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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아픈 몸보다 정신 나약해지는 것 참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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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최고령 프로축구선수 이동국, 내달 1일 리그 최종전 끝으로 은퇴

스포츠에서 ‘현역 최고령’이란 말은 나이에 상관없이 자기 능력을 꾸준히 인정받은 베테랑만이 들을 수 있는 찬사다. 대한체육회가 지난해 은퇴한 운동선수 8251명을 조사한 결과, 평균 은퇴 나이가 23세에 불과할 만큼, 스포츠계는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세계다.

1979년 4월 29일생, 만 41세가 된 프로축구 전북 현대의 공격수 이동국은 올 시즌 현역 최고령이란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도록 그라운드를 누볐다. 출전 시간은 짧아졌지만 리그 10경기(선발 3경기) 4골로 녹슬지 않은 기량을 보여줬다. 그는 다음 달 1일 대구FC와의 리그 최종전을 끝으로 은퇴, 현역 최고령 타이틀을 내려놓는다.

조선일보

프로축구 전북 현대 공격수 이동국이 2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기자회견장에 장식된 숫자 ‘20’은 이동국의 등 번호를 의미한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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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부상으로) 좋은 몸 상태가 아닌데도 욕심 내서 (경기에) 들어가려고 했고, 사소한 것들도 서운해했어요. 몸이 아픈 것은 이겨낼 수 있지만 정신이 나약해지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2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기자회견을 연 이동국은 은퇴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1998년 포항 스틸러스에서 프로에 데뷔한 이동국은 광주 상무, 성남 일화, 전북에서 통산 547경기에 출전하며 K리그 역대 최다골(228골)을 기록했다. 태극 마크를 달고도 굵은 족적을 남겼다. 월드컵에 두 차례(1998·2010) 출전하는 등 A매치(국가대항전)에 통산 105번(역대 10위) 출전해 33골(역대 공동 4위)을 넣었다.

이동국은 K리그 37년 역사상 첫 40대 필드 플레이어(골키퍼 제외)다. 역대 최고령 출전자는 45세 5개월 15일의 골키퍼 김병지(은퇴). 이동국은 롱런 비결을 묻자 “멀리 보지 않고 바로 앞 한 경기만 바라보면서, 후배들 앞에서 솔선수범하며 생활하다 보니 내 나이를 잊어버렸다”며 “지금도 (남들이) 내 나이를 말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고 했다. 후배들을 향해선 “프로 선수라는 직업은 선후배를 떠나 경쟁이다. 남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장점을 만들면 프로에서 롱런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프로생활 23년 동안 ‘라이언 킹'(별명)으로 사랑받았지만, 좌절의 순간도 적지 않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지켜만 봐야 했고, 2006년 독일월드컵 본선을 앞두고는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짐을 싸야만 했다. 독일과 잉글랜드 프로리그에 도전했지만, 제 기량을 펼치지 못하고 귀국해야 했다.

이동국은 “2002년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포함되지 않았을 때의 기억이 오래 운동을 할 수 있게 한 보약이 된 것 같다. 잊지 못할 기억”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좌절할 때마다, 나보다 더 크게 좌절한 사람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힘든 시간을 이겨냈다”고 털어놨다.

기자회견 내내 담담히 심경을 말하던 이동국도 부모님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울컥 목이 메었다. 그리고 이내 눈물을 보였다. 그는 “어젯밤 늦게까지 부모님과 대화를 나눴는데, 30년 넘게 축구선수 이동국과 함께하신 아빠도 은퇴하신다고 하셨다. 그 말씀에 가슴이 찡했다”고 말했다.

현재 리그 1위 전북은 11월 1일 대구전에서 최소 무승부만 해도 K리그 최초로 4연패(連覇)를 달성한다. 인생 마지막 경기에 대한 각오를 묻자 그의 느슨했던 눈빛에 순간 날이 섰다. 이동국은 “마지막 경기에서 우승컵을 들고 은퇴하는 선수가 과연 몇 명이나 되겠나. 마지막까지 골 넣는 스트라이커로 남겠다”고 했다.

[주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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