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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담담했던 이동국, 부모님 이야기에 눈물 "같이 은퇴하신다고 하셔서 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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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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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전주, 이성필 기자 이강유 영상 기자] "아직은 경쟁력이 있는 상황에서 은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이언킹' 이동국(41, 전북 현대)은 좋은 기억을 안고 떠나겠다고 밝혔다. 자신에게 드러워졌던 희비는 기억속으로 다 지우고 가겠다고 전했다. 평생의 동반자이자 스승이었던 아버지 이야기에는 눈물도 쏟았다.

이동국은 2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열고 1998년 프로 생활을 시작해 올해까지 23년 동안 겪었던 일들을 정리했다. 오는 11월 1일 대구FC와 K리그 27라운드가 최종전이다.

그는 "만감이 교차한다. 서운함 반이 있고 기대되는 것도 있다. 주위에서 많은 전화를 하면서 '1년 더 해도 될 것 같은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은 경쟁력이 있는 상황에서 은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분을 이런 자리가 아니면 언제 다시 보나 싶다"라고 말했다.

가족 이야기, 특히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이동국은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축구 입문부터 지금까지 동반자이자 스승이었기에 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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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이동국의 은퇴 기자회견 일문일답

-현역 은퇴 소감은

"많은 분이 제 부상 상태 때문에 그만 두는 것 아니냐고 하더라. 현재 컨디션은 좋고 완전히 회복했다. 부상으로 관두는 것은 아니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는 생각으로 지내왔다. 다만, 이번 장기 부상으로 조급해하는 저 자신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다. 예전에는 부상이 있어도 긍정적인 생각으로 최고의 몸을 만들었다. 이번에는 부상을 당하면서 하루하루가 조급하고 제게 있는 시간이 얼마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있었다. 부상이 아닌데도 욕심내서 들어가려고 했다. 무엇인가 불안한 모습이 있었다. 사소한 것에도 서운해 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은퇴를 생각했다. 몸이 아픈 것은 참아도 정신이 나약한 것을 참기 어려웠다."

-오랫동안 진지하게 생각해 은퇴를 결정했는데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나

"가장 큰 결심 이유는 부상 당시 나약해진 저 자신을 보고 많이 생각했다. 늘 긍정적이고 언제나 좋은 생각만 하고 있던 사람이다. 다만, 나이가 든 후 조급해 하는 것을 발견하고 더는 운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제2의 삶이 있으니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자고 아내와 이야기했다. 이제는 그만해도 될 때가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울산전 전에 구단, 감독, 코칭스태프와 다 이야기했다. 울산전이 중요한 경기라 지나고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 맞다고 생각했고 끝난 다음 날 구단과 상의하고 결정했다."

-지금 느낌은

"만감이 교차한다. 서운함 반이 있고ㅓ 기대되는 것도 있다. 주위에서 많은 전화로 1년 더 해도 될 것 같은데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은 경쟁력이 있는 상황에서 은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가장 자신의 최고의 순간을 다섯 가지만 꼽는다면.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도

"몇 가지 꼽는다고 하면 프로 유니폼을 처음 받았던 당시가 기억난다. 등록 되지 않은 33번의 유니폼을 포함해 고등학생인 제게 이름이 박힌 유니폼 특별 제작해서 선물로 줬을때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며칠 동안 입고 잤다. 당장 생각나는 것은 2009년 전북에 와서 첫 우승컵 들었을때가 축구 인생에 가장 화려했던 순간이었다."

"힘들었던 시간은 아무래도 2002년 월드컵 뛰지 못했했을때다. 기억하면서 살다보니 지금까지 운동을 할 수 있었던 보약이지 않았나 싶다. 잊지 못할 기억이다. 기억이 나고 싶지 않은 순간보다 더 좋게 하려고 노력했다. 2006년 월드컵 두 달 남기고 다쳤다. 당시 모든 것을 다 보여줘서 2002년의 실패를 보이지 않으려 준비했지만, 부상으로 뛰지 못해서 아쉬웠다."

