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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우승] ‘무명 선수→창단 코치→우승 감독’ NC 이동욱의 감격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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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 NC 다이노스 2년 만에 정상으로 이끈 이동욱 감독

-무명 선수 생활, 조기 은퇴…코치 된 뒤 누구보다 노력하고 공부해

-수비 코치로 성과 인정받아 NC 감독 부임

-감독 된 뒤 구단과 소통, 선수단과 호흡 맞춰 우승 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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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후 기자회견하는 이동욱 감독(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엠스플뉴스]

NC 다이노스의 창단 첫 우승으로 끝난 11월 24일 한국시리즈 6차전. 경기 후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이동욱 NC 감독의 눈은 붉게 충혈돼 있었다. 이미 그라운드 우승 행사에서 한 차례 눈물을 쏟은 뒤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물부터 한 모금 마신 이 감독은 “정말, 꿈으로만 생각했던 우승을 했다”고 입을 열었다.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은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감독은 “2020년 야구가 끝났구나…마지막이 승리로 끝나서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코치들과 그동안 고생한 생각이 나서 울컥하기도 했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명 선수에서 우승 감독으로, ‘사연 다이노스’ 일원 이동욱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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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 코치 시절 이동욱 감독(사진=NC)



NC 팬 사이에서 NC 다이노스는 ‘사연 다이노스’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힘들게 야구한 선수, 좌절과 역경을 이겨낸 선수가 워낙 많다고 해서 생긴 별명이다. 사연이라면 선수단을 이끄는 이동욱 감독의 고생담도 만만치 않다.

선수 시절엔 크게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선수였다. 1997년 롯데에서 데뷔해 2003년 은퇴까지 7시즌 143경기 타율 0.221이 기록의 전부다. 입단 당시엔 어느 정도 기대를 받는 선수였지만, 막상 데뷔한 뒤엔 박정태라는 대형 스타의 그늘에 가려 백업 역할에 그쳤다. 양쪽 무릎에 생긴 부상도 선수 이동욱의 성장을 막았다. 결국 29세 이른 나이에 현역 생활을 접었다.

그러나 선수 시절 보여준 성실한 태도, 영리한 두뇌 회전, 친화력이 제2의 야구 인생을 여는 데 도움이 됐다. 롯데 구단의 권유로 2004년부터 코치 생활을 시작했다. 전력분석원을 맡아 잠시 프런트도 경험했다. 리모델링 이전 창원 마산야구장의 불펜은 이 감독이 프런트 시절 직접 설치한 작품이다. 이후 LG 트윈스로 건너가 수비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갔다.

선수로 성공하지 못한 대신,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다. LG 관계자는 “이동욱 감독은 코치 시절 공부하는 코치로 유명했다. 구단 내부 평가도 좋았다”고 떠올렸다. 차명석 현 LG 단장, 허문회 현 롯데 감독, 김정민 현 LG 배터리 코치 등과 함께 야구 스터디 클럽을 결성해 공부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 감독은 “선수 시절엔 내가 가진 야구를 제대로 못 했다. 그러다 보니 선수로 좋은 결과를 맺지 못하고 일찍 그만뒀다”며 “코치가 된 뒤 내가 느꼈던 부분들, 선수들에게 해선 안 되겠다고 생각한 부분들을 지도 방법에 접목했다. 선수들이 납득할 수 있는 근거를 갖고 코치하기 위해 연구했다”고 밝혔다.

이런 자세를 인정받아 2011년 NC 창단과 함께 코칭스태프로 합류했다. 창단 첫 훈련인 강진 캠프부터 NC 선수들을 지도했다. 나성범, 박민우, 노진혁, 강진성, 이상호 등 현재 1군 멤버 상당수가 그때부터 함께 호흡하며 어려움을 나눈 사이다. 박민우, 노진혁 등 내야수들과는 미국 캠프에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펑고를 치고 또 치면서 함께 눈물을 쏟았다.

