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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에로소설 낭독회’ 열던 책방주인, 여성 첫 美정보기관 수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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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도 더 된 경(輕)비행기를 수리해 대서양을 횡단하다가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고, 20대 때에는 매달 성애(性愛·에로티카)문학 낭독회를 여는 볼티모어 시의 명물(名物) 서점을 운영하고….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미 정보기관 전체를 총괄하는 미 국가정보국장(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에 내정한 애브럴 헤인스(51)는 ‘스파이마스터’가 되기 전 모험과 파격을 즐겼던 다채로운 경력의 인물이다. 헤인스는 오바마 행정부 때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중앙정보국(CIA) 부국장에 임명됐다. 미 상원의 인준이 남았지만, 국가정보국장 헤인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018년 3월 여성으로선 최초로 CIA 국장에 임명한 지나 헤스펠(62)의 보고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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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1995년 20대 중반의 헤인스는 볼티모어에서 책방을 운영하며, '성애소설 낭독의 밤'도 주관해 지역사회에서 유명인사가 됐다./볼티모어 선


그러나 헤인스의 20대 경력은 스파이와는 무관한 삶이었다. 뉴욕시 맨해튼 출신인 그는 시카고대에서 남학생들 틈에서 이론물리학을 전공했고, 틈틈이 자동차수리점에서 일하면서 익숙하게 기계를 다루게 됐다. 졸업 후에는 직접 비행기를 몰고 유럽을 가는 오랜 꿈을 이루고자 뉴저지 주에서 경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을 땄고, 나중에 남편이 된 훈련 교관과 함께 1961년산(産) 낡은 세스나 경비행기를 샀다. 장거리 비행에 적합하게 외부 연료탱크를 설치하고 여러 곳을 손질했지만, 메인 주 뱅거를 이륙한 두 사람이 탄 세스나 비행기는 대서양 상공에서 엔진 두 개가 다 꺼졌고 활공 끝에 가까스로 캐나다 뉴펀들랜드의 동쪽 끝 외딴 비행장에 불시착할 수 있었다.

이후 헤인스의 관심은 책방으로 바뀌었다. 경비행기를 팔고 은행 대출을 얻어 볼티모어에서 시작한 북카페는 큰 성공을 이뤘다. 1995년 지역 유력지인 볼티모어 선은 그의 서점이 매달 여는 ‘에로티카문학의 밤’을 크게 소개하기도 했다. 당시 헤인스는 선에 “사람들이 실제 성(性)관계 없이 성관계 경험을 원하고, 일부일처(一夫一妻)제에 새로운 판타지를 넣으려고 에로티카 소설을 더욱 찾는다”고 말했다. 헤인스의 책방이 큰 성공을 거두자, 은행에서는 추가 융자 제공을 제안하며 책방을 몇 군데 더 열라고 했다. 그러나 그때쯤 헤인스는 지역사회의 변화를 주도하는 법률가들의 모습에 반해 조지타운대 로스쿨에 진학한다.

이후 조지 W 부시 행정부(공화당)의 국무부 법률팀과 조약국에 합류했다. 당시 CIA가 의회 보고 없이 해외 ‘불량 국가’에서 미국법의 적용을 받지 않고 테러리스트들을 고문해 정보를 빼내는 신문 장소들을 운영해 온 사실이 드러나 미 정가가 발칵 뒤집혔다. 헤인스는 이를 정리하는 일을 맡았다. CIA 요원들은 법을 앞세우는 법률가들의 참견을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그는 외부인을 불신하는 CIA 직원들로부터 깊은 신뢰를 받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헤인스는 조 바이든이 위원장이던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전문위원으로 일하면서 바이든과 인연을 맺었고,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부 조약국장으로 복귀했다. 2016년 시사잡지 뉴스위크는 “일부 법률가들은 개인적 견해와 판단, 이데올로기를 논의에 밀어붙이지만, 헤인스는 늘 남이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리더(enabler)”라는 주변의 평을 보도했다. 헤인스가 가장 좋아하는 경구(警句)는 ‘가진 게 망치뿐이면,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if all you have is a hammer, everything looks like a nail)’이다. 그는 국제법에 기초한 행동의 필요성에 못지 않게, 다른 전문가들이 맡은 대(對)테러작전의 중요성과 효율성을 중시했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의 눈에 띄어, 헤인스는 국가안보 부(副)보좌관의 자리에 올랐고, 후에 CIA 첫 여성부국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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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행정부에서 대통령 국가안보 부보좌관 시절의 헤인스. 그는 이제 전세계 최고의 정보를 총괄하는 미국의 정보 수장이 됐다./사진 출처=백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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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행정부 때에는, 해외 테러범에 대한 CIA 드론 공격의 최종 결정권자를 ‘대통령’에서 ‘CIA국장’이나 ‘국방장관’으로 옮기는 문제를 놓고 백악관과 부처들이 갑론을박을 벌였다. 백악관은 최종 살해 명령을 대통령이 내린다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결국 부처간 의견을 다 듣고 ‘절충안’을 마련한 것도 헤인스였다. 헤인스는 테러 용의자에 대한 드론 촬영의 해상도가 낮을 때와 새로운 나라에서 처음 드론 공격을 할 때에는 대통령이 최종 결정권을 갖고, 대통령이 수시로 ‘살인 목록(kill list)’을 검토하는 것으로 정리해, 부처간 싸움에서 모두가 ‘승리’를 주장할 수 있게 했다고 한다.

따라서 CIA와 미 정보기관은 헤인스에게 낯선 문화나 분위기가 아니다. 하지만 저마다 자아(自我)를 내세우는 워싱턴 관료·정가에서 헤인스는 헤인스는 부끄러워할 정도로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아 “너무 공손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 때 에릭 홀더 법무장관에게 늘 “법무장관님(Mr. Attorney-General)”이라고 불러, “에릭으로 불러달라”는 주의를 받곤 했다. 슬레이트 매거진은 23일 “헤인스가 국가안보 부(副)보좌관 시절 자신의 생각이 대통령·부통령·국방장관·국무장관·안보보좌관 등의 국가안전위원회(NSC)의 주(主)참석자들(principals)과 다르자, 한때 ‘부(副)직책들이 세계를 다스려야 한다(Deputies should rule the world)’라는 티셔츠를 만들어 입을까라는 생각도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건 그가 ‘부(副)’일 때의 얘기다. 헤인스는 이제 그가 그 모임의 ‘프린시펄’이 됐고, 세계 최대의 정보기관들을 총괄 지휘하고 다루는 세상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여성이 됐다.

[이철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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