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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이동국, "정신이 나약해지는게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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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8일 오후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전북 현대 이동국 선수가 은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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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나약해지는게 싫었다.”

프로축구 레전드 이동국(41)이 2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은퇴기자회견에서 밝힌 은퇴 이유다.

전북 현대 공격수 이동국은 지난 26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K리그 최다골(228골)과 7차례 우승, 네 번의 MVP 수상 등을 이뤄냈다. 올 시즌에도 4골을 넣었지만 7월 무릎 내측인대를 다친 게 변수가 됐다. 지난달 복귀했지만, 후반 교체 선수 역할에 머물렀다.

이날 은퇴 기자회견에는 취재진 70여명이 몰렸다. 이동국은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다가 눈물을 왈칵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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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전북 현대 이동국 선수가 은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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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소감은.

“많은 분들이 부상상태를 물어보시는데, 몸상태는 아주 좋고, 정상 컨디션으로 회복했다. 부상 때문에 그만두는건 아니다. 선수생활하며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는 생각으로 지내왔다. 장기부상으로 인해 하루하루 조급해하는 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예전에는 부상이 있어도 긍정적으로 최고의 몸상태를 만들어 들어갔는데, 정상적인 몸상태가 아닌데도 욕심내서 들어가려 했었고 불안해한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사소한 것들에 서운해하는걸 느꼈다. 몸이 아픈건 참을 수 있어도, 정신이 나약해지는건 참을 수 없었던거 같다. 진지하게 은퇴 고민을 많이하고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 같다.”

-은퇴를 결심하게 된 순간은.

“부상 때 나약해진 제 모습을 발견하고 나서다. 항상 긍정적으로 좋은 생각만 하고 있던 사람이었지만, 나이가 든 후 조급해하는 모습을 발견했을때 더 이상 운동해서는 안되겠다고 느꼈다. 제2의 삶이 기다려줄 수 있으니 스트레스 받지 말자고 아내랑 이야기했다. 울산전을 앞두고 구단, 단장님, 감독님과 발표시기를 의논했고, 중요한 경기라서 울산전 다음날 하기로 했다.”

-현재 심경은.

“만감이 교차된다. 서운함과 기대가 있다. 주위에서 많은 분들이 ‘1년 더 해도 될거 같은데’라고 해주셨다. 그래도 선수생활에서 경쟁력 있게 은퇴하는구나 생각했다.”

-최고의 순간, 떠올리고 싶지 않은 순간은.

“제가 33번과 이름이 적힌 프로유니폼을 처음 받았을 때다. 며칠동안 입고 잤던 좋았던 순간이다. 2009년 전북에서 첫 우승컵을 들었을 때가 축구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기간이지 않을까 싶다. 힘들었던 시간은 2002년 월드컵을 뛰지 못했을 때다. 지금까지 잊지 못할 기억으로 갖고 있으며, 보약이 된 것 같다. 지금까지 선수생활을 하고 있다. 2006년 월드컵을 두달 남기고 다쳤을때. 모든 것을 다 부어서 준비했지만, 부상으로 뛰지 못했다.”

-수많은 골 중 가장 기억남는 골은.

“한골 한골 소중한 골이다. 김상식 코치와 함께 뛰었던 독일전 발리슛이다. 그때 임팩트되는 찰나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난다.”

-최강희 전 전북 감독은 어떤 존재인가.

“은퇴할 때 쓸쓸히 떠나가는 선수 많은데, 은퇴기자회견을 하게끔 만들어준 분이다. 2009년 전북에 입단해 같이 이뤄냈다. 감독님은 모르는 기량을 끄집어 내준 분이라 감사하다.”

-30대 중반부터 언제 은퇴하냐는 질문을 받았다. 본인을 잡아준 원동력은.

“선수단 단체 메신저에 은퇴한다고 올리니깐 믿지 않더라. 5~6년 정도 올해가 마지막 시즌이라고 얘기했는데, 현실이 될줄 몰랐다. 비결은 멀리 안내다보고 지금 앞경기만 신경썼다. 나이를 들으면 깜짝 깜짝 놀랄 정도로 나이를 모르고 살아온 것 같다.”

-좌절을 극복한 위대한 선수로서 좌절하는 분들께 희망의 말을 전한다면. 후배들에게 조언해준다면.

“저보다 더 큰 좌절을 했던 사람을 생각해봤던 것 같다. 난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다보니,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겼던 것 같다. 프로선수라는 직업은 선후배를 떠나서 경쟁하는 관계다. 자기만의 특별하게 가진 걸 극대화하고 장점으로 만들다보면 프로에서 롱런하는 선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장 기억 남는 최고의 파트너는.

“김상식 코치님도 여기 계시지만 2000년부터 만나서 많은 것을 함께했다. 전북에 2009년 함께와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꼭 들어가야 한다. 2009년 멤버들이 많이 생각난다. 에닝요, 루이스, 최태욱 등이 전북이 우승을 할 수 있는 팀으로 만들었다. 그때 멤버들이 강했다.”

-전북, 전주에서의 생활도 잊지 못할 것 같다.

