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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선 D-7] 배럿 인준까지 강행했지만... 트럼프, 제 꾀에 제가 속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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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의 연방대법관 인준안 통과 기준 하향 등
검증 축소·시간 단축으로 사법부 보수화 가속
"차기 대통령, 똑같은 방법으로 설욕할 수도"
한국일보

에이미 코니 배럿(오른쪽) 미국 연방대법관 후보자의 상원 인준안이 통과된 26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배럿 후보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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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공화당이 상원에서 에이미 코니 배럿 연방대법관 후보자 인준안을 강행 처리하자 "미국에 위대한 날"이라고 자축했다. 그간 검증 축소와 시간 단축을 통해 '사법부 보수화'를 가속화했고, 이번엔 연방대법원을 '보수 절대우위' 구도로 재편한 것을 두고서다. 하지만 민주당이 대선 승리 후 똑같은 방식으로 사법부 재편 가능성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제 꾀에 제가 속았다'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온다.

배럿 대법관 후보자의 상원 인준안이 통과된 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상원에서 통과된 220번째 연방 법관 인준"이라고 보도했다. 연방대법원만 해도 닐 고서치 대법관과 브랫 캐버노 대법관에 이어 3명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년간 연방항소법원 판사 53명과 연방지방법원 판사 162명, 국제무역법원 판사 2명 등을 교체했다. WP는 "연방항소법원 판사의 30% 이상을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함으로써 40여년만에 처음으로 연방항소법원 판사 자리에 공석이 없게 됐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법부 보수화'의 가속페달을 밟는 과정에서 상원 규칙을 수정하고 후보자 평가에 사용했던 주요 관행을 뒤집었다. 60명 이상의 찬성을 필요로 했던 연방대법관 인준 기준을 단순 과반으로 낮춘 게 대표적이다. 2017년 고서치 대법관(찬성 54대 반대 45) 인준을 시작으로 2018년 캐버노 대법관(50대 48), 이번 배럿 후보자(52대 48)까지 그가 임기 중 지명한 후보자 3명 모두 예전 기준이었다면 인준이 불가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소 30시간이 필요했던 연방지방법원 판사에 대한 검증 시간도 2시간으로 대폭 줄였다.

보수진영의 구미에 맞는 사법부를 만들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공화당의 상원 다수당 지위를 활용했던 개정안들은 그러나 대선 결과에 따라 정반대의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사법부의 무게중심을 진보 쪽으로 옮기기 위해 지난 4년간 대폭 축소되고 낮아진 기준을 적극 활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WP는 "트럼프가 차기 대통령을 위해 '전략 모음집'을 만들어 준 셈"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지난 수십 년간 확대돼온 '사법 전쟁'은 축소되지 않을 것이고 과거에 상원이 초당적으로 대법관 후보자를 인준해온 관행으로 돌아가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미 민주당은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를 벼르고 있음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조 바이든 대선후보는 지난 22일 미 CBS방송 인터뷰에서 "초당적 위원회를 구성해 연방대법원 개혁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바이든 후보가 그간 대법관 증원에 부정적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보수 절대우위로 기운 대법원에 어떤 식으로든 칼을 대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대법관 수 증원 가능성이 거론되는데 물론 세부 방안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방식을 차용할 공산이 크다. 실제 바이든 후보는 이날 배럿 후보자 인준안 통과 직후 트위터에 "투표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보여준다"고 썼다.

하지만 바이든 후보와 민주당이 집권하더라도 현행 대법원 체제 개편 등에 적극 나서기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지난 4년간 트럼프 대통령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한다고 비판해온 입장에서 동일한 잣대를 피해가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바이든 후보가 시종일관 '초당적인' 사법개혁위를 강조하는 이유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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