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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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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화학·SK이노 배터리 분쟁에 곤란한 美…대선 이후로 최종판결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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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침해 소송 최종판결을 오는 12월로 또다시 연기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양사가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는 만큼 미국 정부에서 한쪽 기업 손을 들어주는 데 부담을 느껴 최종 판결을 미 대선 이후인 12월로 미뤘다는 분석이 나온다.

26일(현지시각) 양사에 따르면 ITC는 LG화학이 지난해 4월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소송 최종판결을 오는 12월 10일로 연기했다. 연기사유는 밝히지 않았다.

조선비즈

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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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ITC는 이달 5일 최종판결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26일로 한차례 연기한 바 있다. 이번에 6주 더 연기한다는 사실을 알린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일정 지연, 미국 대선 등이 연기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ITC 최종 결정이 한차례 미뤄지는 경우는 있었지만 두번이나 연기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패소한 회사는 美 배터리사업 중단…ITC, 경제적 효과 의식했나

업계에서는 이번 소송 결과가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을 감안해 최종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미뤘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은 국내외에서 10건이 넘는 민·형사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 중에서 ITC 최종 판결의 영향력이 가장 크다. 다른 재판들도 대부분 ITC의 판결을 결정의 준거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LG화학(051910)은 GM과 손잡고 미 오하이오주에 배터리 공장을 세우고 있고, SK이노베이션은 2조원을 들여 미 조지아주에 배터리 생산 공장을짓는 중이다. 만약 SK이노베이션(096770)이 최종판결에서 패소하면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부품·소재를 미국에 들여올 수 없게 된다. 사실상 미국에서 사업이 불가능해진다. 이 때문에 미국 내에서도 ITC 최종판결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미국 언론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패소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실제 SK이노베이션 공장이 있는 조지아주나 배터리를 공급받기로 한 포드, 폴크스바겐 등 완성차 업체들은 SK이노베이션을 옹호하는 입장을 밝혀왔다. 포드는 ITC에 낸 의견서에서 "SK이노베이션이 조지아에 짓는 공장에서 배터리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부품을 미국으로 들여오는 것을 금지해서는 안된다"고 요청했다. 포드는 내년부터 생산하는 전기트럭 F-150에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를 탑재하기로 했다.

조지아 주정부도 비슷한 입장을 피력했다.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는 "ITC 조사 결과가 조지아주, 나아가 미국 전체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주의 깊게 평가해달라"는 내용의 서한을 ITC에 보냈다. SK이노베이션이 패소해 수입 금지 결정이 내려질 경우 지역 내 일자리가 감소할 것이란 우려를 드러낸 것이다.

ITC가 최종판결에서 SK이노베이션의 패소를 결정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조지아주 일자리와 미국 전기차 산업 보호를 위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최종 판결일이 12월10일로 미뤄지면서 대선 결과에 따라 거부권 행사자가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다. 일자리를 최우선으로 두는 트럼프가 아닌 바이든이 당선될 경우 거부권 행사 여부도 불문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승패 여부 상관없이 소송 장기전 불가피

업계가 예상하는 ITC 최종판결 시나리오는 크게 3가지다. 첫째는 ITC가 올해 2월 증거인멸 혐의가 명백하다며 SK이노베이션에 대해 내린 '조기 패소판결(Default Judgment)'을 그대로 확정하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서는 미국 내 배터리 셀과 모듈, 팩, 관련 부품에 대한 수입이 금지돼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할 수 없게 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SK이노베이션은 연방법원에 항소할 수 있지만 항소 기간에도 수입 금지 조치는 계속된다. 항소 기간은 최소 1~2년으로 예상된다.

두번째는 ITC가 예비결정을 인정하되 미국 경제와 일자리 등 공익을 고려해 일부 수입을 유예하는 것이다. 이 경우 ITC는 SK이노베이션의 공급사인 포드, 폴크스바겐과 관련 협력사, 미 조지아주 등 이해 관계자의 의견을 폭넓게 청취한 뒤 수입금지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ITC가 예비결정에 수정(Remand) 지시를 내릴 가능성도 있다. 앞서 SK이노베이션은 ITC의 조기패소 결정에 대한 이의 신청을 냈고, ITC는 4월 "전면(in its entirety) 재검토한다"고 밝힌 바 있다. ITC가 수정 지시를 내리면 소송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최종 판결이 나오기까지 최소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그 어떤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양사의 소송전은 장기전으로 흐를 것으로 예상된다. ITC가 결국 LG화학의 손을 들어줄 경우 양사는 델라웨어 연방지방법원에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게 된다. 손해배상 소송 역시 1~2년 소요될 전망이다. 만약 미 대통령이 미국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을 이유로 ITC 최종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소송전은 미국 무역대표부(USTR)로 넘어가게 된다. 두 기업이 합의를 하지 않는 이상 법정 다툼은 수년간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LG화학은 ITC의 최종판결 연기 결정에 대해 "이달 들어 ITC에서 판결 일정을 2차례 연장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어 코로나19 영향에 따른 단순 순연된으로 보인다"며 "LG화학은 성실하고 단호하게 소송에 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은 "ITC가 본 사건의 쟁점을 심도있게 살펴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며 "판결 연기와 관계없이 소송에 충실하고 정정당당하게 임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면서 "소송의 장기화에 따른 불확실성을 없앨 수 있도록 양사가 현명하게 판단해 조속히 분쟁을 종료하고 사업 본연에 매진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재은 기자(jaeeunl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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