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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연합시론] 협력·견제 언급한 왕이…낙관도 경계도 말고 유연 대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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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25~27일 방한은 약 1년만인데다 내년 1월 미국의 행정부 교체를 앞둔 시점에 이뤄져 여러모로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사흘간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주목됐는데 26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에 25분 지각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사전 양해를 구했다고는 하지만, 왕 부장이 지난해 12월 방한 때 한중 우호 리셉션장에 1시간가량 늦은 전력이 있다 보니 의도적인 지각 아닌가 하는 뒷말이 나올 만도 하다. 한국을 대하는 중국 고위급들의 태도에 수시로 이목이 쏠리는 이유는 중화주의와 사대주의라는 역사적 배경에다가 한반도 정세와 우리 경제 등에 미치는 중국의 현재 영향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이 한국을 상대로 진정한 선린·협력 관계를 이어가려면 상대국에 대한 존중심과 진정성을 의심받게 하는 외교적 결례가 없도록 유념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 예방과 함께 정부와 여권 주요 인사들을 두루 만난 왕 부장의 금주 방한은 한반도 평화와 코로나19 방역 등에서 양국 간 협력 의지를 재확인한 자리로 평가된다. 그와 동시에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한국 내 분위기 파악 등 상황 관리를 하려는 중국 정부의 의도를 담은 행보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왕 부장에게 한반도 전쟁 종식과 완전한 비핵화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고 강조했고 왕 부장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하고 협력의 뜻을 밝혔다. 왕 부장은 특히 문재인 정부가 "전쟁과 파국을 막았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정착 노력에 대한 중국의 지지는 대북 정책 변경을 예고한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중국이 북미 비핵화 협상과 남북 대화·교류 노력의 새 국면에서 적극적인 중재 노력 등 건설적인 역할로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에 기여하길 바란다.

왕 부장은 기자들에게 다소 우회적인 표현으로 미국의 움직임과 한미 밀착을 견제하는 언급도 했다. 이번 방한이 미중 갈등과 관련된 것 아니냐는 분석에 대해 "이 세계에 미국만 있는 게 아니다"라고 답하고 다자주의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추진을 강조했다고 한다. 동맹 관계인 한미의 밀착을 견제하는 발언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왕 부장은 강 장관과 한 회담에서 한중 사이 민감한 문제를 잘 처리하라는 취지의 말도 했다고 한다. 미중 신냉전 국면에서 자국에 불리한 영향을 미치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읽힌다. 한국 내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이후 한국에 대한 중국의 거친 보복 조치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추후 다른 갈등 요소가 터지면 한중 관계가 훼손될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왕 부장은 사드 배치 반대라는 중국의 기존 입장도 재확인했다고 한다. 한국과의 협력 강화라는 긍정의 메시지와 함께 견제의 메시지도 동시에 발신한 모양새다.

왕 부장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조속한 발효 추진과 한중일 자유무역지대 건설을 서두르자는 제안도 했다. 이 또한 미국 주도의 무역 질서 구축과 대립하는 구도여서 미중 사이에 낄 수밖에 없는 우리 정부의 유연한 대응을 통한 국익 지키기 전략이 요구된다. 왕 부장의 발언들에는 한국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교류·협력 강화가 가져다줄 '윈윈' 효과에 대한 낙관과 동시에 까다로운 난제가 들어 있는 셈이다. 왕 부장은 앞선 일본 방문에서는 중일의 분쟁 대상인 일본명 센카쿠, 중국명 댜오위다오인 동중국해 열도를 지칭해 중국 영토라는 메시지를 던져 일본 정치권이 격앙했다고 한다. 왕이 방한이 한미일 협력 구도를 견제하려는 움직임이라는 일본 매체들의 해석도 나왔다. 중국은 한국과 일본에 모두 중요한 이웃 국가이면서도 안보와 경제 이익 차원에서는 상대하기가 까다롭기 짝이 없는 나라임이 엄연한 현실이다. 국제 정치에서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말이 있다. 인류 보편 가치와 주권 수호 등 대원칙은 지키되 유연하고 능동적인 외교로 국익을 지키고 키우는 대응 전략을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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