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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사설] 해외 사례 멋대로 왜곡, 사실까지 무시하는 ‘입맛대로 국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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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이 반대하는 상법 개정안의 ‘3% 룰’에 대해 법원행정처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사실상 반대 의견을 밝혔다고 한다. ‘3% 룰’은 기업의 감사위원 선임 때 최대 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제도다. 정부·여당이 밀어붙이는 반(反)기업 법안에 대해 김명수 대법원장 등 친정권 성향 대법관이 주를 이루는 대법원조차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법무부는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면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미국이나 독일, 일본 등 국제 표준을 달리는 나라 어디에도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하는 곳은 없다. 보유한 지분만큼 표를 행사한다는 원칙을 기본적으로 인정한다.

그러자 일부 시민 단체와 학자는 ‘3% 룰’을 뒷받침하는 나라로 이스라엘과 이탈리아를 들고나왔다. 이 두 나라는 사외 이사 선출 때 대주주 의결권을 아예 ‘0%’로 제한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탈리아가 국제 표준인지 의문이나 이마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스라엘은 대주주도 참여해 다수결로 사외 이사를 선임하되 소수 주주의 과반 찬성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탈리아 역시 소수 주주들이 추천한 여러 후보 가운데 대주주 지지도 받는 후보를 선출하는 제도다. 대주주 의결권을 강제적으로 제한하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조선일보

서울 시내 아파트와 건물들의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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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이런 식이다. 정부와 여당이 일방적으로 정책 방향을 정하면 국책 연구 기관, 친정부 시민 단체나 전문가 집단이 해외 사례를 견강부회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국토연구원은 주택 공시 가격 현실화율을 90%까지 높이겠다는 정부 계획을 뒷받침하려 대만을 모범 사례로 꼽았다. 대만이 2005년 68%이던 공시 가격을 2017년 90%까지 올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만은 현실화율 90% 공시가는 집 팔 때 양도소득세에만 적용하고, 거주 주택의 재산세엔 20% 현실화율만 반영해 산정한다. 이런 사실을 쏙 빼고 마치 대만 보유세도 90% 현실화 가격에 매겨지는 것처럼 오도하고 있다.

다주택자 취득세를 대폭 올리면서 민주당 대표는 “싱가포르는 2주택자부터 취득세를 12% 이상 부과한다”고 했다. 정말 배워야 할 것은 보지 않는다. 싱가포르는 3년 이내 단기 매도만 아니면 주택 양도세가 없다. 싱가포르 정부가 꾸준히 주택을 공급하고, 공공 주택 대출을 90%까지 해준다는 데에도 입을 다문다.

해외 사례를 연구하는 건 해당 정책을 먼저 도입한 나라의 장단점을 따져보면서 타산지석으로 삼자는 취지에서다. 문재인 정부는 정반대로 이용한다. 현실을 무시한 이념 과잉의 무리한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이를 정당화하려고 필요한 사례만 골라내다 보니 사실 왜곡이 상습적으로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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