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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별세] 공들인 카·시·오 좌절, 초일류 삼성 초석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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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의 경험이 초일류로’

26일 별세한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선대 고(故) 이병철 창업 회장은 ‘한국산 초일류’에 대한 갈증을 끊임없는 도전으로 이어갔다. 인터넷에선 ‘삼성의 흑역사’라는 이름으로 비아냥대는 내용도 나오지만, 숱한 실패는 오늘날 ‘초격차’ 삼성의 초석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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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정밀이 1979년 일본 미놀타와 제휴해 만든 하이매틱 S 자동 카메라. 미놀타 로고와 함께 당시 삼성 로고가 붙어 있다. 사진 삼성전자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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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산 조립에서 이미지 센서로



카메라 분야는 이병철 회장 때부터 이건희 회장에 이르기까지 삼성이 계속 도전해온 분야다. 삼성정밀은 1970년대 말 일본 미놀타와 기술 제휴해 콤팩트 필름 카메라를 조립하고, 전문가용 일안 반사식(SLR) 카메라를 수입해 팔았다.



85년엔 ‘케녹스’란 브랜드로 첫 자체 설계 카메라를 만들기도 했다. 자동초점(AF) 기능, 세계 첫 광학 4배줌 카메라 등을 만들었지만 세계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1995년엔 독일 유명 카메라 업체인 롤라이를 인수했지만 4년 뒤 재매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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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4월 일간지에 실린 삼성 미놀타 '하이매틱 SD' 광고. 당시 일본 수입 카메라와 비교하면 3분의1 가격이었다. 중장년층의 어린 시절을 찍은 카메라 중 상당수가 이 제품이었을 게다. 사진 삼성전자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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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삼성항공-삼성테크윈 등에서 카메라 사업을 지속했다. 디지털카메라 시대가 열린 뒤엔 일본 펜탁스와 제휴해 자체 디지털 SLR 카메라인 ‘GX’ 시리즈를 내놓기도 했다. 미러리스(카메라 내부에 반사용 거울이 없는 렌즈 교환식 카메라)인 ‘NX’ 시리즈도 출시했다.

하지만 휴대전화 카메라가 디지털 카메라 시장을 잠식하면서 2016년 삼성은 공식적으로 카메라 시장에서 철수했다. 하지만 30년 넘게 카메라 사업을 하면서 쌓은 광학 기술과 오랫동안 쌓아온 반도체 기술을 결합한 디지털 이미지 센서 제작 기술은 스마트폰 사업에서 빛을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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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2014년 출시한 미러리스 카메라 ;NX 미니'. 2년 뒤 삼성은 카메라 사업에서 철수했지만 이미지 센서, 스마트폰용 광학기술에서 초일류 제품을 만들게 됐다. 사진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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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미국 코닥, 일본 소니 등이 장악했던 이미지 센서 시장에서 초고화소 센서인 ‘아이소셀’ 제품으로 경쟁하고 있다. 삼성전기는 잠망경 형태의 ‘폴디드 줌’ 휴대전화용 카메라 기술을 확보하기도 했다. 오랜 카메라 사업에서의 실패 경험이 ‘1등 제품’으로 이어진 셈이다.



오디오 매니어에서 하만 인수까지



2000년대 들어 사진 한장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다. 이건희 회장이 서울 한남동 자택 집무실에서 찍은 사진인데, 네티즌의 관심을 끈 건 배경의 오디오 시스템이었다. 이 사진은 90년대 찍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집무실에 설치된 스피커는 영국 명품 오디오 업체 바워스 앤드 윌킨스(B&W)의 ‘매트릭스 800’이라는 제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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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이건희 회장의 서울 한남동 자택 집무실 모습. 뒤쪽으로 B&W의 플래그십 스피커 '매트릭스 800'이 보인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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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W의 플래그십(최고급) 스피커였던 이 제품은 가격도 수천만원이 넘었지만 당시 한국에서 갖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에 네티즌들은 ‘역시 이건희 회장’이라며 감탄했다. 이 회장은 당시 집무실에 역시 최고급 제품인 ‘FM어쿠스틱’의 앰프와 맥킨토시 앰프도 갖고 있었던 걸로 알려졌다.

