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64442666 1182020112764442666 02 0201001 6.2.2-RELEASE 118 오마이뉴스 0 false true false false 1606429703000

한때 전국에 4명... 여성 라이더는 차별에 시달린다

글자크기

[나는 배달노동자 ④-1] 여성 라이더, 김선희

라이더유니온 인터뷰 기획 '나는 배달노동자'는 인권재단사람 정기공모사업 '2020 인권프로젝트-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구술작가 2명이 10대~50대 라이더 5명을 인터뷰해 정리한 글을 정기적으로 연재할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김선희(가명)는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다. 버려진 강아지를 보면 지나치지 못하고 주변을 한참 서성이다 품에 안고 집에 돌아간 적도 여러 번이다. 자연스럽게 동물 관련 학과가 있는 대학으로 진학을 결심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부모님의 반대가 컸지만 김선희는 큰 고민 없이 선택했다.

대학 졸업 후 선배들은 동물원이나 동물병원에 취직했다. 동물원은 학교 성적이 좋아야 입사가 가능했는데 김선희는 어렵지 않게 전라도에 있는 한 동물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종사자 중 나이가 가장 어렸기 때문에 동물 우리 청소와 동물 훈련 보조를 도맡았는데 바라던 동물원이었지만 목줄을 감고 훈련하는 동물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1년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고는 가족들이 사는 서울에 올라왔다.

집에서 가까운 동물병원에 어렵지 않게 재취업에 성공했으나 오래 일하지는 못했다. 과도한 진료를 하거나 아픈 동물을 지켜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변하지 않을 자신의 위치였다. 김선희가 하는 일은 동물원에서도 동물병원에서도 청소와 보조였다.

"어떤 일을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원했어요. 일단 뭐든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김선희는 대학 졸업 2년 만에 다시 진로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되었다. 정보를 찾을 통로는 인터넷뿐이었는데 보육교사 자격 과정과 간호조무사 자격 과정이 눈에 띄었다. 인터넷에서는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아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홍보했다. 김선희는 보육교사 자격 과정을 신청했고 교육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전국에 4명, 여성 라이더

김선희 남동생은 고등학생 때부터 오토바이를 탔다. 동생이 오토바이를 타는 모습을 오래 봐온 데다 얻어 탄 적도 많아 오토바이가 낯설거나 위험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어느 날 오토바이를 타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바로 면허를 취득했다. 학원에 오갈 때나 외출할 때 오토바이는 그의 발이 되어 주었다.

"오토바이는 빠르고 편해요. 교통비도 엄청 절약되고요. 제가 조심성이 많아서 속도를 내거나 그러진 못하는데 한적한 도로를 달릴 때 양 볼에 스치는 바람이 참 좋아요."

김선희는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동네 맥도널드 매장을 찾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맥도널드에서 주말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고3이 되면서 그만두었는데 책임감이 강하고 주변을 잘 챙겼던 그를 매니저와 동료들은 오래 기억했다. 면접을 보고 나오는데 매장 벽에 맥도널드 라이더를 모집하는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나도 라이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마이뉴스

▲ 수도권 사회적 거리 두기가 2단계로 격상된 24일 점심시간에 서울 삼성역 인근에서 배달직원이 분주하게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014년 당시는 여성 라이더가 흔하지 않았다. 전국에 맥도널드 여성 라이더가 4명이라고 했는데 김선희는 그중 한 명이었다. 오토바이를 타는 여성을 길에서 보기조차 어려우니 배달하는 여성 라이더를 보는 시선이 좋지 않았다.

"여자가 무슨 오토바이를 타냐? 이런 소리 정말 많이 들었어요. 원래도 오토바이 타면 양아치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데 여자가 타니까 무시를 더 많이 당했어요."

김선희는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보육교사 양성학원에 다니고 오후 4시부터 저녁 8시까지 맥도널드에서 배달했다. 당시는 맥도널드 매장에서 라이더를 직접 고용했다. 매장 매니저는 진급을 앞두고 있었는데 라이더들을 볼 때마다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읊었다. 맥도널드 라이더는 화려한 색의 방한 버프를 해서는 안 되고, 유니폼 안에 후드티를 입어서도 안 되고, 무엇보다 손님의 컴플레인은 늘 수용해야 했다.

