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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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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걸이·신문지가 예술이 되다…최병소 개인전 '의미와 무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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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최병소 개인전 전경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전시장 바닥에 물보라처럼 새하얀 선들이 엉켜 있다. 눈으로 덮인 풀밭처럼 보이기도 하며 장관을 연출한다.

한 발 떨어져서 보면 단색화처럼 여운을 남기는 작품의 재료는 옷걸이다. 세로 7m, 가로 4m 크기의 설치 작품은 8천여 개의 세탁소 철제 옷걸이로 채워졌다. 옷걸이들이 구부러져 하얀 선을 이루고, 하얀 선이 모여 단색 공간으로 펼쳐진다.

신문지와 연필, 볼펜이 재료의 전부인 신문 지우기 연작에서 보여준 것처럼 최병소(77)는 평범한 일상 사물을 사용해 예술의 의미를 묻는다.

종로구 소격동 아라리오갤러리에서 26일 개막한 개인전 '의미와 무의미(意味와 無意味) SENS ET NON-SENS: Works from 1974-2020'은 작가가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지속해온 실험적 시도를 조명한다.

그의 대표작인 신문 지우기 연작은 신문지에 볼펜과 연필로 선을 반복적으로 긋는 작업이다. 먼저 볼펜으로 선을 긋고, 다시 그 위에 연필로 선을 그어 신문의 활자와 사진을 완전히 지워버린다. 볼펜 잉크와 연필 흑연으로 새까맣게 뒤덮인 신문지는 마찰로 얇아지고 군데군데 떨어져 나가 삭은 양철판처럼 전혀 다른 매체로 바뀐다.

옷걸이 설치 작품과 신문 지우기 연작은 예술과 사회 전반에 존재하는 주류 체계를 부정하며 그 체계를 해체함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자 했던 작가의 예술 세계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최병소가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활동을 시작했던 1970년대는 5·16 군사 정변과 유신체제에 대한 정치적 좌절감, 새마을운동으로 인한 경제적 안정과 희망을 동시에 경험했던 시대였다.

군부독재 상황에서 현실에 대한 발언을 시도했던 실험적 미술은 탄압받았고, 추상미술과 단색화 사조가 주류로 자리 잡았다.

최병소는 단색화와 실험 미술 사이 경계에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만들어냈다. 추상미술의 형식성을 일부 계승하면서도 실험적인 정신을 놓지 않았다.

그의 작업의 바탕에는 반예술적 태도가 깔려있다. 하찮게 여기는 물건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기존 미술의 위계를 뒤집는다.

총 15점이 출품된 이번 전시에서도 신문지와 옷걸이 외에도 의자, 잡지 사진, 안개꽃 등을 활용해 예술과 반예술,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를 넘나드는 초기작들을 감상할 수 있다.

과거 작가의 대구 작업실이 침수돼 1970~80년대 작품이 거의 안 남아 있다. 1970년대 사진 작품으로는 유일하게 남은 두 작품이 전시에서 소개된다. 내년 2월 2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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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소 개인전 전경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doub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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