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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겁없는 서학개미, 주식서 3.4조 벌었지만 파생상품서 와장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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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해외 투자를 공격적으로 늘린 이른바 ‘서학 개미’가 올해 들어 3조4000억원의 평가 이익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사태 이후 ‘저점 매수’에 나선 게 성공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고위험·고수익 투자인 해외 파생상품까지 손댄 ‘겁 없는’ 서학개미들은 1조원에 달하는 손실을 봤다. 금융 당국은 “고위험 상품은 상품 구조를 충분히 분석해 접근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조선일보

/일러스트=백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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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기술주에 ‘몰빵’ 투자해 3.4조 벌었다

2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8월 말 기준으로 개인 투자자의 해외주식 투자 잔고는 28조9000억원에 달한다. 작년 말(12조원)에 비해 2.4배 규모로 증가한 것이다. 국가별로는 미국이 대부분(76%)을 차지했다.

공격적으로 해외 주식에 투자한 성과는 어땠을까. 지난 8월 말 기준으로 해외 주식 잔고의 평가 손익은 3조4000억원에 달한다. 물론 최근 들어 변동성이 커지면서 평가 손익 폭은 다소 줄어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 ‘평가 손익’이기 때문에 수익을 실현했다는 건 아니다.

개인 투자자들이 해외 주식으로 벌어들인 돈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2018년에는 1000억원, 2019년에는 7000억원이었으나 올해 상반기에는 1조4000억원이었다. 올해 8월에는 3조4000억원까지 늘렸다.

금융 당국은 서학 개미들의 특징이 ‘몰빵 투자’라고 설명했다. 올해 1~8월 개인 투자자들의 순매수 상위 5개 종목은 테슬라(15억4000만달러), 애플(9억7000만달러), 마이크로소프트(6억1000만달러), 구글(4억2000만달러), 하스브로(4억1000만달러) 등 순서였다. 주로 나스닥의 대형 기술주, 이른바 '언택트(비대면) 수혜주 위주로 투자했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순매수 상위 5개 종목 합계(40억달러)가 전체(115억달러) 34%를 차지한다”면서 “순매수가 가장 많았던 테슬라 한 종목이 전체 13%”라고 했다.

서학 개미들이 해외 개별종목에 직접 투자하는 비중은 많이 늘어난 반면, 채권·펀드 투자는 줄였다. 8월 해외채권 투자잔고는 9조3000억원으로 전년 말 대비 27.5% 감소했다. 또한 해외 주식형·채권형 펀드 판매잔고 모두 전년 대비 각각 13.6%, 15.7% 감소했다.

◇'개미 무덤' 파생상품에선 1조 손실

그러나 고위험·고수익 투자로 꼽히는 파생상품에 손댄 서학 개미들은 웃기 어려웠다. 올해 상반기 개인 투자자의 월 평균 해외장내파생상품 거래규모는 556조6000억원에 달한다. 전년(346조9000억원) 대비 60.5% 증가한 것이다. 전체 거래규모 가운데 개인 투자자 비중이 76%에 달한다.

올해 상반기 중 개인 투자자가 해외장내파생상품에서 잃은 돈(실현손익+미실현 평가손익)은 8788억원에 달한다. 작년 한 해 손실 규모(4159억원)의 두 배가 넘는다. 개인 투자자들의 해외장내파생상품 투자는 해마다 손실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18년 7823억원 손실, 작년 4159억원 손실, 올해 상반기 8788억원 손실 등이다.

‘개미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FX마진(외환차익거래)에서도 개인 투자자들은 손실을 봤다. FX마진은 두 개의 통화를 동시에 사고팔아 환차익을 노리는 거래인데, 최대 10배의 레버리지가 동원된다.

올해 상반기 개인 투자자들의 월평균 FX마진 거래규모는 13조원으로 작년(6.4조원) 대비 2배 정도로 늘었다. 전체 거래규모 89.3%를 개인 투자자가 차지했다. 올해 상반기 중 개인 투자자들이 FX 마진으로 잃은 돈은 1208억원에 달한다. 지난 2018년 81억원 손실, 2019년 500억원 손실에서 손실폭이 더 커진 것이다.

◇금융당국 “니콜라를 기억하라…묻지마 투자 주의”

금융 당국은 해외 주식 및 파생상품 투자의 위험에 유의해야 한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해외 주식은 국내 주식에 비해 정보 접근성이 낮아, 특정 정보에만 의존하는 ‘묻지마식 투자’는 주가 변동 리스크에 더욱 크게 노출된다”고 했다. 금감원이 예시로 든 사례는 ‘아픈 손가락’ 니콜라다. 올해 6~8월 국내 투자자는 이 회사에 2억1000만달러를 투자했으나, 9월 사기 혐의로 조사가 시작되면서 주가가 급락한 바 있다.

금감원은 또 “해외장내파생상품과 FX마진거래는 최근 거래 규모가 늘어나며 그에 따른 개인 투자자 손실도 크게 확대되고 있다”면서 “각별한 유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아무래도 상품 구조가 복잡하기 때문에, 충분히 분석한 다음에 투자하라는 권고다.

[이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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