보통 한 명의 라이더가 8시간 동안 40~50개를 배달했는데 바쁜 시간대는 네다섯 개의 주문이 묶여서 라이더에게 전해졌다. 배송이 늦었거나 지난번 시켜 먹은 햄버거에 피클이 없었다거나 콜라의 얼음이 녹았다거나 하는 컴플레인은 라이더들이 받았다. 머리를 숙이고 죄송하다는 말은 그들 몫이었다. 김선희에게는 몇 가지가 더 요구되었다. 머리는 늘 단정하게 묶어야 했고 옷매무새도 지적받았다.

"라이더들은 주문받은 곳은 어디든 가야 해요. 매장이 시내에 있어서 숙박업소가 많았는데 배달지가 모텔이면 긴장이 돼요. 문을 두드리면 배달 기사가 여자일 거라고 생각 못 하고 속옷만 입고 나오는 남자 손님들이 계시거나, 왜 이렇게 늦었냐고 제 얼굴에 일부러 담배 연기를 뿜는 사람도 있었어요. 여자고 어리고 몸집도 작으니까 당연히 반말을 하고 괜히 시비를 거는 사람도 많았죠. 제가 머리가 길고 몸집이 작아서 가까이 오면 여자인 게 티 나니까 일부러 제 오토바이에 붙어서 욕을 하고 가는 운전자들도 있었어요."

배달이 없는 시간에는 매장에서 잡일을 해야 했는데 매장 청소와 주차장 관리도 라이더의 책임이었다. 4시간 근무하면 30분, 9시간 근무하면 1시간의 휴식 시간이 주어져야 했는데 매장의 사정에 따라 쉬는 시간이 달라졌다. 배달이 없는 시간에 쉬어야 했고 배달이 밀리면 휴식 시간도 밀렸다. 일 시작한 지 2시간 만에 쉬기도 하고 6시간 만에 휴식하러 가기도 했다. 식사 시간이 한참 지나 배가 고프다고 하면 "너만 배고프니?"라는 말이 돌아왔다.

"배가 너무 고파서 배달을 마치고 편의점에 들러 급하게 컵라면을 먹고 들어온 적이 꽤 많아요. 다 배고프니까 한 명씩 돌아가면서 먹고 일을 하면 될 텐데 그런 사정은 배달에 밀렸어요."

같이 일하는 라이더들은 7명이었는데 김선희보다 어린 친구들이 많았다. 매니저가 라이더 동생들에게 과도하게 트집을 잡거나 휴식 시간을 제때 주지 않으면 그가 나섰다. 동생들은 그를 믿고 따랐다. 퇴근 후 동생들과 함께 하는 맥주 한잔이 그 시절의 낙이었다.
오마이뉴스

▲ 수도권 사회적 거리 두기가 2단계로 격상된 24일 점심시간에 서울 삼성역 인근에서 배달직원이 분주하게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오토바이는 잔고장이 많아 엔진오일을 넣는 등의 점검을 매주 해야 하는데 라이더 외에 오토바이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없었다. 김선희는 화이트보드에 1번 오토바이부터 8번까지 수리현황을 정리했다. 오토바이별로 고장 난 부분이나 점검해야 할 곳을 표시하고 매니저에게 수리를 요구했다. 매니저는 그에게 전적으로 오토바이 관리를 맡겼다.

"오토바이를 제대로 점검받지 않으면 라이더가 위험해져요. 그러니 수리를 해달라고 적극적으로 요구해야죠. 우리 목숨이 달린 문제니까요."

배달을 시작한 지 2년이 지났을 무렵 김선희는 골목에서 사고를 당한다. 일방통행이었는데 역주행하는 차량이 김선희의 오토바이를 박았다. 사고로 손목이 부러져 6주간 입원했고 맥도널드 라이더를 그만두었다. 하루 8시간씩 꼬박 일했던 김선희 월급은 최저시급과 배달 수당을 합해 130만 원이었다.

(김선희씨 이야기 2편으로 이어집니다)
[다음 기사]
사장 바뀌자 배달콜 줄줄이 취소... 소송에 나서다

홍세미 기자(rideralbalabor@gmail.com)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마이뉴스에서는 누구나 기자 [시민기자 가입하기]
▶세상을 바꾸는 힘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오마이뉴스 공식 SNS [페이스북] [트위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