-수 많은 골을 넣었지만 기억나는 골이 있나

"한 골 한 골 다 소중한 골이다. 많은 분이 생각하는 골이 김상식 코치와 같이 뛴 (2004년) 독일전이다. 그 킥으로 상대가 실수하고 발리슛으로 골을 넣었을때가 기억난다. 맞는 순간 찰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 난다."

-최강희 감독이 지금까지 뛰게 한 원동력 같다

"보통 은퇴 시 쓸쓸히 떠나는 선수가 많았다. 이렇게 자리를 만들어주신 것 같다. 2009년 전북 입단하면서 전북을 같이 일궈냈다고 생각한다. 그 중에는 감독님이 갖고 있던, 제가 몰랐던 기량을 꺼내주셨다. 다시 인정 받고 사랑받는 계기였다. 항상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30대 중반을 넘으면서 매년 은퇴 이야기가 나왔지만, 잘 견뎠다. 원동력이 무엇인가

"선수들 단체로 있는 모바일 메신저 방에 은퇴한다고 올리니 믿지 않더라. 5~6년 정도 후배들 앞에서 올해가 마지막이다고 했다. 현실로 이뤄지지 몰랐다. 멀리 내다보지 않고 지금 앞의 경기만 신경썼던 것이 도움이 됐다. 나이가 들면서 노장이니까 이것을 못한다가 아니라 먼저 앞에 서면서 하니 어느덧 제 나이를 모르면서 살았고 그렇게 됐다. 지금까지는 나이를 모르고 살았다."
-좌절의 순간도 있었는데 그걸 딛고 오지 않았나

"좌절을 하고 힘들때도 있었자만, 그때마다 저보다 더 큰 좌절을 했던 사람을 기억했다. 그보다 행복하다는 사람으로 프로 생활을 이어왔다, 아무래도 스트레스가 없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 그 힘든 시간마다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겼던 것 같다."

-많은 것을 겪어왔으니 방황도 했었다. 후배들에게 좋은 말을 해준다면

"프로선수라는 직업은 선, 후배를 떠나 동료와의 경쟁이다. 거기서 살아 남는 것이 중요하다. 경쟁을 이겨내려면 특별하게 내세울 장점을 극대화 시켜야 한다. 단점 보완보다 자기가 가진 장점을 사람이 못 따라올 것으로 만들면 프로 생활에서는 롱런을 하지 않을까 싶다."

-많은 기록을 세웠는데 함께한 동료들이 있지 않았나

"23년 동안 같이 했던 선수가 너무 많다. 한참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 김 코치의 경우 2000년도부터 만나서 많은 것을 해줬다. 2009년 전북에 와서 같은 시간 보내면서 보고 배우고 있다. 2009년 선수단이 가장 생각이 많이 난다. 에닝요, 루이스 등 전북이라는 팀이 우승을 바라볼 수 없는 팀에서 똘똘 뭉쳐서 좋은 경기를 했다. 그때 강한 공격진이지 않았나 싶다.

-전북이라는 팀이 어떤 의미로 남을까

"지금 제 고향인 포항에 가면 길 안내 돕는 네비게이션을 켜고 다닌다. 전주에서는 그냥 간다. 제2의 고향과 같다. 얻은 것이 너무 많다.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다. 여기서 10년 넘게 운동하면서 팬들의 함성도 그렇고 어렵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친숙한 사람으로 봐주신다. 묘한 매력이 있다. 항상 가슴 속에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하며 자주 내려올 것 같다."

-마지막 경기가 중요할 것 같다

"우승을 위해 승점을 가져와야 한다. 무엇보다 마지막 경기에서 우승컵을 들고 내려올 수 있다면 정말 멋진 일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기대된다. 보통 은퇴하면 운다. 울지는 말자는 생각을 한다. 슬픔보다 기뻐서 울면 얼마든지 울 수 있다. 마지막 우승 트로피를 들 수 있게 하겠다."

