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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감자, 식어야 입 연다"...문 대통령 '침묵의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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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3월 청와대에서 주한대사 신임장 제정식에 참석하며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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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상 초유의 충돌'에 대해 국정 최고·최후 책임자로서 문재인 대통령이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날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침묵은 24일 추 장관이 윤 총장에 대한 직무배제 및 징계청구 조치를 발표한 이후 사흘 째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오늘도 입장은 없다"고 했다.

낯설지 않은 침묵


낯선 모습은 아니다. 문 대통령은 정권 관련 굵직한 사안에 '무대응'하는 경우가 많았다. 청와대는 "수사 또는 감사 사안이라서" "청와대 소관이 아니라서" 등을 침묵의 이유로 댔다.

지난달 감사원이 발표한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타당성 평가에 대한 감사 결과에 대해서도 그랬다. "중단은 언제 됩니까?"라는, 원전 담당 장관을 향한 문 대통령 물음이 정부의 '월성1호기 조기 폐쇄' 결론으로 이어졌지만, 청와대는 입을 닫았다. "감사 결과에 대해, 더군다나 청와대 사안이 아닌데 입장을 내는 일은 이전에도 없었다"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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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5일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대한민국 인공지능을 만나다'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배제 및 징계청구 조치를 발표한 다음날이었지만 이날 관련 언급은 하지 않았다. 고양=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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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이후 우회 언급


민감한 현안에 대응하는 문 대통령 방식에는 패턴이 있다. '한창 뜨거운 감자'일 때는 언급을 자제하다가, 논란이 식을 때쯤 입장을 내는 식이다. 뒤늦게 내는 발언도 대체로 직접적이기보단 우회적이다.

문 대통령의 한 참모는 "대통령의 '말'은 무게가 다르다. 현안에 실시간 대응할 수 없다"고 했다. "한창 논란이 될 때 말을 보태면 갈등만 증폭한다"고 말하는 참모도 있다. 그러나 논쟁적 현안에 대한 국민의 갈증에 대통령이 답하지 않는 건 책임 회피라는 비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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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9월 19일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제1회 청년의 날 기념식에 기념사를 하고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 6월 불거진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 정규직화 논란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왕태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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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① '공정성 논란' 인국공 사태, 석 달 뒤에야...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논란, 이른바 '인국공 사태'가 불거졌을 때도 문 대통령은 한 동안 침묵했다. 인천공항이 비정규직 보안검색 요원 1,902명을 청원경찰 신분의 정규직으로 직고용한다고 밝힌 건 올해 6월 21일. '공정하지 않다'는 문제 제기가 터져 나왔다.

관련한 청와대 국민청원에 하루 만에 20만명이 동의할 정도로 비판은 거셌다. 문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2017년 5월 인천공항을 찾아 '임기 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한 뒤 일련의 결정이 이뤄졌기에, 시선은 당연히 문 대통령 입으로 쏠렸다. 지난해 '조국 사태'에 이은 공정 이슈였기에 청와대를 흘겨보는 시선이 더욱 날카로웠다.

문 대통령이 입을 뗀 건 세 달이 흘러서였다. 9월 19일 청년의날, 문 대통령은 방탄소년단(BTS)이 청년 대표로 참석한 청와대 행사에서 "때로는 하나의 공정이 다른 불공정을 초래하기도 했다"며 인국공 사태를 에둘러 말했다. 너무 늦은 탓에, 문 대통령이 37번이나 입에 올린 '공정'은 허공으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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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9월 9일 청와대에서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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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② 조국 사태, 다음 달에서야...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문제에 문 대통령이 대응하는 방식도 비슷했다. 8월 9일 조 전 장관 지명 이후 자녀 대학입시 특혜 의혹 등이 일파만파 커졌지만, 문 대통령이 '조국 논란'을 언급한 건 9월 1일에서였다. 해외 순방을 떠나기 전 당정청 고위관계자들과 환담하며 문 대통령은 "(조국) 논란 차원을 넘어서서, 대학 입시 제도 전반을 재검토해달라"고 주문했다. 여권 핵심 인사의 도덕성 문제를 입시 문제로 흐린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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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를 마친 문재인 대통령이 다음 방문지인 뉴질랜드로 향하는 공군 1호기 기내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 국내 문제는 질문 받지 않겠다고 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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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적 침묵이 반복되면...


이런 일화가 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12월 해외 순방에 동행한 기자들과의 대통령 전용기 내 간담회에서 말했다. "사전에 약속을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국내 문제는 질문 받지 않겠다." 특별감찰반 전원 교체 등 논란이 컸을 때인지라, 국내 현안 질문이 나왔다. 문 대통령은 이렇게 답변했다. "짧은 질문일지라도 저는 질문 받지 않고 답하지 않겠습니다. 외교 질문으로 돌아가시죠."

'침묵도 메시지'이기에 문 대통령은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정치 행위를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침묵이 빈번할수록, 침묵 뒤에 나오는 메시지가 공허할수록, '국정 책임자'에 대한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선택적 침묵이 반복되면 '위기를 모면하는 방편'이라는 오해를 살 여지도 커진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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