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64350701 0362020112464350701 01 0106001 6.2.2-RELEASE 36 한국일보 0 false true false false 1606147200000

北 꿈쩍도 않는데...홀로 가속 페달 밟는 이인영, 왜?

글자크기
한국일보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23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통일부-경제계 인사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북한을 향한 이인영 통일부 장관의 ‘구애 행보’가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 20일 북한과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나누기를 언급했던 이 장관은 23일에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복구와 더불어 ‘서울·평양 대표부’ 설치를 주장했다. 4대 그룹 등 재계 인사들과의 회동에서는 “남북 경제협력의 시간을 준비하자”고 촉구했다. 북한이 코로나19 국면에서 국경을 봉쇄하며 꿈쩍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이 장관 홀로 '가속 페달'을 밟는 모양새다.

이 장관은 23일 국회에서 열린 ‘남북 연락ㆍ협의 기구의 발전적 재개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새로운 남북관계의 변화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통신 재개로부터 시작될 것”이라며 “서울·평양 대표부를 비롯해 개성 신의주 나진 선봉 지역에 연락소와 무역대표부 설치도 소망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올 6월 일방적으로 폭파한 기존의 공동연락사무소 복구를 넘어 무역대표부 등의 추가 설치까지 언급한 것이다.

이후 열린 삼성ㆍSKㆍLGㆍ현대자동차그룹 등 재계 인사들과의 회동에서는 “정부와 기업이 서로 역할 분담을 통해 남북경협의 시간을 준비하자”며 “앞으로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고 비핵화 협상이 진전되면 남북 경협 문제는 예상보다 더 빠르게 시작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는 2018년 9월 제3차 남북정상회담 차 방북길에 올랐던 경제인 특별대표단 기업을 대상으로 통일부가 초청해 성사된 것이다. 통일부 수장이 대기업 고위관계자들과 공개 회동을 갖는 것부터 이례적인 행보다. 북미 뿐만 아니라 남북 관계마저 수개월째 꽁꽁 얼어붙은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동시다발적으로 대북 협력 의제를 띄우고 나선 것이다.
한국일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5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20차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뉴시스 조선중앙TV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이 장관의 광폭 행보는 일단 조 바이든 정부 출범으로 미국의 대북 정책이 일시적인 공백기를 맞는 상황에서 한반도 정세를 적극 관리하겠다는 성격이 없지 않다. 정부 소식통은 "바이든 정부가 대북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북한이 과거처럼 미국의 의중을 떠보기 위해 도발에 나서면 북핵 문제가 악순환을 거듭할 수 있다"며 "남북간 선제적인 협력으로 선순환을 만들자는 취지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장관이 북한에 냉랭한 국내 여론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너무 앞서 나간 발언을 쏟아내는 등 국민 정서와는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우리 혈세 170억원을 들인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북한에 대한 공분이 아직 가시지 않았고 지난 9월 발생한 ‘서해 공무원 피격 사망 사건’도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았다. 우리 측 공동조사 제안에 불응한 북한은 “주민을 제대로 관리 못한 남측에 우선적 책임이 있다”며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였다.

특히 이 장관이 재계 인사와 회동해 남북 경협을 언급한 이날은 연평도 포격 10주기다. 남북 경협이 당장 시급한 현안이 아닌데도 굳이 이날을 택해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었냐는 지적이다. 이 장관이 앞서 거론한 북한과의 백신 나누기도 우리 정부가 백신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온 것이어서 시기적으로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날 재계 간담회에 참석한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은 “지난 2년간 남북관계가 안정적으로 발전하지 못해 저희도 안타까운 마음”이라면서도 “기업은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한다”는 뼈있는 말을 던지기도 했다.

일각에선 여당 원내대표 출신 실세 장관으로서 정치적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다보니 성급해진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내세운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만큼, 그 사이에 남북 관계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이 작용했을 것이란 얘기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