-FA컵 아시아 축구연맹(ACL) 일정이 남았는데 뛸 의사가 있나

"공식적인 것은 대구전으로 마친다. 그 다음날 지도자 자격 A코스에 들어간다. 가까운 곳에서 한다. FA컵 2차전은 의논하려고 한다."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

"1998년 IMF 시기에 입단해서 해외 전지훈련 처음 가본다고 여권도 만들고 그랬는데 국내에서 했다. 공교롭게도 은퇴 시기가 코로나19로 힘든 시기라 아이러니하다. 1998 프랑스월드컵 이후 한국 축구로 보면 가장 큰 이슈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1998년 기억이 크다. 하루하루 기뻤던 순간이었다. 2000년에 베르더 브레멘에 진출해서 성공 못했지만, 다시 도전했다. 2002 한일월드컵에 무조건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동국이 그 자리에 없어서 실망스러웠다. 다시 일어나야겠다. 2003년 이후 군입대를 했고 다시 무장해서 나왔다. 2006년까지 정말 월드컵 그것만 바라보고 뛰었다. 다시 하라고 하면 그렇지 못한다. 그 정도로 땀을 쏟았다. 기억하고 싶지 않다. 2006년에는 힘든 것 다 겪었고 아쉬움이 많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떤 경기력을 보였을까. 그 이후 십자인대 수술하고 정상적으로 1, 2년 더 뛰고 해외에 진출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른 유럽 진출을 2007년에 했다. 성남의 기억은 그렇게 많지 않다. 굳이 꺼낼 필요 없다. 그 이후 전북에 와서 2009년을 시작으로 ACL 포함해 8개 트로피 화려한 시간이었다."

-20번이 이동국 고유 번호고 애착인데 내년에 후배에게 물려줘야 할까

"저도 포항에 입단해 홍명보가 입고 뛰었던 번호를 달고 지금까지 애착을 가졌다. 이번에 마지막 경기라 생각을 많이 했다. 선수들 중 최보경이 탐을 내더라. 그래서 너는 욕을 많이 먹을 거라고 했다. 다른 선수가 달지 않을까 싶다. 젊은 선수나 축구를 시작하는 선수에게 갖고 싶은 번호였다는 것에 대해 기분 좋게 생각한다. 그런 인식을 심어준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전북에서의 20번은 키우는 선수나 유스로 성장하는, 가능성 있는 선수가 입었으면 한다."

-자유인인데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일단은 앞에 있는 경기만 생각하겠다. 무엇을 잘 할 것인지 찾아야 한다. 쉬면서 어떤게 축구 외에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는 시간도 필요하다."

-가족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나

"어제 늦게까지 부모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아버님께서 너가 내일 은퇴 기자회견을 하면 아버님 본인도(눈물) 은퇴를 해야겠다고 하시더라. 23년 동안 축구를 했고 축구 시작부터 아버님과 30년을 넘게 했다. 본인도 은퇴를 한다는, 안 울려고 했는데 부모님께 그동안 고생했다고 히고 싶다. 아이들은 좋아하더라. 아빠가 같이 있을 수 있으니까. 시간이 많아지니까 아이들을 위해 쉬면서 커 나가는 모습을 같이 보고 싶다."

-미래의 전북은 누가 이끌까

"전북하면 떠오르는 선수가 필요할 것 같다. 그 선수가 전북에서 찾아야 되는 것도 구단 몫이다. 제 생각에는 이재성, 김민재 정도의 선수가 나와줘야 한다고 본다. 충분히 그럴 능력들이 있다. 물론 특정 선수보다 모여서 잘하는 선수들이다. 원팀으로 가는 것도 좋다고 본다."

