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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헌의 체인지(替認知·Change)] 혜민 스님의 ‘풀(Full)소유’ 논란과 배경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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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민 스님은 지난 7일 한 방송에서 남산이 한눈에 보이는 서울 종로구 자택을 공개했다. /'온앤오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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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에 내몰린 국민, 상대적 박탈감에 분노 표출 한몫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석가는 불교 경전 ‘수타니파타’에서 제자에게 "무소유에 의지하면서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으로써 번뇌의 흐름을 건너라. 모든 욕망을 버리고 의혹에서 벗어나 집착의 소멸을 밤낮으로 살피라"고 가르친다. 수타니파타는 불교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10년 입적한 법정 스님의 번역본이 대중에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법정 스님이 1976년 펴낸 대표적 수필집 ‘무소유’도 여기서 따왔다. 그는 무소유를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그리워한 것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한 부자들이었다. 김영한 씨가 대표적이다. 그는 법정 스님의 수필집 ‘무소유’를 읽고 서울 성북동 7천여 평의 땅에 지어 운영하던 대원각을 절로 만들어 달라며 1997년 법정 스님에게 기부했다. 길상사다.

방송 저술 강연 등 활발한 활동으로 1백만 명이 넘는 팔로워까지 갖고 있는 혜민 스님은 무소유를 약간 다르게 해석한다. 2011년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비판해 화제가 됐다.

혜민 스님은 "어떤 것을 우리가 가지고 있어도 그런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거나 변한다. 무상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런 것들을 소유하는 것이다"라고 무소유를 해석한다. 그는 당시 SNS를 통해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책 인세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법정 스님은 30여권의 책을 펴내 받은 인세 수십억 원을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베풀었다.

인세가 들어오는 족족 기부해 돈이 없어 서울삼성병원에서 폐암치료를 받은 뒤 병원비 6000여만 원을 고(故)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씨가 대납한 사실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법정 스님의 수필집 ‘무소유’는 1976년에 나왔다. 그가 평생을 걸쳐 실천한 무소유의 정신이 그 책에 담겼다. 그는 입적하면서 "내 이름으로 출판된 책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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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은 생전에 은거하면서도 무소유를 통해 돈과 권력이면 다 된다는 조류와는 다른 삶의 길을 끊임없이 제시했다./더팩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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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한 것은 갖지 않겠다’는 그의 무소유 연장선이다. 법정 스님이 생전에 은거하면서도 무소유를 통해 돈과 권력이면 다 된다는 조류와는 다른 삶의 길을 끊임없이 제시했다.

혜민 스님도 법정 스님처럼 저술과 강연 등으로 대중에 추앙받는 불교계 인사다. 다만 무소유에 대한 생각이 달랐기 때문일까? 한 매체는 지난 13일 혜민 스님이 본인 명의로 구입한 삼청동 단독주택을 자신이 대표인 선원에 팔아 1억 원의 시세 차익을 남겼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지난 7일 혜민 스님이 tvn ‘온앤오프’ 프로그램에서 서울 남산이 한 눈에 보이는 삼청동 자택을 공개한 직후다.

그는 tvn 방송 이후 건물주라는 비난과 시세차익 논란에 휩싸였다. 무소유가 아닌 ‘풀(Full)소유'라는 비아냥도 들었다. 그는 "건물주가 아니다. 세들어 살고 있다"고 해명했다.

푸른 눈의 승려로 대중에 널리 알려진 현각 스님까지 지난 15일 페이스북에서 혜민 스님의 행적들을 언급하며 맹비난했다. 혜민 스님을 빗대어 "속지마! 연예인일 뿐"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전혀 모르는 도둑놈" "부처님의 가르침을 팔아먹는, 지옥으로 가고 있는 기생충" "단지 사업가, 배우일 뿐" "진정으로 참선했던 경험이 전혀 없다" 등의 온갖 막말을 쏟아냈다.

그러자 혜민스님은 "승려의 본분을 다하지 못한 저의 잘못이 크다. 이번 일로 상처받고 실망하신 모든 분께 참회한다"며 활동정지를 선언했다.

현각 스님은 16일 다시 페이스북을 통해 돌연 "아우님, 혜민 스님과 이른 아침 통화했다"며 "사랑과 존중, 깊은 감사로 가득 찬 70분간의 통화였다"고 말했다. "그의 순수한 마음을 존경한다"며 비판 글을 삭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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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정치'로 명성을 떨친 대원각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과 연이 닿으면서 사찰 길상사로 변신했다./더팩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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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각 스님은 차치하더라도 적지 않은 대중들의 비판은 혜민 스님의 삶이 무소유가 아니라고 판단한 데서 기인한 것 같다. 그래서 위로와 위안으로 다가온 그동안 그의 설법과 강연도 가식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렇다고 자본주의 체제에서 스님이라도 소유가 꼭 비난 받을 일은 아니다.

학자들은 소유의 욕망은 인간 특유의 본성으로 자기 정체성 확립을 위해 필수적인 본능이라고 말한다. 미국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저서에서 "사람의 자아(自我)는 자신의 소유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 몸이나 영혼뿐만 아니라 옷, 집, 아내와 자식들, 조상과 친구, 명성, 직업, 은행 예금 따위를 모두 합친 것"이라고 정의했다. 소유한 것이 그가 누구인가를 설명해준다는 의미다.

정부의 잇딴 부동산 대책과 규제에도 떨어지지 않는 집값에서 혜민 스님의 논란에 대한 궁금증의 실마리를 찾는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서민들은 주택 ‘무소유’만 해도 서러운데 최근 주택난에 전세난까지 겹치는 설상가상(雪上加霜)의 형국을 맞고 있다.

무소유의 스님마저 ‘전망좋은 집’을 소유(?)하는 현실이 밉기도 할 것이다. ‘선택이 아닌 어쩔수 없는 필수’가 되어가는 주택 ‘무소유’에 대한 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에 따른 분노라고 믿고 싶다. 정부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비판의 또 다른 표출로 보인다.

정부는 국민을 법정 스님이나 혜민 스님으로 오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여 무소유가 부동산 대책에도 ‘정답’이라고 믿는 것은 결코 아니길 빈다. 제대로 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bienn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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