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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해병대 첫 공격헬기, 국산을 쓸까 미국산을 살까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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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해병대 상륙공격헬기 사업에서 제안하는 마린온 무장형. 세계일보 자료사진


“해병대가 요구한 것은 공격 헬기다. 일부에서는 기동 헬기에 무장을 장착한 헬기를 얘기하는데, 저희는 기동성과 생존성이 우수한 헬기, 마린온에 무장을 장착한 헬기가 아닌, 공격 헬기로서 운용되는 헬기를 원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국회 국방위원회 종합감사장. 이승도 해병대사령관은 ‘상륙공격헬기로 어떤 기종을 원하는가’를 묻는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 질의에 “공격헬기다운 헬기를 원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만든 해병대 상륙기동헬기 마린온에 무장을 추가한 기종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이를 거부하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이 사령관의 발언은 상당한 파장을 낳았다.

이 사령관의 발언이 공개된 시점에서 방위사업청은 ‘상륙공격헬기 사업분석’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내년 3월까지 진행될 연구용역을 통해 방사청은 무장헬기와 공격헬기의 개념을 명확히 하고, 비용 및 효과와 전력화 시기 충족 여부 등을 점검하게 된다.

‘선행연구→사업추진기본전략 수립→사업 타당성 조사→사업 공모→협상 및 기종 선정’이라는 통상적 절차 대신 선행연구 직후 사업분석을 실시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상륙공격헬기 24대를 2020년대 중반까지 도입하는 것을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 상황을 방사청이 의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해병대 “마린온 무장형은 안돼”

방사청이 발주한 사업분석 연구용역 전망은 엇갈린다. “마린온 무장형도 문제없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있는 반면, “마린온 무장형은 별도의 공격헬기를 구매하는 것보다 부작용이 많다는 결론이 내려질 수 있다”는 추정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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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병대 소속 AH-1Z 공격헬기가 비행을 하고 있다. 미 해병대 제공


마린온 무장형에 대한 해병대 입장은 부정적이다. 군 소식통은 “해병대 내에서는 ‘마린온 무장형 살 예산 있으면 다른 사업에 쓰는 게 더 낫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전했다.

이 사령관의 ‘공격헬기다운 헬기’ 발언처럼 해병대는 개발 당시부터 공격용으로 만들어진 헬기를 원하는 눈치다. 수송헬기와 달리 공격헬기는 차원이 다른 무기라는 것이다.

유력하게 거론되는 기종은 AH-1Z다. 미 해병대가 2010년부터 200여 대를 운용중인 공격헬기로, 코브라 계열의 최종판이다. 강습상륙함에서 뜨고 내릴 수 있는 기종으로 미 해병대의 상륙작전과 기동전을 공중에서 지원한다. 헬파이어 미사일 16발과 사이드와인더 공대공미사일 2발을 장착한다.

모래와 소금기가 많은, 열악한 상륙작전 환경에서도 무리 없이 작동할 수 있도록 정비 용이성과 신뢰성 향상에 많은 신경을 쓴 기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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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병대 AH-1Z 공격헬기 편대가 강습상륙함 박서함 갑판에서 이륙하고 있다. 미 해병대 제공


미 해병대와 연합작전을 수행하는 한국 해병대로서는 미 해병대와 동일한 기종을 쓰면 정비나 상륙함 이착함, 작전 등에서 상호운용성 증대가 용이하다.

항공전력 운영경험이 부족한 해병대로서는 미 해병대의 노하우를 확보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한 군 소식통의 평가처럼 ‘미 해병대에 묻어갈 수 있는’ 셈이다. AH-1Z를 선호하는 이유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문제는 미 해병대에서 AH-1Z의 앞날이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최근 공개된 미 해병대의 혁신 계획인 ‘포스 디자인 2030’에 따르면, 공격헬기 전력은 감축되고 무인기가 증강된다. AH-1Z의 최대 사용자인 미 해병대가 운용 규모를 줄인다면, 한국 해병대로서는 유지보수비용 상승에 대한 부담이 높아진다.

AH-64E나 UH-60처럼 미국 외에 다른 나라에서도 널리 쓰이는 기종이라면 부품 수급 등에서 문제 해결이 쉽지만, AH-1Z는 미 해병대를 제외하면 대규모로 운용되는 곳이 없다.

