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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범죄가 문화라고? '강간문화'는 실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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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은 기자(pi@pressian.com)]
2차 가해, 재생산권 보장, 피해자 중심주의, 강간문화…

최근 몇 년 동안 페미니즘이 주요 화두 중 하나로 떠올랐다. 중요한 사건들도 많았다. 혜화역의 불법촬영 규탄 시위, 안태근 전 검사장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미투, 래디컬 페미니스트를 중심으로 한 탈코르셋 운동 등. 페미니즘 이슈는 지금도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과 대체입법이 논의되는 중이고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의 가해자들의 재판이 진행 중이다.

여러 사건 과정에서 페미니즘은 언어가 되어 여성들에게 목소리를 주었다. 여성들은 '일상에서 당연했지만 동시에 불편했던' 경험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공감하며 연대했다. 여성들의 연대는 불편함을 호소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프레시안>은 그동안 페미니즘 이슈에서 언급되었던 용어들을 취합했다. 많이 언급되었던 용어 중 '알 것 같지만 설명하기는 어려운' 용어, 혹은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용어를 정리하며 이를 둘러싼 논점을 짚어봤다. 편집자

'장학썬'이라 불리는 세 사건이 있었다. '고 장자연 사건'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 '버닝썬 사건'을 일컫는다. 고 장자연 씨는 원치 않는 성접대를 강요당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은 건설업자 윤중천 씨로부터 수차례 별장 성접대를 받았다. 클럽 버닝썬에서는 비즈니스를 위해 성접대를 하는 것은 물론, 약물강간이 횡행했다.

이외에도 '정준영 사건'도 있다. 정준영 등 유명 연예인들이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성범죄를 모의·기획하고 불법 촬영물을 공유했다.

이들 사건의 공통점은 가해자들이 범죄행위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거리낌없이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이다. 성범죄를 마치 하나의 놀이처럼 여겼기 때문이다.

'강간문화', 강간이 만연한 문화

'장학썬'을 두고 우리사회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라며 충격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장학썬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건도, 상류층 일부의 일탈도 아니다. 장학썬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들여다보면 일상적인 강간문화를 찾을 수 있다.

'강간문화'는 말 그대로 강간이 만연한 문화다. 강간문화라는 용어에 대해 "강간이 어떻게 문화가 되느냐", "지나친 비약이다"라는 식의 반응이 보인다. 그러나 강간문화는 실재한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든다>의 저자 리베카 솔릿은 강간문화에 대해 "강간이 만연한 환경, 미디어와 대중문화가 성폭력을 규범화하고 용인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간문화'라는 용어는 1970년대 2세대 페미니스트인 노린 코넬과 카산드라 윌슨에 의해 사용된 후 뉴욕의 '강간 피해 공개 발언' 대회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코넬과 윌슨은 공저 <강간>에서 강간문화를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 설명했는데 △강간이 일어난 사실에 대한 부정이나 축소 △강간 피해자의 저항 거부 의사에 대한 부정 △피해자에 대한 인신공격을 꼽았다. 강간문화는 여성혐오와 성폭력 2차 피해 유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삐뚤어진 남성성의 일반화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조교수는 강간문화에 대해 "성적인 공격성과 폭력성을 '자연스러운 남성성'으로 여기도록 해 사회·문화적으로 강간을 용인하도록 하는 것"이자 "남성의 성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으로 묘사함과 동시에 여성에게는 강간을 여성이 알아서 피해야할 처신의 문제로 가르쳐 죄책감을 내면화하도록 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강간문화는 '성적인 폭력성과 공격성'에 입각한 남성성을 정상적인 것으로 여기게 만든다. 다시 말해, 남성은 성적 공격성을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존재인 반면 여성은 수동적이며 순종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이런 위계적 성역할을 전제로 성관계에 있어서 '지배적이고 능동적인 남성이',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여성을', '폭력적인 방식으로 제압하면', '성욕이 해소된다'는 통념이 남성중심적 성규범을 강화해온 방식이다.

이런 인식들은 '강간을 강간이 아니게끔' 만든다는 것이 윤김 교수의 설명이다. 가령 강간을 '거친 성관계'로 취급한다거나 범죄임에도 두 사람 사이의 사생활로 치부하고 마는 것, 남성성을 지배적이고 공격적인 것으로 묘사하며 남성에게 이를 전리품처럼 성취하고 다른 남성들에게 전시할 것을 당연시 여기게 만드는 것, 또 남성이 성적으로 폭력적이고 이를 통제하지 못한다고 묘사하는 방식을 통해 남성의 죄의식을 희석시키거나 강간을 용인하고 부추기는 행위들, 일련의 이 모든 것이 바로 강간문화의 산물이다.

