말아, 재개발이 빨리 되면 이모들 일자리 없어져”라고 말을 건넬 뿐이었다.

미아리 텍사스는 오는 2023년 재개발을 앞뒀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재개발이 시작되면 이곳에서 일하던 여성들은 갈 곳이 없어진다고 했다. “성매매 여성은 피해자고, 성매매는 근절돼야 한다”는 말에, 이들은 “성매매는 사라질 수 없다”고 답했다. 그리고 성매매 또한 삶의 방식 중 하나라며, 오히려 온실 속 대학생 기자의 순진함을 나무랐다.

책에 적힌 ‘구조적 폭력’이니 ‘여성 인권’이니 하는 말은 현장에선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었다. 상아탑 밖 현장에는 냉혹한 현실이 있을 뿐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일할 수밖에 없는 여성만이 있었다. 당장 이것이 아니면 살길이 없는 이들에게 피해자니 가해자니 하는 말이 무슨 소용일까. “성매매는 부도덕하다”는 연대생 기자의 순진한 말이 이들에게는 삶의 터전에 대한 위협으로 돌아올 수 있다. 미아리 텍사스가 재개발되면 삶의 터전을 잃을 이들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누구도 쉽게 말할 수 없다.

성매매를 둘러싼 논쟁에 모든 이들이 한 마디씩 보탠다. 그러나 정작 성매매 여성에게는 발언권이 없다. 이들은 사회의 따가운 시선으로부터 숨어, 가끔 누군가의 입을 빌려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논쟁의 주체가 아닌, 소재로서 성매매 여성은 늘 피해자 아니면 범죄자다. 성매매의 도덕성에 대한 논쟁은 역설적으로 이들을 소외시킨다.

기자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글을 쓰는 직업이다. 그러나 상아탑 위에서 그저 관망하며,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들을 대변한답시고 글을 쓰는 것은 결코 그들을 ‘위함’이 아니다. 기사를 쓰기 위해 취재를 하러 갔지만, 기사를 쓸 수 없다는 사실만을 발견하고 돌아왔다.

지금 내가 글을 통해 감히 할 수 있는 일은, 언젠가 그들을 만나게 됐을 때 ‘나와 다른 사람’으로 대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이들이 미아리 텍사스 밖으로 나왔을 때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그리고 언젠가 이들이 피해자도, 범죄자도 아닌 한 명의 사람으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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