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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이슈 2020 미국 대선

바이든이 승리한다고 해도, '트럼프 지지자들'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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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특파원(onscar@pressian.com)]
"이번 선거가 향후 수십년을 좌우할 것이다."

대선을 10여일 앞두고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 지지 유세에 뛰어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 뿐 아니라 미국 정치와 사회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대다수의 전문가들(정치인, 학자, 언론인 등)의 공통된 지적입니다.

10월 27일,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11월 3일)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4년 전 다수의 전문가와 언론인들의 예상을 뒤집고 당선이 됐습니다. 때문에 이번 선거를 앞두고 누구도 승자를 쉽게 예측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100년 만에 발생한 팬데믹 상황은 결과를 더욱 예측하기 어렵게 합니다.

전체 유권자의 26%에 해당하는 6158만여 명이 사전투표(우편투표+사전 직접투표)를 한 것으로 집계(10월 26일)되면서 역대 최고의 투표율이 예상되는 상황입니다. 일반적으로 투표율이 높으면 민주당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쪽이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열성 지지자들이 더 많기 때문에 '높은 투표율'도 어느 후보에게 유리하다고 말하기 힘듭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번 '선거 불복' 가능성을 직접 말했습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이 선거 당일 밤 승리를 선언할 수 있을 정도로 압승하지 못할 경우, 선거 결과를 둘러싼 다툼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하는 극우세력을 향해 "물러나서 대기하라"고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불투명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상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여느 때와 너무 다른 2020년 선거를 만든 '현실'입니다. 트럼프 정부 4년을 정치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11월 3일 미국인들의 선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레시안>은 미국 대선 전까지 이에 대한 이해를 돕는 글을 3편으로 나눠서 게재할 계획입니다.

트럼프 "이라크 전쟁은 명백한 실수"

"(2003년) 이라크 전쟁은 명백한 실수다. 우리는 이라크 전쟁을 통해 2조 달러의 돈과 수많은 생명을 낭비했다. 또 이로 인해 중동 지역 정세도 불안정하게 됐다."

201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잽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를 향해 이렇게 공격을 퍼부었다. 잽 부시는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동생이다.

당시 정치적 기반과 경력이 전무한 트럼프 대통령(이하 직함 생략)이 2016년 대선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존 공화당 정치인들과는 명백한 '차이'를 보여야 했다. 그중 하나가 부시 정권 때 감행한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대였다.

부시 정부는 2001년 집권하자마자 '테러와의 전쟁'을 내세워 중동 국가들과 갈등을 조장하다가 그해 9월 11일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무장세력에 의해 뉴욕에 9.11 테러 공격을 당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전쟁을 시작했다. 부시 정부는 또 이라크가 대량 살상 무기를 갖고 있고 사담 후세인 정권이 언제 이를 사용할지 모른다는 이유를 내세워 2003년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 당시 두달 만에 미국과 연합군은 승리를 선포했지만 곧바로 전쟁 종결로 이어지지 않았다. 국지전과 테러가 산발적으로 이어졌고, 오바마 정부가 2011년에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하면서 끝을 맺게 됐다.

이처럼 전쟁 기간이 길어지고 전쟁 비용도 천문학적인 수준에 이르자 미국 내에서도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아졌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부시 정부에서 5년 동안 쓴 전쟁 비용은 3조 달러를 상회하며 인플레이션을 감안한다면 5조 달러로 추정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5조 달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 비용을 상회하는 규모다. 인명 피해도 컸다. 베트남 전쟁 이후 가장 많은 미군 장병이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목숨을 잃고 부상을 입었다(사망자 5000여 명, 부상자 3만여 명). 2008년 3월 전쟁 시작 5주년을 맞았을 때 부시도 이라크 전쟁에 따른 대가나 전쟁 기간이 당초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커지고 장기화되었음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세계와 미국을 더욱 안전하게 만들었다면서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었다고 정당화했다. 임기 내내 전쟁을 벌인 부시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맞게 됐고, 2008년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은 민주당에 정권을 빼앗겼다.

2016년 대선은 부시 정권의 실정으로 탄생한 오바마 정권 8년을 마감하고 새로운 리더십을 선택하는 선거였다. 오바마 정부 8년에 대한 평가가 높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부시 때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할 수는 없었다. 트럼프는 영악하게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라는 깃발을 들고 공화당 주류 세력과 차별을 꾀했고 그의 전략은 성공했다.

