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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고인 있어 우리도 있다"…혁신 DNA 물려받은 '이건희 키즈들' 애도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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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별세] 김범수·김택진·이해진 '인터넷벤처 1세대' 마지막길 배웅

뉴스1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빈소를 조문한 뒤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0.10.27/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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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송화연 기자 =
"고인이 있었기에 지금의 저희도 있었다는 얘기를 지금은 들으실 수 없지만 드리고 싶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삼성 키즈들이 한국의 새로운 사업을 이뤄내고, 그 뒤로 또 네이버, 카카오 출신들이 사업을 일궈내는 게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

국내 인터넷 산업을 개척한 1세대 창업자들이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빈소를 찾아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이들은 고인과 직접적인 인연은 없지만 국내 IT 업계의 기틀을 마련해준 거목의 명복을 빌며 "삼성이 있어 오늘날의 인터넷 기업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와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례식 3일째인 27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김택진 대표는 오후 3시쯤, 김범수 의장은 오후 9시쯤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는 앞서 지난 26일 별도의 의전없이 조용히 빈소를 방문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저마다 다른 사연으로 장례식장을 찾았지만, 국내 IT 1세대 기업인으로서 미래 IT 산업의 기반을 닦은 고인을 추모하는 데는 뜻을 같이했다.

김택진 대표는 이날 조문 뒤 기자들과 만나 "오늘날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삼성의 역할을 다들 알 것"이라며 "고인이 있었기에 지금의 저희도 있었다는 얘기를 지금은 들으실 수 없지만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고인과 직접적인 인연은 없지만 이재용 부회장과 서울대학교 동문으로 평소 친분이 있는 사이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고인과) 직접적 인연은 없지만 자제분들과 굉장히 친구처럼 지내고 있어서 부모님 느낌으로 맞이했다"며 "(유족에게) 간단하게 인사와 위로를 전해드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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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27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빈소로 조문을 위해 들어서고 있다. 2020.10.27/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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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 의장은 늦은 오후 빈소를 찾았다. 이날 빈소를 찾은 김 의장은 삼성SDS 출신의 '삼성키즈'로 고인에게 애도를 표했다. 김 의장은 약 45분간 빈소에서 조문한 뒤 기자들과 만나 "삼성에서의 근무 경험(1992년~1998년)이 오늘날의 카카오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김 의장은 "제 직장은 삼성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삼성에서 배운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한게임이나 네이버나 카카오로 이어져 왔다"며 "삼성에서 신경영, 한창 변화할 때, 프랑크푸르트 선언할 때 있었던 사람으로서 회장님의 경영(방식)이 (제게도) 배어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이 회장이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방문 당시 현지 세탁기 조립 라인에서 직원들이 세탁기 덮개 여닫이 부분 규격이 맞지 않아 닫히지 않자 즉석에서 덮개를 칼로 깎아 내고 조립하는 모습이 담긴 사내 방송을 보고 임원과 해외주재원 200여명을 모아 주재했던 회의에서 나왔다.

국가도 기업도 개인도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이 회장은 "삼성은 이제 양 위주의 의식, 체질, 제도, 관행에서 벗어나 질 위주로 철저히 변해야 한다"고 말하며 '삼성 신경영'을 선언했다. "바꾸려면 철저히 바꿔라, 극단적으로 농담이 아니라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유명한 발언도 이때 나왔다.

김 의장은 삼성의 '혁신 DNA'가 국내 인터넷 업계로 이어졌고, 이것이 후대로 이어질 것이라고도 했다. 삼성에서 인터넷 게임 시장의 기회를 본 자신처럼 삼성·카카오의 DNA를 이어받은 후배들이 미래기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새로운 시장을 열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 의장은 "이해진 네이버 GIO도 삼성 입사 동기였고, 이후 삼성 키즈들이 한국의 새로운 사업을 이뤄내고 그 뒤로 또 네이버·카카오 출신들이 사업을 일궈내는 게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GIO는 지난 26일 별도의 의전없이 조용히 빈소를 찾은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삼성 측이 비공개 가족장으로 장례를 조용히 치르겠다 밝히면서 이 GIO 역시 조용히 애도를 표한 것으로 보인다.

김 의장과 이 GIO는 1992년 삼성그룹 ICT계열사인 삼성SDS 공채 출신이다. 인터넷이 태동하던 시절 삼성SDS는 컴퓨터에 빠진 괴짜들에게 '실험실'과 같았다.

김 의장은 삼성SDS에서 PC통신 '유니텔'을 기획·개발했다. 유니텔은 출시 3년 만에 가입자 100만명을 모아 업계 1위였던 '천리안'을 바짝 추격할 정도로 성장했다. 이후 인터넷 시장의 가능성을 본 김 의장은 삼성SDS를 그만두고 PC방 사업을 성공시킨 뒤, 보드게임 중심의 온라인 게임 포털 '한게임커뮤니케이션'을 설립한다.

이해진 네이버 GIO는 사내 검색엔진팀에서 유니텔 신문기사 통합 검색엔진을 개발했다. 이 팀은 1997년 삼성그룹 최초의 사내벤처 '네이버'로 공식 출범했다. 이 밖에도 지난 9월 증시를 뜨겁게 달군 카카오게임즈의 남궁훈 대표와 장화진 마이크로소프트 APAC 전략 사장, 고순동 한국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등 삼성SDS 출신들은 IT 업계 곳곳에 포진했다.

이를 이유로 업계는 삼성SDS를 '벤처사관학교' 'IT 사관학교'라 평가한다. 국내 IT업계 관계자는 "삼성SDS 창업자인 이 회장이 없었다면 오늘날 네이버가 없었을 지 모른다"며 "삼성SDS야말로 국내 인터넷 업계를 잉태한 회사 그 자체"라고 강조했다.

카카오와 네이버는 이 회장의 혁신 DNA를 이어받아 '실패가 두렵지 않은 도전과 혁신, 자율과 창의'를 바탕으로 글로벌 포털공룡과 견주는 토종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회장은 "실패는 많이 할수록 좋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아 실패하지 않는 사람보다 무언가 해보려다 실패한 사람이 훨씬 유능하다. 이들이 기업과 나라에 자산이 된다"고 발언한 바 있다.

그의 발언처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지난 20여년간 전진해 온 두 양대 포털은 누구도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미래먹거리 발굴과 인재양성에 앞장서고 있다.
hwaye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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