강간문화는 실제 범죄부터 언론, TV, 영화, 문학, 음악 등 일상적으로 소비되고 있는 대중매체 전반에 뿌리내리고 있다. 쉽게는 대중문화 속에서 스토킹이나 강제 스킨십 등 파트너 간 남성폭력을 미화하는 걸 예로 들 수 있다. 더불어 강간 피해자로 하여금 강간의 궁극적 피해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 찾도록 만드는 분위기 속, 피해 사실을 조금이라도 말하면 꽃뱀으로 의심하며 오히려 피해자를 공동체 내에서 고립, 열외 시켜버리는 것, 그리하여 범죄 사실을 은폐시키는 것도 강간문화에 해당한다.

일상에서 놀이로, 산업으로 실현되는 강간문화

윤김 교수는 강간문화가 "남성의 강자적 정체성을 확인하고 남성들 간의 내부 결속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여성을 도구화하여 성적으로 착취하는 방식을 통해, 자신이 더 센 남자임을 증명해냄으로써 남성 내 서열을 높이는 수단으로 강간문화가 기능하고 있다. '장학썬' 사건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강간문화는 어린 시절부터 생애 주기별로, 다양한 방식으로 학습된다. 그 시작은 학교에 있다. 학교라는 공간은 여자 아이들을 향한 남자아이들의 외모 품평, 야한 농담과 여성혐오적 발언, 유머인 것처럼 이뤄지는 성희롱, 성경험을 부풀려서 전시하는 행위 등을 통해 강간문화를 실행한다.

이에 동참하지 않으면 또래 남성 그룹 내에서 곧바로 '약한 남성', '남자답지 못한 남자'로 낙인찍혀 열외 당하게 만든다. 재미와 놀이 삼아 성폭력 가해를 저지르고, 여기에 동조하고 방관함으로써 남성들 간의 결속의지를 다지게 되고 점차 이를 아무렇지 않게 실천하게 만드는 것이 강간문화이다. '단톡방 성희롱 사건'은 이런 또래 남성 문화의 연장선에 있다.

강간문화는 놀이에서 끝나지 않고 산업으로 구현된다. 텔레그램 n번방의 문형욱과 박사방의 조주빈은 등은 단톡방 형식의 대화방에서 아동 성 착취물을 공유해 수익을 창출했다.

유흥산업은 이런 산업구조를 잘 드러내고 있다. 클럽 버닝썬을 보면 성별에 따라 출입 방법부터 달랐는데 남성은 고액의 테이블 비용을 지불하는 반면, 여성은 무료로 입장한다. 클럽은 남성 손님으로부터 수익을 창출하는데 여성을 제공함으로써 남성 손님을 유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성 손님에게 여성을 선택할 권리를 주고, 때론 강간 약물을 구해다 주며 클럽과 남성 손님 간의 강간문화에 대한 결탁이 성립해 왔다.

프레시안

▲지난해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 주최로 열린 안희정 위력 성폭력사건 의미와 과제 토론회 ⓒ프레시안(조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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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통제와 배제의 방식, 미투운동에 의해 고발되다

강간문화의 일련의 모습들은 '남성 연대'가 여성을 매개로 이뤄진다는 점을 드러낸다. 강간문화는 공적 영역에서 특히 힘을 발휘한다.

윤김 교수는 강간문화가 "사회 문화 전반의 결정권자와 권위자의 자리가 남성 중심으로 구성된 사회에서 소수자인 여성들을 통제와 배제의 대상이자 포식과 착취의 대상으로 규정해 온 방식"이라면서 "강간문화는 유리천장 등 직장 내 성차별 문화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고 지적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강간문화는 여성을 동등한 존재로 보지 않고 성적 대상으로 보는 성차별적 시각을 전제로 한다. 이런 시각은 직장 내에서는 여성 동료를 공적인 파트너가 아닌 성적 접근이 용이한 사적 관계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한다. 여성 동료는 지속적인 성차별이나 성추행에 놓이다 이를 견디지 못하고 쫓겨나든지 스스로 물러나게 된다.

강간문화는 이런 방식으로 남성 연대를 강화하고 유지하는 수단으로도 작용한다. 직장 내 성폭력의 경우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고 피해자가 2차 피해를 겪다 조직에서 쫓겨나며 끝나는 경우가 많다.

윤김 교수는 "직급이 높은 남성들이 가해자를 감싸고 피해자를 쫓아내는 방식으로 사건을 종결시키는 일이 반복될 때에, 하부계급의 남성들은 이를 강간문화에 대한 용인의 메시지로 받아들이게 된다"며 "바로 이것이 남성 중심의 조직에서 강간문화를 용인하고 계승하는 방식"이라고 짚었다.