트럼프, 오바마에 등 돌린 노동자층을 사로잡다

"2016년 4월 국가이익센터에서 연설할 때 당시 후보였던 트럼프는 미국이 해외에서 수행하는 방식을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를 기치로 내세우며 과거 '영원한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또 동맹국들이 우리의 집단 방어를 위해 재정적인 기여를 더하도록 밀어붙이겠다고 강조했다." (해리 카지아니스 국가이익센터 선임국장(한반도 연구소장), 10월 22일, <뉴스위크>)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것은 당시 '백인 저소득층 유권자'들이 갖고 있던 불만을 정확히 읽었기 때문이다. 전쟁 비용으로 수조 달러를 날린 부시 정권이 금융위기 당시 마련한 경기 부양책의 규모는 1500억 달러에 불과했다.

금융위기로 벼랑 끝에 몰리게 된 중산층 이하의 노동자들은 2008년 대선에서 오바마에게 표를 몰아주며 변화를 기대했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에서도 중산층 이하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은 미국의 방만한 금융시스템에 있었지만, 은행들은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이 투입되면서 되살아났다. 하지만 주택 구입을 위해 '모기지론'에 가입했다가 피해를 본 이들은 대다수가 구제를 받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오바마 정부도 경제적 양극화 문제를 완화시키는데 실패했다. 미국 경제정책 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1978년부터 2013년까지 35년 동안 CEO의 연봉은 평균 937% 상승했으나, 노동자들의 실질 소득은 겨우 10.2% 증가하는데 그쳤다.

특히 이런 박탈감은 과거 제조업 중심지였던 '러스트벨트'(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오하이오 등 과거 자동차, 철강 공업 지역)의 백인 노동자 계층에 매우 컸다. (이들 노동계급의 빈곤과 이에 따른 좌절감은 2008년 위스콘신 제인즈빌의 GM공장 폐쇄 전후 지역 주민들의 삶을 다룬 르포집 <제인스빌 이야기>(에이미 골드스타인 지음, 이세영 옮김, 세종서적 펴냄), 오하오이주의 가난한 마을에서 자란 변호사의 자전적 이야기인 <힐빌리의 노래>(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흐름출판 펴냄) 등에 잘 드러나 있다.)

오바마 정부의 '배신'은 결국 '그놈이 그놈'이라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트럼프는 정치 불신을 자신의 정치적 자양분으로 삼고, 2015년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정치에 뛰어들었다. 그는 부동산 사업가인 자신과 정치권(더 나아가 기득권)과 거리를 강조하며,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가진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로저 스톤, 스티브 배넌 등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을 추앙하는 극우정치 모사꾼들이 트럼프를 배후에서 조정했다.

전지구화된 신자유주의 체제로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됐지만 정치권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이 틈새를 비집고 '정치적 이단아'를 자처하는 포퓰리스트(대중추수주의자)들이 득세하는 현상은 미국과 트럼프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 브라질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레제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등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우파 포퓰리스트'로 꼽힌다.

트럼프 4년, '러스트벨트' 노동자들의 삶은 나아졌을까

오바마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트럼프 정부 4년 동안 백인 노동자 계층의 삶이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 때 '러스트벨트' 지역 유권자들에게 자동차, 철강공장을 다시 유치해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못했다. 트럼프가 단행한 세금 감면도 법인세 인하 등 혜택이 주로 고소득층에 집중됐다.

올해 들어 코로나19 사태로 저소득층의 삶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지난 3~4월에만 2220만 개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대공황 이래 최악의 실업률(4월 실업률 14.7%)을 기록했다. 회복 중이라지만 10월 말 현재까지도 여전히 1150만 개의 일자리는 복원되지 않았다(10-12월 실업률 7.6% 예상).

반면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의 '슈퍼 리치'들은 코로나19 사태로 오히려 역대 최다 수준으로 자산을 불렸다. 미국 400대 부자들의 자산 총합은 3조2000억 달러로 전년보다 8%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트럼프는 코로나19 타격 이후 빠른 경제회복(V자형 회복)의 지표 중 하나로 주가를 강조하고 있는데, 주가 상승 역시 저소득층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미국 인구조사국과 노동통계국 통계를 보면, 2008년 이후 미국 지니계수는 꾸준히 늘어 2018년 0.48이다. 1에 가까울수록 빈부격차가 크다는 뜻이다. 지니계수가 0.5를 넘어서면 빈부 격차로 인한 갈등이 극도로 심화돼 '폭동'이나 '민란'이 우려되는 상황으로 여겨진다. 한국의 지니계수는 2018년 기준 0.34 수준이다.