이 감독은 수비 코치로 탁월한 성과를 올렸다. 내야수들의 수비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고, 박민우 등 송구 트라우마로 고생한 선수들도 수비 안정을 이뤘다. 이 감독이 수비 코치를 맡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NC는 4년 연속 DER(수비효율) 부문 리그 1위를 차지했다. 이 감독은 데이터 팀이 전해준 자료를 열심히 공부하고 활용했다. 경험만이 아닌 이론적 근거를 토대로 선수들을 지도했다.

이 감독은 “지금은 과학적 근거가 없으면 선수들이 절대 수긍하지 않는다. 근거가 있는 코칭을 해야 선수들에게 통한다. 그 부분을 많이 생각하려 했다”고 말했다.

지도력과 공부하는 자세, 선수들과의 스킨십을 높이 산 NC는 2018시즌이 끝난 뒤 이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외국인 감독부터 유명 스타 출신까지 다양한 인사가 감독 하마평에 올랐지만 NC는 NC를 누구보다 잘 알고 구단과 손발을 맞춰 팀을 재건할 적임자로 이 감독을 선택했다.

NC의 판단은 정확했다. 이 감독과 함께 NC는 2019시즌 5위로 포스트시즌 무대에 복귀했다. 주전 선수 줄부상과 외국인 선수의 부진 속에 이룬 성과라서 더 값졌다. 그리고 올 시즌엔 창단 이후 처음으로 정규리그 우승,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며 구단의 새 역사를 썼다.

이 감독은 구단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합리적으로 선수단을 운영했다. 독불장군식으로 팀을 이끌지 않았다. 데이터 팀과 코칭스태프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지난해 저반발 공인구 이슈를 효과적으로 돌파한 힘도 데이터와 코치진의 협업에서 나왔다.

이 감독은 감독의 야구가 아닌 ‘NC의 야구’를 추구했다.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모든 구성원의 힘을 모았다. 팀이 이겼을 땐 선수단과 프런트에게 공을 돌렸고 구단에 문제가 생겼을 땐 대신 고갤 숙였다. 어떤 경우에도 선수를 탓하지 않았다. 한국시리즈 1차전 뒤 애런 알테어 논란이 터졌을 때도 대신 화살을 맞았다.

데이터를 활용하지만 사람의 가치를 잊지 않았다. 스프링캠프 중도귀국 이후 누군가는 ‘김진성은 1군에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이 감독은 다른 선수들과 똑같이 기회를 줬고 김진성은 시즌 후반과 한국시리즈 NC 불펜 에이스로 활약했다.

마무리 원종현이 흔들릴 때 “우리 마무리는 원종현”이라고 힘을 실었고, 원종현은 NC의 우승 피날레를 장식한 투수가 됐다. 이 감독은 “감독이 된 뒤에는 모든 선수를 보고 가야 한다. 리더십과 코칭에 대해 더 공부했던 게 감독을 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털어놨다.

이 감독은 결과를 내기 전에 말부터 앞세우지 않았다. 마치 명장이 된 것처럼 ‘예언’을 하거나, 자신이 주목받기 위해 꾸며낸 말을 하지 않았다. 정규시즌 우승을 눈앞에 뒀을 때도, 한국시리즈에 와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신중했고 또 신중했다. 야구 앞에서 자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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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의 기쁨을 누리는 NC 선수단(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무명 선수로 보낸 시간을, 2군 코치로 보낸 시간을 이 감독은 더 나은 야구인과 지도자가 되기 위한 자양분으로 삼았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감독이 꿈꾸지만 역사상 단 16명 만이 차지한 우승 감독의 영광을 손에 넣었다.

우승 소감을 덤덤하게 말하던 이 감독은 ‘가장 고마운 사람은 누구인가’란 질문에 끝내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충혈된 눈으로 잠시 말을 멈춘 채 먼 곳을 바라본 이 감독은 “팀 적으로는 구단주님과 대표님께 감사하다”고 말한 뒤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리고 어머니께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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