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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이슈 축구 영웅 마라도나 별세

"3년 전 흐려진 눈빛, 아직도 마음에 남아"…깊은 연 허정무, 마라도나를 추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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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지난 1995년 9월 디에고 마라도나가 보카주니어스 소속으로 방한해 한국 A대표팀과 친선경기를 치렀을 때 허정무 대전하나시티즌 이사장과 찍은 사진. 스포츠서울DB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3년 전에 만난 게 마지막이 될 줄이야…그때 흐려진 눈빛이 아직 마음에 남네요.”

향년 60세. 디에고 마라도나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26일(한국시간) 허정무 대전하나시티즌 이사장은 국내 미디어로부터 가장 많은 전화를 받은 축구인이다. 마라도나 얘기가 나올 때마다 국내 축구인 중 가장 먼저 떠올려지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스포츠서울과 통화에서 축구 인생의 특별한 연을 맺은 마라도나 사망 얘기에 애석해하며 말했다.

허 이사장과 마라도나의 첫 인연은 지난 1986년 멕시코 월드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 축구는 1954년 스위스 대회 이후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했고,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당대 최고 스타 마라도나가 이끄는 아르헨티나와 격돌했다. 허 이사장은 한국 수비진의 주력 요원으로 뛰었는데 주어진 미션은 ‘마라도나 전담마크’였다. 비록 한국이 1-3으로 패했지만 마라도나는 허 이사장의 불같은 수비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특히 기민한 마라도나 움직임을 제어하기 위해 허 이사장은 때론 거칠게 몰아붙였다. 한 번은 공을 강하게 걷어내려다가 마라도나 허벅지를 때렸고, 외신은 ‘태권축구’라며 둘의 충돌 장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마라도나는 훗날 한국전 기억을 더듬으며 허 이사장의 언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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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86년 멕시코월드컵 아르헨티나전에서 허정무(아래)의 강한 태클에 걸려 넘어지고 있는 마라도나. 스포츠서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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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1986년 6월25일자 1면 마라도나-허정무 사진. 스포츠서울DB



9년 뒤 허 이사장과 마라도나는 국내에서 만났다. 마라도나가 소속팀 보카 주니어스와 함께 방한해 한국 A대표팀과 친선경기를 했을 때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둘은 자국 대표팀 수장으로 두 번째 꿈의 무대 맞대결을 벌였다. 한국은 이 대회에서 원정 월드컵 사상 첫 16강 진출 쾌거를 달성했는데 아르헨티나와 조별리그 2차전 승부에서는 1-4로 대패했다. 허 이사장과 마라도나는 경기 중 마주보고 설전을 벌이는 등 또다른 스토리를 남기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만난 건 지난 2017년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을 앞두고 국내에서 열린 조 추첨식. 당시 마라도나가 추첨한 결과 개최국 한국과 아르헨티나가 A조에 묶였다. 마라도나는 환호하며 은근히 한국의 자존심을 건드렸는데, 한국은 보기 좋게 조별리그에서 아르헨티나는 2-1로 누르고 16강에 진출했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조별리그에서 짐을 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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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남아공 월드컵 당시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사령탑으로 격돌한 허정무와 마라도나. 최승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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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나가 지난 2017년 3월15일 FIFA U-20 월드컵 조 추첨식이 열린 수원SK아트리움에서 우승트로피를 들고 입장하고 있다. 박진업기자



허 이사장은 3년 기억을 더듬으며 “그때도 사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영 관리가 안 됐다는 느낌이 들더라. 모처럼 만나서 반가웠지만 정상적인 소통이 잘 안 됐고 눈빛이 다소 흐리다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약물 복용 추문이 불거지기도 했지만 (상태가 좋지 않다는) 느낌을 받긴 했다”고 덧붙였다.

마라도나 사망 이후 아르헨티나 언론에서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우승을 조명하면서 허 이사장과 맞붙었던 장면을 소환하기도 했다. 그는 “선수로 따지면 내가 반딧불이면 마라도나는 태양이었다고 본다. 기량 차이는 분명했다”면서 “다만 마라도나가 우리와 경기할 때 가장 고전했던 것 같다. 다른 경기는 거의 원맨쇼에 가깝지 않았냐”며 돌아봤다. 허 이사장은 마라도나 축구는 ‘트렌드를 앞서간 진정한 천재’로 정의했다. “마라도나는 감각과 시야, 신체적 특수성이 타고난 선수였다. 드리블할 때 공이 신체에서 늘 30㎝ 이상 떨어지지 않았고 상대 수비 중심을 무너뜨리고 역이용하는 기술이 대단했다.” 대표적으로 6명의 수비를 따돌리고 묘기 같은 골을 넣은 멕시코 월드컵 8강 잉글랜드전을 꼽았다. 그는 “키는 작지만 몸을 보면 허리가 거의 없을 정도로 탄탄하고 생고무처럼 탄력이 있었다. 그러니까 체격이 큰 잉글랜드 수비수도 손 쓸 수 없었고, 마라도나는 경기장을 넓게 보면서 자신의 장점을 잘 활용한 선수였다”고 강조했다.

축구 인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마라도나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에 허 이사장은 “애도하는 마음이 크다”고 했다. 또 “60세면 젊은 나이인데 안타깝다. 세계 최고의 선수로 마음속으로 늘 존경의 마음을 품었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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