한국 해병대가 2020년대 중후반쯤 AH-1Z를 전력화했을 때, 대대적인 혁신을 추진한 미 해병대가 AH-1Z보다 드론 또는 장거리 로켓을 일선에서 더 많이 사용한다면 전시 상호 정비나 무장 교차 탑재 등을 포함한 상호운용성은 그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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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해병대에 배치된 마린온 상륙기동헬기들이 시험비행을 위해 이륙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군요구성능(ROC)을 충족하고 운영유지비도 해외 도입기종보다 저렴한 마린온 무장형이 더 낫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마린온 무장형은 원형인 마린온의 추락사고가 불안감을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마린온보다 한 차원 높은 상륙공격헬기가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마린온의 원조 격인 수리온이 기체 진동 문제로 논란을 빚은 상황에서 미사일과 기관포 등을 장착한 마린온 무장형도 진동이 심각한 수준에 도달할 위험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방사청이 ‘상륙기동헬기 사업분석’ 연구용역에서 마린온의 기체 개조와 무장 운용에 따른 진동 발생이 기체 수명에 미치는 영향 분석을 포함한 것도 이같은 지적을 의식했다는 분석이다.

◆10년 후에도 상륙공격헬기가 쓸모 있을까

일각에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기관포와 미사일을 장착한 채 적진으로 날아가는 기존 방식의 공격헬기가 미래 전장에서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 것인지 미지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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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전쟁에 참가했던 미 육군 AH-64D 공격헬기가 추락해 파손된 채 방치되어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라크전쟁이 한창이던 2003년 3월 23일 밤, 미군은 바그다드 남부에 있던 이라크 공화국수비대를 소탕하기 위해 AH-64 ‘아파치’ 공격헬기 32대를 동원했다. 에이태킴스(ATACMS) 미사일로 사전 공격을 한 뒤 투입된 AH-64는 30㎜ 기관포와 헬파이어 대전차미사일, 롱보우레이더로 공화국수비대를 박살낼 기세였다.

하지만 그런 기세도 잠시, 지상에서 수천발의 총탄이 갑자기 쏟아졌다. 세상에서 가장 값싸고 구하기 쉬운 무기인 AK-47 소총에서 발사된 총탄들이 AH-64를 강타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AH-64 32대 중 31대가 손상을 입었다. 1대는 추락해 조종사 2명이 포로가 됐다. 작전은 실패했다. AH-64는 1999년 코소보 전쟁 당시 알바니아에 배치됐으나 세르비아 방공망을 뚫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로 실전에 투입되지 못했다.

이라크전쟁의 사례는 한반도에서도 반복될 우려가 있다. 매복한 북한군이 AK-47로 공격을 감행하면 공격헬기들은 작전 수행이 불가능하다. 군 소식통은 “워게임을 해보면 북쪽으로 날아간 공격헬기 중 절반 이상은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상륙공격헬기가 제대로 활동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주목받는 개념이 유인 무인 복합 체계다. 공격헬기에 드론을 탑재해 먼 거리에서 적을 포착하고 공격하는 개념이다. 헬파이어 미사일 사거리(8㎞)보다 더 멀리서 공격이 가능해 생존성을 높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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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육군 장병들이 훈련 도중 드론을 이용한 작전의 효용성을 점검하기 위해 드론을 조작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미국에서는 UH-60에서 다수의 드론을 띄워 정찰이나 통신중계, 전자전 등을 실시하는 개념과 더불어 AH-64E에서 드론을 운용하는 방안 등이 연구되고 있다. 헬기 조종사는 지속적으로 감시 또는 통제하지 않아도 다수의 드론을 활용해 다양한 임무를 수행한다. 무인기에서 포착한 영상을 데이터링크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받아 전장상황을 파악하는 개념은 이미 실현단계에 있다.

국내에서는 육군과 해병대가 드론봇(드론+로봇) 전투체계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국내 방산업계에서도 유인 무인 복합체계에 대한 연구가 진행중이다. 하지만 해병대 상륙공격헬기가 갖고 있는 한계점을 무인 기술로 돌파하려는 시도는 미약한 편이다.

2030년대 상륙작전 환경에 부합하는 공격헬기를 확보하기 위해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하지만 기존에 운용중인 무인기조차 추락과 결함이 잦은 상황에서 유인헬기와 무인기 복합 운용이 제대로 되겠느냐는 회의적 견해도 나온다. 복합체계를 구축한다 해도 무인기의 활용 분야와 추진체계 등에 대한 논란이 장기화되면 전력화 시기를 맞추지 못할 우려도 있다.

이에 따라 상륙공격헬기 사업 추진 방향을 두고 방사청과 군 당국의 고심이 깊어질 전망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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