남성 고위공직자가 학창시절 여학생을 '공유'했던 경험을 이야기하거나 남성 정치인이 대학시절 짝사랑 중인 친구를 위해 돼지발정제를 구했다는 경험을 추억처럼 이야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공적인 자리에서 이 같은 발언은 사회 전체에 하나의 메시지가 된다. 강간이 범죄가 아닌 것처럼 희석되고 남성들이 영위하는 평범한 일상의 한 부분으로 용인되고, 놀이나 관습으로 여겨짐으로써, 결국엔 '별 것 아닌 일'로 치부되고 만다.

윤김 교수는 "공적 영역에서 여성의 열외를 가속화하고 정당화하는 것이 강간문화의 요체"라며 "강간문화는 남성 권력의 실행 방식이자 폭력의 제도화"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같은 과정을 거치며 조직 내에서 여성은 축출되고 남성 연대는 강화된다"며 "미투운동이 고발하는 건 결국 강간문화"라고 강조했다.

정욕이 아닌 권력과 폭력의 범죄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의 저자 수전 브라운밀러는 강간을 "모든 남성이 모든 여성을 공포에 사로잡힌 상태에 묶어두려고 의식적으로 협박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하며 "강간은 정욕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과 폭력의 범죄"라고 단언한다. 이런 관점에서 강간은 일종의 정복행위로써 여성을 항구적인 두려움의 상태에 가둬 여성의 남성종속적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실제 강간의 위협은 여성의 삶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 여성은 생애에 걸쳐 강간을 두려워하고 조심하도록 교육받고 이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제약한다. 밤 늦게 다니지 않고 밝은 길을 따라 멀리 돌아가는 것, 남성과 단 둘이 있지 않는 것, 낯선 사람을 경계하며 홀로 낯선 장소에 가지 않는 것 등. 따라서 강간은 여성을 남성에게 종속된 위치에 머물도록 만드는 강력한 수단이 된다.

미투운동을 돌아보면 강간이 권력의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점이 뚜렷해진다. 안희정 사건, 이윤택 사건, 김기덕 사건 등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미투운동을 살펴보면 조직에서 권력을 가진 남성이 하부 계급의 여성을 강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사건들은 가해자가 어느 순간 자신의 성욕을 통제하지 못해 일어난 것이 아니다. 가해자들은 자신보다 신체적으로 약하고 자기방어 수단을 갖고 있지 않은 '약한 지위의 여성'을 정확히 목표로 삼았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사회적·제도적 환경을 모두 이용해 피해자에게 접근하고 피해자를 입막음해 가해 사실을 은폐했다.

범죄를 범죄로 처벌할 수 있어야

'강간을 강간이 아니도록' 만드는 강간문화에 맞서, 이를 범죄로서 엄벌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우리나라 사법시스템은 아직 강간 피해자에게 왜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는지를 묻고 피해자의 평소 행동이 얼마나 문란했는지를 따지며 그에게 강간의 책임을 떠넘긴다. 그리고 가해자에게는 앞날이 창창하다는 이유로, 실수를 뉘우치고 있다거나 초범이라는 이유로 관대한 판결을 내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여성단체들은 우선 형법 297조의 강간죄에서 강간 판단 여부를 '폭행과 협박'이 아니라 '동의 여부'로 바꿀 것을 주장하고 있다. 현재 강간죄는 '현저히 항거 불능한 상태'의 '폭행과 협박'이 있어야만 성립한다. 이 판단 기준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얼마나 저항했느냐', '충분히 저항했느냐', '왜 저항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으로 돌아간다.

받으나 마나한 낮은 처벌 수위부터 권력에 의한 위계폭력이자 범죄로 이를 인정받기까지도 매우 지난한 여정이 수반된다. 이러한 법체계로 인하여, 성범죄가 일어난다 해도 피해자들이 신고를 통해 기나긴 법정 투쟁을 감행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로써, 피해자는 사회에서 숨거나 침묵하게 되고 오히려 가해자들이 당당하게 활보 가능한 강간문화가 더욱 견고하게 유지되고 마는 것이다.

나아가 강간문화의 근본적인 타파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성차별이 극복되어야 한다. 브라운 밀러에게 있어 강간문화란 남성이 여성을 사유재산으로 여기는 관점으로부터 기인한다. 여성의 신체를 소유하고 소비할 권리가 남성에게 있다는 성차별적 관점이 바로 강간문화의 근본적 원인이기 때문이다.

여성과 남성 간의 위계적이며 비대칭적인 성별 불평등 구조를 인식하고 일상생활과 문화 전반에 깊숙이 침투한 강간문화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저항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더 많은 여성들이 침묵을 깨고 말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야 하며, 더 많은 여성들이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분야 등에서 고위 임원직이나 의사 결정직을 맡을 수 있는 제도적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리고 더 많은 남성들이 강간문화의 방관자, 동조자에서 벗어나 남성 연대에 균열을 일으키는 내부고발자가 되어 폭압적, 포식자적 남성이 아닌 다른 남성성이 가능함을 문화운동의 일환으로 전개해나가야 할 것이다.

[조성은 기자(p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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