'룰 브레이커'를 지지하는 백인 노동자 계층의 속마음

이처럼 실질적인 빈부 격차는 악화됐지만, 백인 유권자들 중 과반이 여전히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스트리트저널>과 NBC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10월 9-12일 실시)에 따르면, 트럼프는 남성(트럼프 50%, 바이든 45%)과 백인(트럼프 50%, 바이든 46%) 계층에서 앞서고 있다. 백인 유권자들은 전체 미국 등록 유권자의 67%로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대졸 미만 학력의 백인은 59%가 트럼프를 지지했다. '러스트벨트'의 백인 노동자들의 상당수가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았다고 해석 가능하다. 이는 2016년 대선 때 트럼프를 지지했던 유권자들 중 백인 여성, 65세 이상 고연령층, 대졸 이상 백인 등의 상당수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바이든 지지로 돌아선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들에게 민주당, 특히 조 바이든-카멀라 해리스(부통령 후보)로 대표되는 민주당은 크게 기대할 것이 없어 보인다. 2016년 힐러리 클린턴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경제적인 현실이 크게 나아지지 않아도, 코로나19 사태 대응이 엉망진창이더라도 '도로 오바마', '도로 부시', 즉 '도로 기득권'보다는 트럼프가 낫다는 심정이다. 트럼프 정부는 영악하게 중국과의 갈등 조장, 불법 이민자에 대한 무관용 조치 등 백인 노동자들이 원하는 보호무역주의와 이민 제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조치들을 파괴적인 방식으로 추진하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게 만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들에게 트럼프는 '룰 브레이커'(규칙 파괴자)이다. 기존의 정치인, 학자 등 모든 전문가가 한 목소리로 "트럼프가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비판을 하지만, 트럼프 지지자들 중 다수는 '기왕 이렇게 된 거 완전히 망하고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조금 거칠게 비유하면,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의 20-30대 유권자들 중 일부가 허경영을 대통령으로 지지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심리다.

트럼프와 그 측근들은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이권을 위해 이런 유권자들의 절망감, 상실감을 계속 '불쏘시개'로 활용해왔다. 또 2016년 대통령 당선과 동시에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에서 '영원한 전쟁 종식'과 같은 겉포장지가 사라졌다. (부시 정부 때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원래 본질이었던 '백인 우월주의'가 2017년 버지니아 샬롯츠빌의 폭동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가시화 됐고, 세를 불려나갔다. 지난 10월 8일에는 그레첸 휘트머 미시간 주지사를 납치해 살해하려던 극우무장집단 소속 13명이 FBI에 의해 체포되기도 했다. 이처럼 대선을 앞두고 사회 불안이 커지면서 미국민들 사이에 총기 구매가 급증하는 현상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바이든이 승리해도 '트럼프 지지자들'은 남는다

대선 이후 양측 지지자들 사이의 물리적 충돌과 같은 혼란이 벌어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바이든이 대선 당일 밤이나 그 다음날 '승리'를 선언할 수 있을 정도로 '압승'을 하는 것이다. 두 후보 사이의 득표 차이가 크지 않을 경우, 트럼프가 먼저 승리를 선언하거나 선거 불복을 선언할 수도 있다. 그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하기는 힘들다.

또 대통령 트럼프는 선거를 통해 '아웃'이 되더라도 트럼프와 그 측근들이 지난 4년 동안 키운 '백인 우월주의'에 기반한 극우성향의 정치집단(지지자들 포함)은 남는다. 이들 극우세력은 이제 음모론까지 유포하면서 지지자들을 붙잡고 있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큐어넌'은 힐러리 클린턴 등 민주당 정치인들을 포함한 기득권 세력들이 사탄을 숭배하고 아동을 성착취하고 있으며, 트럼프가 유일하게 이들에 맞서 싸우는 정치인이라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는 집단이다. 트럼프 지지자들 중 상당수가 '큐어넌'을 믿는다고 말한다. 또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조지아주 14선거구 마저리 테일러 그린 공화당 후보 등 이번 선거에 출마한 10여 명의 공화당 후보가 '큐어넌' 신봉자이거나 이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프레시안

▲ 지난 8월 트럼프는 백악관에서 공화당 대선후보 수락 연설을 하고 불꽃놀이를 즐겼다. 이번 공화당 전당대회 때는 부인 멜라리아 뿐 아니라 도널드 주니어, 이방카, 에릭, 티파니 등 자녀들도 모두 연설자로 나섰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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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특파원(onscar@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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