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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차, 기아 인수 때 얽힌 매듭…삼성·현대차 아들들이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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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완성차 선 긋고 배터리 협력

정의선, 5대 기업 중 가장 먼저 조문

이 부회장은 팰리세이드 직접 운전



이건희 1942~2020




26일 오전 11시쯤, 정의선(50) 현대차그룹 회장이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삼성을 제외한 5대 기업 가운데 정 회장이 가장 먼저 이건희 회장의 빈소를 찾았다. 정 회장은 “한국 경제계에서 1등 정신을 아주 강하게 심어주신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생전 이 회장은 1990년대 들어 반도체만큼 완성차 사업에 집념을 보였다. 문민정부 시기인 94년 12월 상공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승용차 사업 진출을 허가받았다. 당시 집권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에 자동차 조립라인을 세우겠다는 계획이 묘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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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정의선 현대차 그룹 회장이 작년 신년회에서 악수하고 있다. 이들은 배터리 등에서 협력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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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1위 사업자 현대를 위협할 정도로 고인과 삼성은 완성차 사업에 공격적으로 나섰다. 현대자동차의 마북리 연구소장, 울산 공장장 출신 임원이 삼성차에 스카우트됐다. 삼성 21세기기획단의 임원 44명 가운데 현대차 출신이 7명. 삼성차의 첫 세단 ‘SM520’은 현대 쏘나타, 기아 크레도스와 함께 중형차 시장을 3분할했다.

97년 8월에는 ‘기아 인수 추진 보고서’라는 삼성 내부 문건이 외부로 유출돼 논란이 일었다. 경영난에 빠진 기아는 97년 10월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인수합병(M&A) 매물로 나왔다. 당시 재계에선 삼성차가 기아를 인수할 것으로 판단했다. 삼성이 인수 1순위로 거론된 이유는 93년 삼성생명이 기아차의 지분을 8%까지 보유했기 때문이다.

예상과 달리 기아 인수전의 최종 승자는 현대였다. 삼성·대우에 비해 뒤늦게 뛰어들었지만 현대는 1조2000억원을 써내 기아를 인수한다. 기아 M&A에 승부수를 던졌던 삼성차는 정작 자신의 부채 4조원을 견뎌내지 못했다. 99년 6월 고인은 삼성차의 부채 탕감을 위해 삼성생명 주식 약 400만 주의 사재를 출연했다. 사업 진출 약 5년 만에 삼성은 자동차에서 손을 뗐다.

부친과 달리 이 부회장은 완성차 사업 진출에는 확고히 선을 긋고 있다. 그 대신 전기자동차(EV)용 배터리, 자동차용 반도체에서 정의선 회장의 현대차와 협력을 꾀하고 있다.

현대차 역시 예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올 5월에는 정 회장이 현대차 총수 일가로는 처음으로 삼성SDI의 배터리 공장을 방문했고, 두 달 뒤에는 이 부회장이 현대차 남양연구소를 찾았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배터리는 삼성 제품을 현대차가 구매하고, 자율주행 부문에선 현대차가 삼성전자와 전략적 기술제휴를 맺는다면 서로 윈윈도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68년생, 70년생인 이 부회장과 정 회장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부회장의 전용 차량 역시 제네시스 G90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25일 현대차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팰리세이드’를 직접 운전해 빈소에 나타났다. 아들·딸을 태운 그는 직접 ‘오너 운전자’로 취재진 앞에 등장했다. 삼성 총수 일가가 직접 자동차를 운전해 공식석상에 나타나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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