이건희 회장은 개인적 관심사만큼 최고의 오디오를 만들겠다는 의지도 숨기지 않았다. 95년 삼성전자는 미국 마드리갈과 제휴해 하이엔드 오디오 제작에 착수했다. 전설적인 오디오 설계자 마크 레빈슨이 만든 회로도를 적용했고, 당시 신생 스피커 업체였던 헤일즈와도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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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97년 출시한 최고급 하이엔드 오디오시스템 '엠퍼러'. 왼쪽은 프리앰프이고, 오른쪽은 스피커다. 지금도 중고시장에 가끔 등장하는데 매니어층이 적지 않다. 사진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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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선보인 ‘엠퍼러’는 스피커 가격만 최소 1000만원이 넘는 최고급 오디오 시스템이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스피커 무게만 100㎏에 달했고, 웬만한 아파트에서 시끄럽고 울려서 구동이 어려울 정도로 출력도 강력했다. 최고급 오디오 시스템 사업은 오래가지 못했다. 외환위기 상황에서 투자 여력도 줄었고 잘 팔리지도 않아서였다.

그로부터 20년.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 오디오·자동차용 전장(電裝) 업체인 하만 인터내셔널을 인수했다. 하만은 ‘엠퍼러’가 제휴했던 마드리갈은 물론 마크 레빈슨 등을 산하에 둔 회사다. 이건희 회장의 꿈처럼 ‘세계 최고의 오디오’를 만들진 못했지만, 세계 최고의 오디오를 만드는 회사를 인수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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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만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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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목적은 조금 다르다. 가정용 하이엔드 오디오 시스템보단 미래 먹을 거리로 자동차용 전장(전자장치)에 던진 승부수다. 하만 인터내셔널은 현대·기아차는 물론 세계 대부분의 완성차 업체를 클라이언트로 두고 있다. 최근엔 자동차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텔레매틱스(통신) 시스템으로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시계의 꿈은 정밀 산업으로 이어져



최고급 시계를 만들고 싶어했던 꿈 역시 삼성이 실패한 역사다. 83년 설립한 삼성시계는 일본 세이코, 스위스 론진 등과 제휴해 80~90년대 한국 시계 시장을 장악했다. 저렴한 쿼츠(건전지로 구동하는 시계) 시계인 ‘카파’나 세이코와 제휴해 내놨던 ‘돌체’ 등은 아직도 중장년층의 기억에 남아있다.


특히 지상파 방송사의 메인 뉴스 시보(時報)를 광고로 활용한 마케팅은 아직도 성공 사례로 여겨진다. ‘돌체’는 90년대까지 예물 시계의 최강자로 군림했다. 삼성은 세이코의 기술 이전이 여의치 않자 스위스의 무브먼트(기계식 시계의 구동장치) 기업 인수도 한때 추진했다.

하지만 비싼 기계식 시계 시장이 축소되고, 외환위기 이후 사업군 정리가 본격화하면서 삼성시계의 역사도 중단됐다. 삼성시계는 계열 분리 후 종업원 지주사로 명맥을 이어갔다. 현재는 SWC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론진과의 인연은 이후에도 계속돼 2010년대 중반까지도 삼성 임원이 되면 론진의 드레스 워치인 ‘프레장스’를 부부 커플 시계로 주기도 했다.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는 “성공한 대기업일수록 실패를 두려워 않는 용기와 투자의 경험이 이후 성공의 자산이 되기 마련”이라며 ”한국 기업이 엄두를 내지 못했던 광학이나 오디오, 정밀기계 산업에서 쌓은 무형의 경험을 생각하면 이런 삼성의 도전들이 결코 실패한 사업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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