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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삶의 창] 보람과 재미라는 치트키 / 이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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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명석 l 문화비평가

다들 나이가 들면 간호사 며느리를 들이고 싶어한단다. 친척 누나는 달랐다. 아들이 결혼 상대로 간호사를 데려왔다며 한숨을 쉬었다. 잠시 뒤에 깨달았다. 맞아, 누나도 간호사였지. 다른 누나가 달래주려 했다. “그래도 네 일은 보람이 있잖아.” 그러자 한숨을 두 겹으로 쉬었다. “보람은 무슨, 먹고살려고 하는 거지.” 그러면서 내게 말했다. “너는 글 쓰는 거 재미있니?” 나는 말했다. “재미는 무슨, 먹고살려고 하는 거지.” 같이 피식 웃었다.

나는 누나의 직업을 존경한다. 특히 올해는 절실히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이 보람이 없다면, 세상에 보람 있는 직업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나의 일로 말할 것 같으면, 그래 재미있다. 물론 눈이 빠질 듯 모니터를 쳐다보며, 기울어가는 허리를 붙잡고, 머리를 쥐어짜 단어 하나를 고치는 일은 힘들다. 그러나 나만의 생각을 펼치고 조립해 그럴듯한 모양을 만드는 일은 즐겁다. 그 글로 다른 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때는 보람도 느낀다.

보람과 재미. 어떤 일, 혹은 직업에 그 둘이 더해져 있으면 좋다. 그러나 당사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그 말을 꺼낼 때는 조심해야 한다.

나는 몇 가지 취미를 오랫동안 파왔다. 재미를 위해 시작했지만 경험을 얻었고, 가끔은 그걸로 돈을 번다. 얼마 전엔 드라마 피디한테 촬영 자문, 연기 지도, 약간의 대역을 부탁받았다. 부담이 적지는 않았다. 세세한 설정까지 봐줘야 했고, 일정도 급박했고, 무엇보다 먼 지방의 촬영장까지 가야 했다. 그래도 흥미로운 기회였고, 나의 지식으로 작품의 질을 높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여겼다. 마지막으로 돈을 이야기할 차례. 전화는 다른 사람으로 넘어갔다. 그는 “보통 이런 경우엔” 하고 금액을 말했다. 놀라울 정도로 적었다. “제가 거기까지 가야 하는 거 맞죠?” 속뜻은 이랬다. ‘집 근처 촬영장에 놀러 가는 게 아니라, 왕복 7시간 걸리는 현장에 가서 최소 6시간 동안 있어야 하는 거죠?’ 그쪽은 문자 그대로 해석했다. “그러시다면” 하고 고속버스 비용에 못 미치는 금액을 더했다. 나는 공손하게 거절했고, 없던 일이 되었다. 하지만 이 상황이 너무 찜찜했다. 그 정도 금액(이동, 대기 등을 따지면 시간당 최저임금 수준)이 책정되어 있다는 것은, 그래도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거겠지? 아마도 보람 혹은 재미를 느끼면서.

돌이켜보면 우리 사회 자체가 이러한 원리로 움직이고 있다. 간호사, 군인, 소방대원, 구급대원, 택배노동자, 돌봄노동자… 어떤 직업에 대한 찬사가 터져 나온다면? 곧 그 일에 대한 금전적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보람, 재미, 꿈, 열정 같은 인문학적 치트키가 없으면 우리 경제는 곧바로 무너진다.

최근엔 문화 분야에 이런 일이 빈번하다. 마을 벽화 사업에 재능기부 미대생들을 모은 뒤에, 페인트도 사 오고 주민들에게 그림도 가르쳐주라고 한다. 버스킹 공연자를 모집하며 조명, 앰프도 들고 오고 홍보물도 만들라고 한다. 아마추어 사진가에게 지역 풍경 사진을 모집한다면서 저작권까지 슬그머니 가져가버린다. 은퇴 이후의 고령자들을 값싸게 부려먹는 데도 보람과 재미는 참 좋은 미끼다.

간단한 논리 공부를 해보자. 보람과 재미로 돈을 대체할 수 있다면, 그 역도 성립한다. 밤늦게 위험을 무릅쓰고 의료 폐기물을 처리하는 노동자들에게 칭찬 대신 임금을 더해주라. 그러면 ‘내 일이 이렇게 가치 있구나’ 알아서 느낀다. 예술가들도, 안 그럴 것 같지만, 돈을 재미로 전환시키는 재능이 아주 뛰어난 사람들이다. 그들이 재미있게 일하면, 보는 사람의 재미는 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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