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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바이든정부 외교안보 투톱…`이란식 모델`로 北核협상 판 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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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 사령탑으로 임명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지명자가 미·북 관계의 틀을 새롭게 짜고 대북 협상 전략도 완전히 새로 구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북한 비핵화에 대해 이들이 어떤 밑그림을 그리느냐에 따라 한반도 정세와 우리의 대북 정책도 큰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 이란 핵협정을 되살리는 동시에 북한에도 유사한 모델을 적용하기 위해 관련 당사국과 논의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일각에선 이는 이미 실패했던 6자회담 모델의 반복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는 대선 전 CBS방송과 인터뷰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파기하기 전까지 이란 핵협정은 작동하고 있었다"며 "북한이 당장 내일 핵무기를 모두 폐기할 것이란 환상은 없지만 단계를 밟아 가면서 집중적인 외교정책을 펼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블링컨 지명자는 중국을 북핵 문제 해결의 지렛대로 삼겠다는 주장도 해왔는데 이 역시 이란식 모델과 관련 있다.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으로 불리는 이란 핵협정은 버락 오바마 정권 말기인 2015년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 등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과 독일, 유럽연합(EU)이 이란을 상대로 체결했다. 이란이 핵 프로그램을 단계적으로 포기하는 대가로 협상 당사국들은 경제 제재를 해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앞서 블링컨 지명자는 2018년 6월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 직전에 뉴욕타임스(NYT)를 통해 북핵 문제 해법을 제시한 바 있다. 당시 그는 '북한과 핵협상에서 최선의 모델은?'이라고 자문한 뒤 '이란'이라고 썼다.

블링컨 지명자는 이 글에서 우라늄 비축량의 98% 제거, 원심분리기의 3분의 2 해체와 봉인, 우라늄 농축 상한선 설정 등을 통해 이란이 핵무기를 위한 핵물질 생산에 걸리는 시간을 수주에서 1년 이상으로 늘리는 효과를 봤다고 적었다. 또 북한의 광산, 원심분리기 시설, 조립 라인, 농축 및 재처리 시설 위치 등 핵 공급 체계를 포괄할 감시 시스템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며, 이 역시 이란 핵 합의를 차용할 수 있다고 썼다.

그는 "이란과 달리 북한은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핵 왕국의 열쇠'를 넘겨주길 바라는 것을 '판타지'에 비유했다. 아울러 핵 포기 이전에 평화 조약을 체결하는 것은 미국의 기존 대북 정책과 배치된다고 못 박았다.

이를 종합하면 이란 핵합의 과정을 거울 삼아 실무 협상부터 밟아 가는 단계적 접근법을 추진하고, 미·북 양자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주변국 공조를 끌어내는 다자 협력 틀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 사이엔 바이든 정권에서 북한 핵문제는 후순위 과제라는 데 이견이 거의 없다. 다른 현안도 많지만 북한 문제는 일거에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슈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오바마 정권에서도 파리기후변화협약, 이란 핵협상 등에 관여했던 민주당의 대표적 외교안보 책사들이라는 점에서 동맹 복원, 다자주의 회복 등을 통해 트럼프 정부가 남긴 '미국 우선주의'의 상흔을 하나씩 지워 갈 전망이다. 두 사람 모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에 찬성하고 중국에 대한 제도적 견제를 주장해 온 인물이라는 점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관여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블링컨 지명자는 실무 협상과 각 부처 간 미세 조정의 막후 조정자로 유명했다. 실제로 2015년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 문제와 관련해 양국이 고위급 전략 협의를 구성하기로 하면서 당시 국무부 부장관이었던 블링컨 지명자가 2016년 서울과 워싱턴을 5차례 오가면서 대북 제재안을 정밀하게 재설계했다. 그간 대북 제재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강력하고 실효적인 압박 수단을 짜내는 방안으로 선회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온 대북 제재 전략이 북한의 경제, 특히 외화 가득 능력을 정조준한 정밀 제재였다.

[워싱턴 = 신헌철 특파원 / 서울 = 한예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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