“제 고향 포항에 가면 내비게이션을 켠다. 전주에서는 그냥 다닌다. 제2의 고향과 다름이 없다. 전북에서 얻은 것들이 너무 많다. 10년 넘게 운동을 하면서 전북 팬의 함성, 나갔을 때 만나서 편하게 대해주는 것들을 본다. 너무 친숙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끈끈한, 묘한 매력이 있다. 정기적으로 전주를 찾고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하겠다.”

-울산과 최종전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겠다.

“마지막 경기에서 우승컵을 들고 내려올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멋진 일이 될 것 같다. 선수들이 많이 울던데 저는 울지 말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 기쁨의 눈물이면 울 수 있을 것 같다. 동료들과 함께 마지막 트로피를 들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화려하게 보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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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전북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전북 현대 이동국 선수가 은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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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지?

“IMF 시절 입단했다. 해외훈련을 처음 앞두고 여권을 만들었는데 국내에서 훈련을 했다. 공교롭게도 지금 은퇴하는 시기가 국민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시기다. 1998년 월드컵에서 화려하게 등장했다. 하루 하루가 기뻤던 순간이다. 2000년도가 된 후 브레멘(독일)에 진출을 하고 성공하지 못했지만 도전하는 것 자체에 인정을 받았다. 2002년 월드컵에 당연히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가지 못했다. 2003년 군 입대 후 다시 한 번 정신적으로 무장이 됐다. 2006년에는 월드컵만 보고 뛰었다. 다시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게 준비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을 정도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뛰었다면 어떤 모습을 보였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힘들게 수술을 하고 정상적으로 뛴 후 해외 진출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섣부르게 진출했다. 성남 기억은 많지 않다. 그 이후에 전북이라는 팀을 만나 2009년을 시작으로 8개의 트로피를 보내며 화려한 시간을 보냈다.”

-자유인이 되는데 , 향후 계획은.

“일단 앞에 있는 경기만 생각하고 있다. 다음을 생각 해본 적은 없다. 은퇴 후에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할지, 어떤 것을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쉬면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축구 외에 잘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칭찬과 함께 비난도 받았다.

“제 은퇴를 반기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안티팬조차 제 팬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뛰어 왔다. 마지막 한 경기가 남았다. 축구선수 이동국은 이제 볼 수 없다. 수고했다라는 의미로 박수를 받고 싶다.”

-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은?

“어제 늦게까지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울음) 아버지가 은퇴식을 한다고 하니 본인도 은퇴를 해야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축구를 시작할 때부터 뒷바라지를 해주셨다. 30년 넘게 하셨다. 가슴이 찡했다. 애들은 좋아하더라. 아빠가 같이 있을 수 있으니까. 쉬면서 아이들이 커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은지?

“A급 자격증 과정을 밟고 있지만 당장 지도자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 몇 년 쉬면서 생각하려고 한다. 제가 지도자가 된다고 하면 특별히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다. 선수들이 잘하는 것을 찾아주는 게 지도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불멸의 기록을 많이 세웠다. 가장 애착이 가는 타이틀은?

“저도 며칠 동안 인터넷을 통해 보면서 많은 것을 이뤄냈다는 생각을 했다. 800경기 이상 뛰었다는 것을 저도 오늘 아침에 알았다. 한 선수가 800경기 이상을 뛸 수 있다는 것은 1~2년 잘해서 될 일은 아니다. 많은 경기를 소화하기 위해 몸을 만들고 좋은 경기력을 보였다는 점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득점 기록은 K리그 200골을 넣었다.”

-한국에 정통 스트라이커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K리그에서 스트라이커로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모든 팀들이 외국인 공격수를 선호한다. 경쟁에서 이겨내야 한다. 예전에는 스트라이커가 선호 포지션이었는데 지금은 사이드, 미드필더로 출발을 많이 한다. 선수들도 그렇지만 구단에서도 좋은 스트라이커를 만들기 위해 출전 시간을 보장하면서 키워줄 필요가 있다. 저도 차근차근 성장하며 경쟁하는 힘이 생겼다. 지금 22세 이하 의무 출전 규정이 있다. 5~10년 내로 대형 스트라이커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오버 42세 룰’ 있다면 출전할 생각은 있다(웃음).”

-아내(이수진씨)가 시련에 부딪히면 “우리 영화를 찍고 있다고 생각하자. 엔딩이 중요하니 마지막에 꼭 웃자”고 위로했다. 멋진 엔딩이라고 생각하나.

“이번에 부상 이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도 1년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치기 전에는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늘 몸이 아픈 것은 참을 수 있는데 정신이 나약해지는 것은 참을 수 없다고 했다. 아내도 그런 이야기를 했다. 마무리는 언제나 해피 엔딩으로 끝나야 한다고 했다. 짜놓은 것처럼 흘러가는 것 같다. 마지막 경기에서 우승하고 은퇴하는 선수가 몇 명이나 될까. 그 순간에 제가 있다고 하면 좋을 것 같다. 해피 엔딩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지막 한 마디를 하자면.

“축구선수 이동국을 지도해주신 감독님들께 감사드린다. 한 경기를 더 하면 축구선수 이동국 타이틀은 쓸 수 없어 아쉽다. 마지막 한 경기 끝까지 응원해주시면 마지막까지 저도 골을 넣는 스트라이커로 준비하겠다.”

전주=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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