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아프리카 레소토 첫 한인 선교사…아내와 '엔젤스 홈' 꾸려 에이즈 고아 돌봐
2년 전부터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서 열악한 재소자 지원도
아프리카 '에이즈 고아' 돌보는 노록수 선교사 |
(서울=연합뉴스) 양정우 기자 = 남부 아프리카에서 20년 넘게 선교활동을 하며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으로 부모를 잃거나 버림받은 아이들을 돌봐온 목회자가 있어 눈길을 끈다.
선교사 노록수(61) 씨가 남부 아프리카로 처음 건너갔을 때는 199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둘러싸인 작은 나라 레소토 왕국과 국경을 접한 남아공 픽스버그에 자리를 잡은 노씨는 레소토 수도 마세루에 교회를 개척하며 활동을 폈다.
당시만 해도 남부 아프리카 지역에는 한인 선교사가 몇 명 되지 않았다. 레소토에는 한인 선교사가 한 명도 없던 시절이라 먼 곳에서 온 자신을 현지인들은 생소하게 바라봤던 것으로 그는 기억했다.
남부 아프리카에는 약 4천만 명에 달하는 전 세계 에이즈 감염자의 4분의 3가량이 집중돼 있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레소토도 예외가 아니다. 가난과 기아, 열악한 의료제도 탓이다.
최근 서울 용산역 한 카페에서 만난 노 선교사는 2000년 마뿌시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마뿌시는 부모로부터 에이즈가 수직 감염된 상태로 태어났으나 마땅히 돌볼 만한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언제 죽어도 누군가는 돌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에 노씨는 작은 천사를 가정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한다.
그렇게 노 선교사가 가족으로 맞은 아이들은 해를 거듭하며 늘어났고, 어느새 12명이라는 대가족으로 불어났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동안 노씨의 가정은 '엔젤스 홈(Angel's Home)'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그간 별 탈 없이 아이들을 키우고 교육하는 데 20년을 보내기까지 아내 김은혜 씨의 역할이 컸다. 물론 지역 곳곳에서 보내온 지원과 격려, 한국에서 노씨에게 보내온 개인 후원도 잊을 수 없는 부분이다.
12명 중 일부 아이들은 엔젤스 홈에 올 때 에이즈 감염으로 건강 상태가 우려됐으나 함께 웃고, 울며 지내는 동안 더는 건강이 악화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20년간 아이들과 함께해온 시간을 두고 "하나님의 기적이었다"고 반겼다.
그러면서도 때때로 말썽을 일으켰던 아이들 생각에 "좀 더 잘 키웠어야 했다"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엔젤스 홈에서 자란 아이 중 2명은 한국으로 건너와 충남 천안 백석대에서 보건 행정 등을 공부하고 있다.
그는 "아이들에게 한국에 와서 공부하는 것은 하나의 꿈"이라며 "한국에 무척이나 오고 싶어한다"며 아이들의 활짝 웃는 영상을 보여줬다.
노 선교사는 2년 전부터는 아프리카 인도양의 섬나라인 마다가스카르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 25년 전 레소토에 한인 선교사로 처음 왔던 것처럼 마다가스카르에도 첫 한인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선교활동을 개시했다.
노씨는 마다가스카르에서 열악한 상황에 놓인 재소자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현지 교도소에 예배당을 만들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고 전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재소자들이 밤에는 화장실을 갈 수 없을 정도로 시설이 열악하더라고요. 마다가스카르에서도 이들과 함께하며 선교 활동을 하고자 해요."
노 선교사는 지난해 12월 일시 귀국했으나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리면서 돌아가는 길이 한동안 막혔다. 다행히 이전보다 출입국 조치가 완화되며 내달 선교지로 돌아가게 된다.
그는 "남부 아프리카의 코로나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며 감염병 통제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그러면서 "마스크를 한 보따리 준비했다"며 아프리카에서의 선교활동을 멈추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edd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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