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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97세 老兵(노병)의 ‘버킷리스트’… 그걸 들어준 美 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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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45년 2차대전 때 유럽 전선에서 싸워

건강 악화… “버킷리스트 실천하며 삶 정리”

세계일보

올해 97세인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 제임스 에드워드 리드(가운데 휠체어에 앉은 이)가 시애틀을 방문해 현지 육군 부대에서 받은 감사패를 들고 후배 장병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미 육군 홈페이지


지난 15일(현지시간) 오전 9시 50분 미국 서해안을 대표하는 도시 시애틀의 킹스트리트역에 암트랙(AMTRAK·미국철도여객공사) 열차 한 대가 도착했다. 객차 문이 열리고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인 제임스 에드워드 리드(97)가 딸의 부축을 받으며 내렸다. 육군의 까마득한 후배 병사들이 리드 부녀를 반갑게 맞이했다.

26일 미 육군에 따르면 리드는 최근 지병에 따른 건강 악화로 생의 마지막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이 들자 딸의 도움을 받아 ‘버킷리스트’ 실천에 나섰다. 바로 암트랙 열차를 타고 미국을 일주하는 것이다. 고향인 남동부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를 출발해 서쪽 끝에 해당하는 시애틀까지 간 것도 그 때문이다.

이미 열차를 이용해 나이아가라 폭포, 대평원, 로키 산맥 등 미국의 대표적 명승지를 둘러보고 거의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바로 태평양과 맞닿은 미국 서해안 시애틀이다. 가는 곳마다 현지 육군 부대의 따뜻한 환영을 받은 리드는 시애틀에서도 현지 후배 장병들이 정성껏 준비한 선물과 감사패, 그리고 박수 세례를 접하고 그만 눈시울을 붉혔다.

리드가 철도를 애용하게 된 계기는 8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3년생인 그는 17살 되던 1940년 민간 철도회사에 들어가 일을 배웠다. 당시만 해도 전화가 널리 보급되지 않아 기차역과 역 간에 모스부호를 활용한 전신으로 서로 정보를 주고받던 시절이었다.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뛰어든 뒤 리드도 육군에 징집돼 1942년부터 전쟁이 끝난 1945년까지 복무했다. 최종 계급은 상병이었다. 철도회사에서 배운 지식과 경험을 살려 통신병으로 활약한 그는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 전선 등에서 싸웠다.

“이탈리아에 있을 때 우연히 육군항공대(현 공군) 대위인 친형과 같은 지역에 주둔한 적이 있다오. 형은 폭격기 조종사였지. 장교인 형과 사병인 내가 식당에서 함께 식사하는 걸 본 다른 장병들이 깜짝 놀라던 기억이 생생하구려.”(리드)

리드 부녀가 시애틀에 머문 짧은 기간 동안 이들을 안내한 어느 육군 병사는 “군복을 입은 우리 모습에 곧장 감정이 복받쳐 눈물을 쏟던 리드 선배님의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며 “한 번 육군을 통해 맺어진 인연은 평생토록 이어지고 또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까마득한 후배 병사로부터 ‘군복무에서 유의할 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은 리드는 이렇게 답했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내 힘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정확히 알고 무리하지 않는 것이지. 본인 혹은 자녀가 군인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겐 이런 얘기를 들려주고 싶어요. 군복무를 해본 사람은 반드시 깨닫게 된다오, 내가 과거에 비해 얼마나 더 ‘큰 사람’이 되어 있는지를.”

미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2차 대전에 참전한 미국인 중 현재 약 30만명이 생존해 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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