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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애니콜'이 있었다…삼성폰 세계 1등 신화만든 '이건희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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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별세]총수가 직접 관심갖고 챙긴 '이건희폰'

이건희 강조한 품질과 혁신이 만들어낸 '애니콜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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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의 지시에 따라 1994년 11월 출시된 'SH-770'은 처음으로 '애니콜'(Anycall)이라는 이름을 달고 출시됐다.(삼성전자 제공) © 뉴스1

(서울=뉴스1) 김정현 기자 = 1990년대만 하더라도 휴대전화는 누구나 갖고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지금이야 당연한 '국내·외 1등 삼성폰'도 처음부터 1등은 아니었다. 심지어 국내 시장에서도.

1990년대 초반, 휴대폰 시장은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양분하고 있었다. 국내 휴대폰 시장도 마찬가지로 부동의 1위는 모토로라였다.

지난 1993년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신경영 선언'을 할 때만 하더라도, 삼성폰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10%대에 불과한 상황이었다.

당시 삼성전자는 SH-100, SH-200, SH-300, SH-400, SH-600, SH-700등 꾸준히 휴대전화를 내놨으나, 시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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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뉴스1 DB)2020.10.25/뉴스1 © News1 이동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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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콜 첫번째 혁신…이건희 "통화키·종료키, 위로 올려라"

이같은 상황에서 '애니콜 신화'의 첫번째 '혁신'이 이 회장의 지시로 이뤄졌다. 당시 글로벌 1위 모토로라를 따라 휴대전화의 통화(SEND)·종료(END) 버튼은 숫자 키패드 아래에 위치하는게 상식이었다.

그러나 이 회장은 "가장 많이 쓰는 통화키와 종료키가 아래에 있으면 전화받기 불편하다"며 "두 키를 숫자키패드 위로 올리는 게 좋겠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지시에 따라 1994년 11월 출시된 'SH-770'은 처음으로 '애니콜'(Anycall)이라는 이름을 달고 출시됐다. '언제 어디서나 전화가 잘 터진다'는 뜻이 담긴 애니콜은 산이 만은 한국 지형에 강하다는 마케팅과 함께 국내 시장 점유율 26%를 차지하며 모토로라에 이어 2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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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콜 화형식 (삼성전자 제공)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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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중 1대' 불량률에 이건희 불호령…'품질'의 삼성 기반돼

그러나 문제는 '불량률'이었다. 첫번째 애니콜의 불량률은 '10대 중 1대' 수준인 11.8%에 달했고 소비자들의 불만도 치솟았다. 이에 이 회장은 또 다른 '결단'을 내렸다.

이 회장은 "시장에 판매된 제품을 회수해 공장 앞에서 모두 태우라"는 지시를 내리고, 지난 1995년 3월 구미사업장에서 회수한 휴대전화 15만대(약 150억원 수준)를 전량 소각했다. 소위 말하는 '애니콜 화형식'이다.

그저 퍼포먼스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불량률은 2%까지 내려갔다. 이를 바탕으로 삼성폰은 1995년 국내 시장 점유율을 38%까지 끌어올렸다. 1996년에는 시장점유율 47%를 달성하며 모토로라를 제치고 첫번째 '1위'를 차지했다.

애니콜 화형식 이후, 애니콜의 '품질'은 신뢰의 상징이 됐다. 이후 출시된 애니콜 제품들도 '디자인이 투박하다'는 지적은 있었을지언정, 시장의 어떤 휴대전화보다도 튼튼하고 믿을 수 있는 품질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었다.

이같은 품질을 기반으로 해외 수출량도 꾸준히 늘렸다. 1997년에는 수출량 76만대를, 1998년에는 240만대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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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폰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SGH-T100(왼쪽)과 SGH-E700 (삼성전자 제공) © 뉴스1


◇이건희 강조한 '품질'과 '혁신' 무기로 삼은 '이건희폰'…세계시장 호평

기본인 '품질'을 기반으로 꾸준히 신기술을 접목한 애니콜은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으며 꾸준히 점유율을 늘려나갔다.

특히 1996년 최초로 상용화된 CDMA 통신 기술 지원 단말기를 출시하는 등 적극적으로 신시장 개척에도 힘썼다. 반면 세계 1위였던 모토로라는 CDMA 전환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등 시장에 안주하면서 1위 자리가 흔들리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첫번째 텐밀리언셀러(1000만대) 폰이 나왔다. '이건희폰'이라는 별명으로 지난 2002년 출시된 첫번째 컬러 LCD폰 'SGH-T100'이었다.

이 회장이 직접 개발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건희 폰'이라는 별명이 붙은 SGH-T100은 '클램셸' 디자인의 휴대전화로 Δ31만화소 내장 카메라 Δ26만컬러 LCD Δ64화음 멜로디를 지원했다.

깔끔한 디자인과 당시로는 어마어마한 사양을 갖춘 SGH-T100은 출시 2년이 채 되기 전에 글로벌 판매량 1000만대를 기록했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애니콜 신화가 시작된 셈이다.

이어 2004년에 출시된 'SGH-E700'는 내장 안테나를 탑재하고 벤츠를 닮은 디자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벤츠폰'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SGH-E700'은 이건희가 직접 챙겼다는 이야기가 돌며 '제2의 이건희폰'이라는 또 다른 별명을 얻으며 두번째 텐밀리언셀러폰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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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블루블랙폰(SGH-D500·2004년 출시), 울트라에디션(SGH-D900·2006년 출시), SGH-E250(2006년 출시, 총 5000만대 판매) (삼성전자 제공) © 뉴스1


◇블루블랙폰·울트라에디션 등 1000만대 행렬…결국 글로벌 1위된 '삼성폰'

삼성전자는 2000년대 들어 혁신과 품질을 고루 갖춘 SGH-T100와 SGH-E700, 두 '이건희폰'을 세계 모바일 시장 공략의 주춧돌로 삼았다

이어 출시된 Δ블루블랙폰(SGH-D500·2004년 출시) Δ울트라에디션(SGH-D900·2006년 출시) ΔSGH-E250(2006년 출시, 총 5000만대 판매) 등 다양한 휴대폰을 1000만대 이상 팔아치운 삼성전자는 결국 2012년에는 노키아를 꺾고 글로벌 휴대전화 시장 1위를 달성할 수 있었다.

당시 제조업계 관계자는 "1990년대와 2000년대의 모토로라·노키아는 지금의 애플 이상으로 세계 시장에서 위치가 굳건했던 업체들이었다"며 "이건희폰이라는 별명에도 알 수 있듯이 기업 총수가 개발 과정부터 직접 관심을 갖고 챙긴 것이 삼성전자 휴대전화의 저력이 아니었나 싶다"는 소회를 밝혔다.
Kri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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