-지도자 과정을 밟는데 어떤 지도자로 돌아올 것인가

"아직 A코스를 하고 있다. 당장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다. 지도자가 된다면 잘 할 수 있는게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특별히 지시를 하고 가르쳐준다는 그런 것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불멸의 기록을 많이 세웠는데 가장 애착이 가는 기록이 있나

"며칠 동안 검색하면서 많은 것을 이뤄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800경기 이상 대표팀 포함해서 뛰었다는 것을 오늘 아침에 처음 알았다. 선수가 800경기 이상을 뛸 수 있다는 것 1-2년 잘해서는 없는 기억이다. 10-20년 이상 그 경기를 꾸준하게 해왔으니 굳이 그 많은 기록 따지면 많은 경기를 소화하고 몸을 만들고 경기를 뛰었다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후배들도 깨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과거로 돌아가 브레멘과 미들즈브러에 다시 간다면 얼마나 해냈을까

"23년을 정리하면서 그 부분에 대해 많은 생각했다. 잘 때도 하고 하는데 쉽지는 않아도 최고의 몸상태에서 진출을 해도 의심이 갔는데 십자인대 수술하고 한 경기도 소화 못하고 나갔었다. 2006년 몸 상태를 유지했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 않았을까. 만약 그대로 돌아가도 도전한다. 후배들에게도 그런 꿈을 가지고 도전을 해보라고 이야기한다. 다시 그 상태로 돌아가도 시기는 늦춰서 최고의 몸상태로 진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보다 지금의 생활이 더 편해졌다. 지금은 핸드폰 있으면 전화가 됐지만, 과거에는 차범근 선배도 그렇고 힘들었다. 전화카드 사서 집에 전화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환경이 좋아져 해외 진출을 꿈꾸는 선수들에게는 좋은 환경이다."

-2017년에도 대표팀에 들어갔다. 뒤를 잇는 스트라이커가 나오지 않는다는 뜻인데

"K리그 선수들 모두 알겠지만 스트라이커로서 살아 남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환경이다. 모든 팀이 외국인 공격수를 선호하고 성적과 연관이 됐다. 지금은 22세 이하 규정이 있어서 젊은 선수가 기회를 많이 받고 있지만다. 외국인과 경쟁에서 이겨내야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예전에 스트라이커가 1순위였다면 지금은 측면이나 미드필더로 가는 선수가 많아서 안타깝다. 선수들도 문제 있겠지만, 코칭스태프가 구단에서 좋은 선수 만들려면 출전 시간 보장이 필요하다. 저는 기회를 보장 받고 차근차근 성장해오면서 외국인과 경쟁하는 힘이 생겼다. 향후 5~10년 안에는 대형 스트라이커가 나오지 않을까. 42세 이상 규정이 있으면 1년 더 할 생각이 있다."

-힘들때마다 아내가 위로해줬는데 멋진 엔딩인가

"이번에 부상 이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지금도 1년 더 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아내에게 들었다. 몸상태가 충분히 경쟁력 있다고 봤다. 조급한 심정이나 가까이 있는 아내가 너무 조급해하고 서운해하고 있고 나약해지는 모습이라고 한다. 몸이 아픈 것은 참아도 정신 나약은 참지 못한다. 마지막 엔딩 마무리는 언제나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한다. 지금 이 순간이어야 한다. 짜놓은 것처럼 흘러가는 것 같다. 머지막 경기에 우승컵 들고 은퇴하는 선수가 몇이나 있을까. 그 순간에 제가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해피엔딩이기를 바란다."

-23년간 사랑 받았는데 팬들에게

"축구를 초등학교 4학년 시절에 시작하면서 은사님이 많이 생각 났다. 축구 선수로 이동국을 성장, 지도해준 감독님께 감사하다. 한 경기만 하면 축구 선수 이동국이라는 타이틀 쓸 수 없어 아쉽게 생각하지만, 전 축구 선수로 해야 한다는 것에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동안 응원을 보낸 팬 여러분께 과분한 사랑을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마지막 한 경기까지 응원해주시면 기대를 져버리지 않도록 하겠다.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스포티비뉴스=전주, 이성필 기자 이강유 영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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