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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물의 야기 법관’ 명단 활용…판사 사찰 의혹 속 가장 큰 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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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건 작성자 “공소 유지에 활용되도록 관련 부서에 전달”

법무부 “권한 없는 기관이 자료 수집·관리하는 것은 사찰”

법원 내 “관행” “검사는 증거로 재판해야” 엇갈린 반응

[경향신문]

경향신문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집행을 정지한 다음날인 25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는 적막감이 흐르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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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찰청 감찰부(부장 한동수)가 25일 윤석열 검찰총장의 징계 청구 이유 중 하나인 ‘판사 불법 사찰’ 의혹을 두고 수사에 착수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대검 감찰부에 윤 총장의 다른 비위 여부도 감찰하라고 지시했다. 윤 총장을 상대로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것이다.

대검 감찰부는 이날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아 대검 수사정보담당관실(당시 수사정보정책관실)을 압수수색했다. 컴퓨터 등에 담긴 판사 사찰 의혹 관련 자료를 살펴보기 위해 디지털 포렌식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 감찰관실과 달리 대검 감찰부는 수사권이 있다.

추 장관은 전날 주요 재판을 담당한 판사들을 불법 사찰한 의혹이 윤 총장의 징계 혐의 가운데 하나라고 밝혔다. “지난 2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에서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 등 주요 사건의 재판부 판사의 개인정보가 담긴 내용을 보고하자 윤 총장이 이를 반부패·강력부에 전달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개인정보는 ‘주요 정치적인 사건 판결 내용, 우리법연구회 가입 여부, 가족관계, 세평, 개인 취미, 물의 야기 법관 해당 여부’ 등이라고 법무부는 주장했다.

특히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물의 야기 법관’ 명단을 민감한 사건인 조 전 장관 등 2개 사건에 활용했다는 추 장관 발표가 논란이 됐다. 그러나 검찰은 두 사건을 담당한 판사들이 ‘물의 야기 법관’에 해당하는지 확인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대신 ‘사법농단’ 사건을 심리하는 서울중앙지법 재판부 중 한 명이 양승태 대법원에 의해 ‘물의 야기 법관’으로 지목돼 있어, 변호인이 공판 과정에서 해당 부분을 삭제한 뒤 증거로 제출할 것을 요청했다. 이에 검찰은 재판의 쟁점 중 하나라는 취지로 ‘물의 야기 법관’ 여부를 내부 보고서에 기재했다고 한다.

해당 문건을 작성했던 성상욱 고양지청 부장검사는 검찰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사찰 의혹을 부인했다. 그는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을 담당하는 재판부 구성원 중에 한 판사가 ‘물의 야기 법관’ 명단에 포함돼 있었다”며 “지난해 이미 피고인의 변호인이 그 사실을 재판부에 문제제기했고, 따라서 공판팀이 이미 아는 내용을 리마인드 차원에서 기재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법농단 사건의 피해자가 재판을 맡은 것으로 볼 수 있고, 재판 결과의 공정성과도 관계 있기 때문에 참고하라는 취지에서 작성했다는 것이다.

성 부장검사는 “누군가를 흠잡거나 비난하는 내용은 전혀 없었고 ‘원만하고 합리적인 재판 진행을 한다’는 동료 검사의 평가가 주된 것”이라고 했다. 자료도 언론 보도나 과거 공소유지에 참여한 공판검사들의 경험담을 토대로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법무부를 비롯한 누구도 작성 책임자인 제게 문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거나 문의하지 않았다”며 “검찰총장 징계 청구라는 중요한 처분을 하는 과정에서 어떤 확인도 없었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법적 권한이 없는 기관이 이런 자료를 수집·분석·관리하는 것은 사찰이고, 사찰 방법은 언론 검색, 탐문 등이 모두 포함된다”며 “문건에는 공개된 자료가 아닌 것으로 보이는 개인정보들이 포함돼 있다”고 재반박했다. 2월에 판사 사찰 문건을 건네받은 심재철 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현 법무부 검찰국장)은 당시엔 왜 이의 제기를 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에 “판사 사찰문건을 보고받는 순간 크게 화를 내었고, 일선 공판검사에게도 배포하라는 총장의 지시도 있었다는 전달을 받고 공판검사에게 사찰문건을 배포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고 법무부 대변인을 통해 밝혔다.

법원 내에서는 의견이 갈렸다. 한 부장판사는 통화에서 “로펌과 검찰이 사건 담당 판사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기본이고, 판사들도 인지하고 있는 일”이라며 “불법 사찰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고 위법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장창국 제주지법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망에 ‘판사는 바보입니까’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검사가 증거로 재판할 생각을 해야지 재판부 성향을 이용해 유죄 판결을 만들어내겠다니 그것은 ‘재판부를 조종하겠다, 재판부 머리 위에 있겠다’는 말과 같다”고 밝혔다. 그는 “(법원행정처는) 판사 뒷조사 문건이 무슨 내용이고, 어떻게 작성됐는지 확인해달라”며 “책임자 문책을 요구하고 필요하면 고발도 해달라. 검찰을 못 믿겠다면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도 좋다”고 했다.

이보라·정희완·유설희 기자 purp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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