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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말로 “재즈로 편곡하고 싶습니다”…송창식 “녹음할 때 재밌겠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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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인터뷰] ‘송창식 송북’ 낸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재즈 질감의 원곡에 숟가락만 얹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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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식 노래 22곡을 재즈로 편곡해 다시 부른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 /사진제공=JNH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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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식의 노래를 재해석한다는 것은 답이 없는 문제를 푸는 것과 같다. 정답이 없지만, 문제는 ‘잘’ 풀어야 한다. 그래야만 송창식 노래를 부를 근사한 자격을 갖출 수 있다. 송창식의 노래는 정의하기 어렵다. 트로트? 클래식? 팝? 재즈? 발라드? 그 어떤 경계에 서 있지 않은 장르의 무한성 때문에 ‘재해석’이 비교적 자유롭지만, ‘결과물’에 대한 두려움 역시 각오해야 한다.

1960년대 이전의 가요를 ‘동백아가씨’(2010년)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2년 뒤 ‘말로 싱스 배호’(2012년)로 우리 전통 가요를 재해석한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가 3번째 전통 가요 작업의 주제로 ‘송창식’을 선택했다.

아무도 쉽사리 접근하지 못했던 거장 송창식을 처음 찾은 말로는 “(선생님) 곡을 재즈로 편곡해 불러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을 때, 송창식은 마치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재즈가 원래 그렇지. 다 바꾸겠지. 말로가 해주면 더 재밌을 것 같은데…”하고 흔쾌히 수락했다.

그렇게 말로가 재해석한(리메이크) 노래 22곡이 ‘송창식 송북’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했다. 최근 인터뷰에서 말로는 “그의 가사를 보고 재해석하지 않으면 ‘가요의 재즈화’를 꿈꾸는 저로서 직무유기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보통 가수들은 ‘노래’를 보고 리메이크 여부를 결정하는 데, 저는 ‘악보’를 넘기면서 골라요. 22곡 중 아는 노래는 10곡 정도였는데, 노래는 몰라도 악보에 적힌 가사를 보고 고른 노래가 대부분이었어요.”

노래를 고른 뒤 연주팀과 연습 삼아 부를 땐 한 곡당 10분이 넘어가기 일쑤였다. 정통 재즈로 미친 듯이 즐기다 보니 예술의 경지 너머로 나아간 것이다. 전열을 가다듬고 ‘대중적’ 콘셉트에 맞춰 ‘재즈적’ 양념을 뿌려 1년간 ‘숙성’한 뒤 꺼냈더니, 결과물들이 꽤 맛있고 멋있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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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의 재즈화'를 꿈꾸는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는 최근 발매한 '송창식 송북'에서 최대한 절제를 통해 원곡의 질감을 살리는 데 공을 들였다. /사진제공=JNH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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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불러’는 탱고, ‘피리 부는 사나이’는 스윙, ‘선운사’는 보사노바 등 재즈의 곁가지 장르들이 대거 동원되면서 듣는 맛도 부드럽고 달콤해졌다. ‘가나다라’ 같은 곡은 제목의 모음 7자를 상징하듯 7박자로 편곡한 ‘센스’가 돋보였고, ‘고래 사냥’은 원곡의 자유로운 박자를 기리듯 실험적 사운드를 투영한 것이 독특했다.

“사실 제가 잘 아는 노래들을 재해석하기가 가장 힘들었어요. 선생님 목소리를 기억하니까, 어떻게 변별력을 주고 소화해야 하는지 많은 고민의 시간이 필요했죠. 그런 식으로 편곡에 편곡을 거치니까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더라고요.”

한편으로 다행인 것은 송창식 노래 대부분이 재즈로 변환할 때 크게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재즈 기운’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트로트 선율이 있지만, 선생님이 부를 땐 그런 느낌이 없어요. 되레 재즈의 스윙이랑 가깝죠. 그래서 무난하게 편곡할 수 있었어요. ‘사랑이야’도 그래요. 가요의 발라드는 박자를 정확히 지켜서 부르는데, 이 곡은 흘러가는 리듬 위에 얹어 부르는 재즈 스타일 방식을 고수해요. 알고 보니, 선생님 발라드 노래 대부분이 그런 방식으로 진행되더라고요. 선생님 마음속에도 그렇게 흘러가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저도 그 부분을 최대한 지켜드리고 싶었어요.”

‘꽃, 새, 눈물’은 송창식이 젊었을 때 투명하고 낭랑한 목소리에 기타 한 대로 부른 노래인데, 말로는 “나는 되게 어둡고 질박한 목소리를 가져서 그런 느낌을 낼 수 없었다”며 “그래서 이 노래는 ‘감정’으로 밀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기타 대신 피아노로 재즈의 본성을 드러낸 곡”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나의 기타 이야기’ 같은 가슴 설레는 포크 발라드는 듀엣으로 원곡의 감성을 그대로 이어받으면서 약간의 변주가 주는 재미있는 구성까지 맛볼 수 있다.

말로는 이 방대한 곡을 프로듀싱하고 노래하면서 단 하나의 가치만은 지키려고 애썼다. 바로 ‘절제’다. 말로는 어떤 곡에서도 화려한 가창의 기술을 선보이거나 보컬이 전면에 나서는 특정 마디를 내세우지 않는다. 악기도 많이 줄였다. 악기가 많을 때 좋은 연주자의 생각이 막히는 한계에서도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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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보컬리스트 말로. /사진제공=JNH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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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들이 재해석한 제 노래를 듣고 ‘원곡의 질감을 놓치지 않았다’고 반응하면 기분이 좋아요. 선생님의 노래 자체가 그렇게 크게 변화를 줄 만큼 해석의 의미가 없거든요. 이 노래를 처음 듣는 사람에게 보컬 기술로 승부를 걸면 되레 듣기 싫은 노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재즈에서 중요한 솔로 (연주) 부분도 다 자르고, 가창의 기술도 줄이는 최대한의 절제를 통해 친근감을 확보하려고 했어요.”

말로가 생각하는 송창식의 가사는 깊고 굵직하고 찌른다. 그 고급스러운 내용물에 재즈의 어려운 코드들이 어울리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었던 셈. 말로는 “원래 재즈의 속성이 강한 곡들인데, 내가 숟가락을 얹었을 뿐”이라고 했다.

이 음반은 송창식에 대한 헌정음반이지만, 송창식이 1983년 이후 녹음한 적 없는 ‘우리는’을 37년 만에 말로와 듀엣으로 다시 부르면서 음반의 가치를 되새겼다. 굳이 정의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우리에게 좋은 음반 한 장이 ‘선물’처럼 다가왔을 뿐이다.

김고금평 기자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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