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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학부모 38명이 자녀 60명 ‘육아 품앗이’… “아이들 사회성 키우고 코로나 우울증 씻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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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구 항동 ‘항함크’ 모임

동아일보

서울 구로구 항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육아 품앗이 모임 ‘항함크’의 회원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연을 만들고 있다. 항함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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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간식을) 경비실에도 두고요. 놀이터에도 놓고요. 차가 많이 다니는 곳은 빼도록 해요.”

20일 오후 서울 구로구 항동에 있는 한 아파트단지 내 자치도서관.

주민 5명이 한 테이블에 모여 조만간 자녀들과 함께 진행할 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이들은 모두 같은 아파트 주민들로 만 3∼11세 아이를 둔 부모들. 모임 이름은 ‘항함크’로 ‘항동에서 아이와 엄마가 함께 크자’란 뜻을 지녔다. 한마을 부모가 서로 도와가며 함께 자녀를 키우는 이른바 ‘육아 품앗이’ 모임이다.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이런 육아 품앗이 모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특히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며 이런 자치조직이 늘고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종전처럼 도우미를 쓰기도 불안한 현실이 이런 바람에 일조했다.

현재 항함크에 합류한 부모들은 모두 38명. 따로 급여는 없고 돌아가며 재능기부 형태로 자녀 60여 명을 돌본다. 세 자녀를 둔 항함크 대표 강모 씨는 “고무줄놀이부터 연 날리기, 보드게임 등 아이들이 안전하고 쉽게 즐길 수 있는 활동을 자체적으로 준비한다”고 전했다.

항함크는 여성가족부의 ‘돌봄공동체 지원 사업’에 선정돼 일부 예산도 지원받는다. 부모 5명 이상이 모여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면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이 가능한지를 심사한다고 한다.

육아 품앗이 모임은 특히 올해 여름부터 활발해졌다고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2.5단계까지 강화돼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학교 등을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도 부모들이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소규모 모임을 운영해 아이들을 챙겼다. 한 학부모는 “코로나19로 인한 문제점 중 하나가 아이들이 사회성을 기르기 어렵다는 점”이라며 “육아 품앗이로 아이들이 또래 친구와 관계를 맺을 기회가 늘었다”고 했다.

부모들은 육아 스트레스를 더는 것도 품앗이 모임의 장점으로 꼽았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연구팀이 8월 진행한 ‘코로나19 사회적 건강 1차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미취학 아동을 키우는 가정주부의 57.1%가 “최근 우울함을 느꼈다”고 답했다. 다른 집단에선 평균 38.2%만 우울함을 호소한 것과 대비된다. 유 교수는 “코로나19 상황이 자녀를 키우는 여성의 스트레스와 직결되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육아 품앗이 모임은 비슷한 고민을 가진 부모들의 소통 창구로도 활용되고 있다. 구로구 오류동의 육아 품앗이 모임 ‘행복모임 나눔터’에 참여하는 김은진 씨(39)는 “이사 온 뒤에 코로나19가 터져 막막했는데 육아 품앗이에 참여하며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육아 품앗이 모임에 긍정적이다. 정윤경 가톨릭대 심리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여러 스트레스가 극심한 상황에서 이웃 간의 품앗이를 통해 육아 부담을 낮추고 심리적 위로를 얻을 수 있다.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고 반겼다.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 김희량 인턴기자 한동대 언론정보문화학부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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